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황야기] <114>서부극과 아버지 기사의 사진
‘포세이큰’ 포스터
오랜만에 서부극을 봤다. 그것도 두 편씩이나 한꺼번에. 텍사스주 그레이프바인이라는 마을에 지금도 있는 ‘외로운 비둘기 교회(Lonesome Dove Church)'가 1846년에 어떻게 처음 세워졌는지 유래를 그린,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 바탕을 둔 일종의 실화영화인 ‘론썸 도브 처치(테리 마일스, 2014)’와 왕년의 악명 높은 총잡이가 총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조용히 살려했으나 마을을 장악하려는 악당들의 도발을 견디다 못해 다시 총을 든다는 대단히 익숙한 스토리의 ‘포세이큰(Forsaken, 존 카사, 2016)’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큰 줄거리 외에 부수적이지만 메인 못지않게 중요한 부차적 플롯으로 두 영화가 똑같이 선택한 게 ‘부자(父子)간의 갈등’이라는 점. 이는 성경 창세기 이래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천착돼온 인간사의 고전적인 테마다. 서부극에서도 이미 많이 차용된. ‘론썸 도브 처치’의 경우 순회 설교자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살인강도가 된 아들이 다시 만나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결국은 부자가 힘을 합해 아들의 적을 물리치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교회를 세운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포세이큰’에서는 역시 목사인 아버지가 무적의 총잡이로 악명을 떨치다 돌아온 아들과 불화를 겪지만 마을 주변 땅을 차지하려는 악당들이 끝내 아버지마저 해치자 다시 총을 든 아들이 악당들을 물리치고 부자는 화해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론썸 도브 처치’에서 아버지역은 30년 전 ‘플래툰(1987)’에서 그 날카로운 반스상사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겼으나 이제는 노인네 티가 완연한 톰 베렌저가 맡았고, ‘포세이큰’에서는 성격배우 도널드 서덜랜드가 아버지, 그리고 도널드를 붕어빵처럼 닮은 실제 아들 키퍼 서덜랜드가 아들역으로 나와 이채를 띠었다. 베렌저나 도널드 둘 다 훌륭한 배우들이지만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자꾸만 제임스 스튜어트나 게리 쿠퍼가 두 사람의 모습에 겹쳐졌다. 그들이었다면 영화가 훨씬 더 흥미로웠겠다는 생각과 함께.

쿠퍼나 스튜어트 모두 한창때는 날렵한 총잡이로 서부극을 많이 장식했으나 후년에는 겉으로는 엄해도 속은 자상한 가부장적인 ‘서부의 아버지’ 역할도 멋지게 해냈다. 대표적인 영화가 스튜어트의 경우 ‘셰난도(Shenandoah, 앤드루 V 맥클라글렌, 1965)'다. 명백한 반전 메시지와 휴머니즘을 강조해 당시 점점 가열되던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크게 주목받은 영화. 그는 여기서 6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거느린 버지니아의 부유한 농장주로 나오는데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16살밖에 안된 막내아들이 남군 병사로 오인돼 북군에게 포로로 끌려가자 막내를 찾아 천신만고의 여정을 겪다가 결국 돌아온 막내를 기쁨으로 맞이하지만 대신 다른 소중한 아들들을 잃는 비극적인 아버지로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또 쿠퍼는 무법자와 악당, 총싸움이 필수적인 전통적인 서부극과는 아주 달리 그런 것들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이색 서부극 ‘우정 있는 설복(Friendly Persuation, 윌리암 와일러, 1956)’에서 유머러스하고 다정한 아버지상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영화음악의 대가 디미트리 티옴킨이 만들고 팻 분이 부른 주제가(‘그대를 사랑하오 Thee I Love')로도 유명한 이 영화에서 쿠퍼는 평화주의자이자 경건주의자인 퀘이커교도로 나오는데 어쩔 수 없이 남북전쟁에 휘말려 역경에 처하지만 결국 해피엔딩을 맞는 가장역을 더 할 수 없이 따뜻하게 해냈다. 두 영화 모두 서부극 팬, 아니 영화 팬이라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서부극의 고전이다.

쿠퍼와 스튜어트뿐 아니다. 서부극에서 아버지역으로 기억에 남는 배우들은 적지 않다. ‘서부극의 전설’ 존 웨인은 어떤가. 그는 ‘홍하(Red River, 하워드 혹스, 1948)’에서 거칠고 폭군적인 아버지로 출연해 양아들(몽고메리 클리프트)과 권총대결 직전의 격렬한 주먹다짐까지 가는 갈등을 겪은 끝에 마침내 화해하는 연기를 멋지게 해냈다. 또 존 포드가 만든 ‘기병대 3부작’의 세 번째 작품인 ‘리오 그란데(1950)’에서도 터프한 기병대 장교역을 맡아 웨스트 포인트에서 퇴학당한 뒤 사병으로 입대해 자신의 부대로 전입한 아들을 다른 사병들과 똑같이 엄격하게 다루는 원칙주의자 아버지 겸 지휘관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그리고 그 옛날 우리나라의 김승호가 그랬듯 아버지상(father-figure)으로는 그만한 배우도 없는 스펜서 트레이시도 있다. 그는 ‘부러진 창(Broken Lance, 에드워드 드미트릭, 1954)’에서 네 아들을 거느린 대목장주이자 광산주로 나와 이복아들들 간의 갈등, 그리고 부자간의 불화 속에서 자식들로부터 버림받은 리어왕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다소 과장하자면 서부극판 셰익스피어 배우라고나 할까.

이외에도 반 헤플린은 ‘결단의 3시10분(3:10 to Yuma, 델머 데이브스, 1957)’에서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는 뜨거운 부정(父情)의 아버지를 연기했다. 몇 년째 계속된 가뭄으로 살 길이 막막해진 농부 댄(헤플린)은 적지 않은 보수를 받기로 하고 어쩌다 체포된 희대의 악당 웨이드(글렌 포드)를 유마행 기차에 태우는 매우 위험한 임무를 맡는다. 웨이드의 부하들이 웨이드를 구해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도와줄 사람은 동네 주정뱅이 한명 뿐. 유마행 기차가 떠날 시간 3시10분은 다가오고 긴장은 높아간다. 총잡이도 아닌 댄은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것인가. 이 영화는 2007년에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리메이크해서 크리스천 베일이 댄역을 맡았으나 그에게서는 반 헤플린 같은 아버지의 체취를 맡기 힘들었다. 더구나 악당이면서도 이상하게 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웨이드역을 맡은 러셀 크로우에게 영화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기 때문인지 베일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헤플린은 엄한 가부장적인 대신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서부의 아버지상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서부극의 고전걸작 ‘셰인(Shane, 조지 스티븐스, 1953)’에서도 평범하지만 자식과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강한, 용감한 아버지를 그려냈다. 서부 최고의 건맨 셰인(앨런 래드)이 워낙 두드러진 영웅으로 그려진 결과 셰인을 절대영웅시하는 꼬마 조이의 아버지로 나온 헤플린은 왜소하고 겁 많은 하찮은 농투성이 무지렁이로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 어떤 영웅도 아니지만 자식과 가족을 위해서는 모든 걸 감내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우리네 보통 아버지들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아버지였다.

그러나 이제 세월은 흘렀고 스튜어트도, 쿠퍼도, 헤플린도 없다. 아울러 서부극도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자꾸만 ‘좋았던 옛날’의 서부극과 그 스타들을 되씹어본들 무슨 소용이랴. 그나마 근근히 나오는 새 서부극, 그리고 새 배우들에 적응하는 수밖에.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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