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 아픈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였다. 이들은 월요일 아침부터 생업을 뒤로 한 채 아픈것도 서러운 아이들의 학습권 침해를 막아달라고 외쳤다. 백혈병 등 수년간 치료를 받아야하는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없다. 이 아이들은 꿈사랑학교라는 면대면 실시간 화상강의를 통해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학습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이유로 녹화된 강의를 듣는 원격강의 시스템을 도입하려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런 선택권은 필요가 없다는데 교육당국은 억지로 권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정부를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럴싸한 이유를 대고 있지만 결국 예산절감을 이유로 면대면 화상강의를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폭력은 꼭 물리적이지 않다. 아픈 아이들에게 효율성이란 이유로 싫다는 것을 강요하는 것 역시 국가 폭력이다.

아픈 아이들에게 교육당국의 ‘친절한’ 강요는 폭력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고문을 자행한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 사태를 통해 과거보다 더 잔인해진 국가 폭력을 봤다.  이 나라는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의 호소는 외면한 채 희생자 학생 부모들에게 징병검사 안내문을 보냈다. 개인정보 미 파악을 이유로 댔지만 국가는 그 정도를 거를 행정능력을 갖고 있다. 다만 귀찮고, 그럴 수도 있지 않냐 했던 것뿐이다. 국가의 이런 보이지 않는 폭력성은 사회폭력으로 전이됐다.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텐트 앞에서 치킨을 뜯으며 웃고 있는 일베들을 만든 것은 국가 폭력이었다.

인영이가 아픈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 아이가 아팠을 때 혹시 내 딸이 세상에서 없어질까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도 간혹 자는 아이의 코에 귀를 뒤고 숨 쉬는걸 확인하고 안심하고 잠든다.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지난 주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와 같은 돌발 상황에 가슴은 덜컥 내려앉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런 근심조차 할 겨를도 없이 아들과 딸을 잃었다. 그러고 3년이 넘는 시간을 견뎠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그분들은 위대하다.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진실 규명이다. 내 자식이 그리 됐으니 박근혜 너도 그리돼야한다 우기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국가는 3년 넘도록 그분들의 원통함을 풀어주기는커녕 그들에게 무언의 폭력을 가했다.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서라는 뉘앙스를 풍겼고, 인양비용을 들먹이며 세금도둑 소리까지 듣게 했다. 그들은 1000일이 넘는 시간동안 외롭게 싸웠다. 지금이야 세월호 인양 소식이 실시간 중계되고 있지만 나조차 그들을 잊고 살아왔음을 반성한다.
건강히 자라 이정미 재판관처럼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길.

역사학자 한홍구 선생은 세월호 사건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의 모습을 6.25 전쟁 당시 서울시민을 버리고 한강 다리를 끊고 내뺀 정부와 비교했다. 세월호의 '바지'선장 이준석을 앞세운 현 권력과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모두 가만있으라고 한 뒤 세월호를, 서울을 버렸다. 이승만은 서울 수복 뒤 갖은 고초를 겪은 서울시민들에게 사과는커녕 부역자 처벌이라는 이유로 죄 없는 수천명을 잡아 죽였다. 아마 탄핵이 되지 않았더라면 박근혜 역시 세월호를 맹골수도의 차디찬 바닷물에서 꺼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홍구 선생은 이렇듯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폭력을 가하는 국가를 믿지 말라고 외친다. 역사는 반복된다. 대한민국 호를 책임지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우리들 각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의 숨소리에 귀를 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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