날이 따뜻해지면서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다. 지난 토요일에는 집 근처 근린공원에 가봤다. 새로 조성된 공원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 길이 있고,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외 데크와 테이블이 잔디밭 위에 펼쳐져 있었다. 흔들 그네와 그늘 아래 누워 쉴 수 있는 나무 침대도 넉넉했다. 게다가 한강공원과 달리 취사도 허용됐다. 주차장 역시 바로 앞이라 짐을 싣고 내리는데도 수월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 말고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다. 인영이와 윤영이는 자전거를 타다가 라면냄새를 맡고 텐트로 돌아왔다. 네 식구가 라면 5봉지를 해치웠다. 오후 5시가 됐는데 아이들은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다. 따스한 날씨만큼 여유롭고 풍족한 주말이었다.
면순이들. 아빠 닮아 면이면 다 잘 먹는다. 야외에서 먹는 라면맛은 최고였다.

세종에 터를 잡은 지 이번 달로 만 4년째다. 처음에는 한 2년 근무하고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연수 갈 생각에 1년 연장했고, 인영이가 아프면서 미국이 아닌 세종에서 ‘좋은 아빠되기 연수 프로그램’을 받고 있다. 내년 7월이 전세계약 만료인 만큼 최소 만 5년 이상 세종생활을 할 것 같다. 주변 동료들이 농담으로 ‘세종의 삼엽충’이라고 부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앞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서울생활에서 맛볼 수 없는 혜택이다.

서울을 떠나 지방 생활은 처음이었다. 4년 전 내려왔을 때 세종시는 아직 ‘공사판’이었고 딱히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과천청사 시절만큼 인력이 충분치 않아 일은 고되지만, 서울에서 불가능한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선 서울 생활 시절 최소 하루 2시간씩 걸리던 출퇴근 시간은 30분을 넘지 않는다. 매일 가족과 보낼수 있는 2시간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 ‘차 없는 도시’라는 허황된 계획에 도로가 좁아 차가 막히기도 하지만 서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찻길이 좁은 대신 자전거길이 잘 나 있어 지난해 가을부터는 날이 좋을 때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지난 주말 라면을 끓여먹기 위해 갔던 공원처럼 금강 변을 따라 가족들과 함께 즐길만한 시설들이 잘 돼 있고 국토의 중앙부라 어디든 여행가기가 수월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 세명이 흔들그네를 타고 있다. 난 이들의 머슴이다.

물론 서울보다 불편한 점도 많다. 아웃백스테이크도 맥도날드도 없다. 자연과 함께 하지 않고 서울에서처럼 놀기에는 아직 인프라가 부족하다. 인간관계도 좁아진다. 서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왕복 3~4시간을 오가는 것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교육이다. 초등학생은 몰라도 중학생 이상 아이들을 세종시로 전학시키는 것은 꺼려지는 게 현실이다. 우스개 소리로 초등학생이라도 공부 잘하는 애들은 서울에 남겨 놓고, 잘 뛰어노는 애들만 데리고 온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리 공원과 자전거 길을 잘 만들어놔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세종과 서울을 오가는 기러기 아빠는 줄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장단점을 종합하면 아이가 어리거나 미혼이면 한 1~2년 세종생활을 해볼것을 권하고싶다.
인영이가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세종 라이프는 이어진다.

인영이가 병원 생활을 시작했을 때 회사 선배들은 아이 치료를 위해 서울로 돌아와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하셨다. 처음엔 그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병원 근처인 서울 강남에 세종과 같은 30평대 후반의 새 아파트를 얻는 것은 아빠의 능력 밖이었다. 그렇다면 서울 외곽으로 나가야 하는데 병원 오가는 시간이 세종에 있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인영이 환경을 갑자기 바꾸는 것도 아이한테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 끝에 오히려 세종에 더 있게 해달라고 회사에 민원을 했다. 지금은 인영이가 잘 치료받고 있고, 또래 아이처럼 뛰어노는 것을 보니 ‘세종 라이프’가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말에는 공원에서 아이들에게 삼겹살을 구워줄 생각이다. 인영이와 삼겹살을 먹는 ‘세종 체험’을 하고 싶은 선후배,지인들이 있다면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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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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