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성경 권위 잃은 미국 따르지 말아야” 존 우드브리지 교수 당부

“주기도문의 정신이 매일의 삶 속에 구현돼야 한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개념이 아니라 삶에서 구체화돼야 합니다. 한국교회나 미국교회나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고 성경의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존 D. 우드브리지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 연구교수는 “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며 “주기도문의 정신이 기독교인의 삶 속에서 구체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저명한 교회역사가이자 기독교사상가인 존 우드브리지(76) 미국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 연구교수에게 “만약 지금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난다면 마르틴 루터는 무엇을 강조했을까”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우드브리지 교수는 “복음은 능력인데 그 능력을 믿지않는 시대가 됐다.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안타깝게도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물질주의와 세속화에 휩싸인 채 성경의 권위를 잃어버린 미국교회의 전철을 따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서울 서초구 바우뫼로 더케이호텔에서 19일 만난 우드브리지 교수는 종교개혁의 최대 유산으로 ‘오직 믿음으로’와 ‘오직 성경’의 정신을 꼽았다. 두 슬로건이 오늘날 기독교를 형성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오직 믿음은 개인 구원의 혁명이 됐으며 오직 성경은 그 구원의 유일한 원천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종교개혁이 여성들의 권리 신장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했다.

그는 “종교개혁으로 복음의 진면목이 확산되면서 여성의 권리 진작에 엄청난 진보가 있었다”며 “이를 구체화시킨 계기는 마르틴 루터의 가족 중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루터는 당시 로마 가톨릭이 금지하던 수도사의 결혼이 비성경적이라고 보고 직접 결혼을 했으며 많은 자녀를 낳고 사랑스런 가정을 만들었다”며 “이런 모습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관점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우드브리지 교수는 “16세기까지 하나님은 두려운 존재 그 자체였다. 그러나 루터 이후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로 그 존재감이 변했다”며 “이는 가정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목에서 마르틴 루터의 ‘대교리문답’ 영문판을 보여줬다. 이 책은 루터가 기독교 신앙의 기본이 되는 주기도문과 십계명, 사도신경을 설명하면서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똑바로 교육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루터는 이 책에서 부모의 의무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며 “루터는 신앙 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땅한 의무를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우드브리지 교수의 부친은 14대째 목회자 가문을 계승해온 찰스 우드브리지 전 풀러신학교 교수로, 칼뱅주의 변증가이자 미국 보수신학의 수호자였던 그레샴 메이첸이 멘토였다.

그는 선친을 회상하면서 “아버지는 언제나 관대하고 친절했다.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BB(Beloved Brother·사랑하는 형제여)’라고 불렀다”며 “아버지는 성경을 사랑했다. 교리적으로도 분명했다”고 회고했다.

우드브리지 교수는 18일 개최됐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공동 학술대회 주강사로 방한했다. 복음주의 신약학자인 DA 카슨과 함께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대학원을 대표하는 연구교수 중 한 명인 그는 교회사와 기독교사상사를 가르치면서 부흥의 역사와 성경의 권위에 대한 저작을 다수 남겼다. 박용규 총신대(역사신학) 교수가 그의 제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그는 ‘종교개혁자들의 성경의 권위’에 대해 강연했다. 그는 “루터와 칼뱅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신뢰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된다”며 “오늘날 다원화되고 모호해진 ‘오직 성경’을 재정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는 오직 성경만이 신앙과 교리, 인간 행위를 규정하는 정확무오한 법칙이며 최종적 권위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부흥사 전문가이기도 한 그는 한국교회에 1907년 같은 대부흥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부흥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부흥이 어떤 조건 때문에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규모 부흥이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기도운동과 부흥을 갈망하는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동반했습니다.”

신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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