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죠핸슨이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낸털 파르나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두유노 김치? 두유노 차붐? 두유노 김연아? 두유노 올드보이? 두유노 강남스타일? 두유노…”

할리우드 스타나 유럽 축구선수와 같은 해외 유명인사는 한국을 방문하면서 두 번의 ‘입국심사’를 받습니다. 한 번은 공항 입국심사입니다. 유명인사든 아니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정식 입국 절차입니다.

나머지 한 번의 입국심사는 공항 밖에서 이뤄집니다. 명성에 따라서는 공항 입국장 문이 열리자마자 몰려든 한국 기자와 팬들에게 둘러싸여 ‘심사’를 받습니다. 아래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서 말이죠.

“한국 배우 OOO와 친분이 있는가?” “한국 음식 □□□를 먹은 적이 있는가. 맛이 어땠는가?” “K팝 △△△를 들은 적이 있는가. 어떻게 평가하는가?”

언론인, 작가, 방송인들이 해외 유명인사의 인터뷰나 기자회견에서 대중에게 익숙한 주제를 이야깃거리로 삼기 위해 건네는 질문들입니다. 물론 다짜고짜 저런 질문을 건네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뷰나 기자회견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분위기를 전환할 목적으로, 또는 특정 질문에 대한 독자와 시청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한국 관련 질문을 건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런 형태의 질문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독자나 시청자도 많습니다.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해외 유명 인사에게 굳이 우리의 문화적 존재감을 확인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죠.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저런 형태의 질문을 ‘두 번째 입국심사’라고 비꼬거나, 조롱의 의미를 담아 ‘두유노(Do you know)’라고 통칭하는 이유는 그래서입니다.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낸털 파르나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기자회견에 참석한 제작진과 출연진. 오른쪽 두 번째가 스칼렛 죠핸슨. 뉴시스

‘두유노 탄핵’이 등장했습니다.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낸털 파르나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제작진과 출연자의 기자회견장에서입니다.

이 회견에 참석한 할리우드 스타 스칼렛 죠핸슨은 한 기자로부터 “한국은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 여론이 있다. ‘반(反)트럼프’ 인사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죠핸슨은 통역사로부터 기자의 질문 내용을 확인하고 살짝 웃으면서 “나까지 한국 정치에 끌고 들어가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뉴스로 (한국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들었다. 미국 정치 역시 복잡하다. 한국 정치와 관련한 말은 드리지 않아야 할 것 같다. 트럼프라면 몰라도…”라고 답했습니다.

이 상황을 놓고 “이젠 ‘두유노 탄핵’까지 등장했다”는 냉소가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매체에선 ‘죠핸슨에 대한 살해극’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은 영화 홍보 목적에서 벗어났을지는 몰라도 죠핸슨과 아주 무관한 사안은 아닙니다.

죠핸슨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반트럼프’ 인사입니다. 미국 코미디프로그램 SNL에서 트럼프 장녀 이반카의 허영심을 비꼬는 콩트에 출연하기도 했죠.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향해 퍼부었던 폭언과 성희롱 발언들, 당선 이후 시작한 반이민자 정책은 페미니스트이자 다양한 국적의 동료를 둔 죠핸슨에게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조지 클루니, 줄리아 로버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앤 해서워이, 엠마 스톤 등 할리우드 정상급 스타들은 죠핸슨과 같은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할리우드의 일부 제작자와 배우들은 ‘트럼프를 탄핵하자’는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고 있습니다.

죠핸슨은 대통령을 파면한 한국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공감한 듯 이후에 받은 질문에서 청와대를 언급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투명 수트를 입을 수 있으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고 “청와대에 들어가 탄핵과 관련한 모든 것을 알아낸 뒤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어쨌든 탄핵은 지금 한국을 상징하는 명사인 셈입니다. 올 상반기 할리우드 최대 기대작 중 하나인 ‘공각기동대’ 기자회견장에서 ‘두유노’ 뒤에 붙었으니 말이죠. 적어도 죠핸슨은 그렇게 생각하고 떠났을 것입니다. 혹시 모르죠.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이 이어지는 미국과 다르게 헌법으로 대통령을 파면한 한국 사람들이 부럽다고 생각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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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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