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가 폐렴으로 입원했다. 전날 콧물이 조금 나와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가서 약을 타 먹였다. 감기겠거니 했는데 새벽 4시에 아내가 열이 40도가 넘는다고 놀라 나를 깨웠다. 고민하다 하루 휴가를 냈다. 뉴스가 넘쳐 일주일째 딜레이 된 2개면 짜리 기획기사 출고일이 오늘이었는데 하루 늦추자고 했다. 미리미리 써놓으라는 부장 지시에 “마감이 임박하지 않으면 써지지 않는 몹쓸 병에 걸렸다”고 한걸 후회해봤자 늦었다.
잠깐 병원에 가서 약타고 집에 오자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여기저기 찌르는 바늘에 1년 전처럼 바둥거리지않고 조용히 눈물만 주루륵 흘리는 게 아내는 더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교수님은 혈액검사 결과를 보더니 인영이 몸에 뭔가(바이러스나 세균) 들어간 것 같고, 숨소리도 좋지 않다며 가슴사진을 찍어보자 하셨다. 우리 아이들은 염증 확산 속도가 보통 아이들보다 빠르고, 합병증에 취약하기 때문에 38도 이상 고열이 지속되면 긴장해야 한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면서 아내와 ‘입원하면 어쩌지, 아무것도 안 챙겨왔는데’ 걱정하면서도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교수님은 폐사진을 보고 오른쪽 폐 한쪽이 조금 무너진 것 같다며 입원을 권했다. 무균실은 베드가 없어 일반 소아과 병동 5인실로 들어갔다.

입원에 필요한 짐을 싸기 위해 혼자 세종에 내려왔다. 고속버스 수화물로 급하게 짐을 보내고 짜장면을 시켜 큰딸과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당분간 아내는 서울에서 인영이를, 나는 세종에서 윤영이를 맡는 체제로 갈 수 밖에 없다. 인영이는 여러 가지 검사에 시달리면서 울고, 밤이 되자 집에 가고 싶다고 또 울었다고 한다. 언니랑 영상통화를 하는데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항생제를 맞아도 열이 40도 안팎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인영이한테 욕심이 생길때면 1년 전 사진을 본다. 인영이가 없는 집은 절간같다.

윤영이를 재우고 텅 빈 인영이 방을 보니 후회가 밀려왔다. 아직 환절기인데 지난 주말에 밖에 데리고 나가 아프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항암 유지 기간에는 유치원도 보내고 정상 아이처럼 생활하게 해야 면역력이 강해진다고 하지만, 아직 쌀쌀한 강바람을 쐬게 한 건 명백히 아빠 실수였다. 아내는 인영이에 대한 욕심이 생길 때마다 1년 전 민머리의 인영이 사진을 본다고 했다. 아직 기저귀를 못 떼도, 작은 동그라미 몇 개 그려놓고 ‘봉구야 사랑해’라고 썼다고 우겨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하는데 아빠는 너무 진도를 빨리 나갔다.
혜희가 올해는 아빠 품에 안기길 기도한다.

아침에 인영이를 태우고 가다가 안성 휴게소에 들렸다. 핫식스로 졸음을 쫓고 차로 돌아오는데 허름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이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는데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내 손에 전단지 한 장을 쥐어줬다. 15년 전 잃어버린 딸을 찾아달라는 내용이었다. 17살 때 실종된 딸은 지금 33세가 됐다. 뒷장에는 15년 동안이나 딸을 찾지 못한 아빠의 편지가 적혀있었다. 차에 타서 출발하지 않고 그를 잠시 쳐다봤다. 평일 오전의 휴게소는 한적했다. 그는 나 외에 몇몇에게 전단지를 돌린 뒤 더 돌릴 대상이 없자 멍하니 서서 하늘을 쳐다봤다. 17년 동안 잘 키운 딸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15년 동안 전국을 헤맨 아빠의 눈빛은 절박하면서 공허했다. 그의 편지 마지막은 ‘이 못난 혜희 아빠’였다. 전단지를 접지 않고 가방에 잘 넣었다.
병원에 도착해 입원실로, 진찰실로, 인영이를 꼭 안고 걸었다. 또 다른 못난 아빠는 절대 너를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아빠는 실수 투성이다. 그래서 못났고, 그래서 늘 미안하다. 인영아, 아빠가 정말 미안해.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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