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영이의 3차 고용량 항암치료차 서울에 올라왔다. 세 달에 한번씩 3일 동안 받는 고용량치료는 약이 센데다가 척수검사와 함께 진행돼 인영이가 많이 힘들어하는 치료다. 특히 세달에 한번씩 바뀌는 레지던트들이 시술하는 척수검사에 인영이처럼 어린 환우를 둔 부모들은 대부분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긴 바늘이 허리께를 찔러 척수액을 빼낸 뒤 항암약을 투약하는 척수검사는 허리를 구부린 채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이 스스로 참고 견디긴 불가능하다. 결국 간호사가 팔 다리를 꽉 붙들고 아이는 온 머리가 땀에 흠뻑 젖고 울다 지쳐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영이도 예전에 시술에 실패해 두 번 세 번 찔린 기억에 ‘허리주사’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인영이에게 '허리주사(척수검사)'는 그 옛적 호랑이와 같은 이름이다. 허리주사 한번만 맞자는 엄마 말에 눈물이 글썽인다.

오전 11시, 허리에 마취 크림을 바르고 검사실로 자리를 옮길 시간이 돌아왔다. 인영이는 눈치 챘는지 “엄마 어디가” 라며 불안한 눈빛을 한 채 묻는다. “응, 허리주사 한번만 맞자”라는 말에 눈물이 뚝뚝.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엄마 품에 안겨 검사실로 간다. 인영이는 찌르지도 않았는데 이미 머리가 땀에 흠뻑 젖은 채 울음을 그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인영이 손을 잡고 괜찮다고 연신 되 뇌이고, 아빠는 침대 머리맡에서 어쩔 줄 모르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베테랑 교수님이 해주면 좋겠지만 교육 차원에서 교수님 감독아래 레지던트가 시술을 한다. 레지던트가 굵은 바늘을 꺼내 인영이 허리뼈께를 조준한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보기 좋게 한번에 시술에 성공한다. 나도 모르게 레지던트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항암 시작 전 인영이가 병원에서 자신이 발명한 글자를 쓰며 공부를 하고 있다. 동그라미 몇개 그리고 '봉구야 사랑해'라고 썼다고 우긴다.

이제 한숨 돌리나 싶었지만 손등에 혈관을 잡기 위해 또 바늘을 찔러야 한다. 가슴 정맥관을 통해 독한 항암약이 들어가는 동시에 손등으로 이를 희석할 수액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 인영이에게 이런 저런 주사액이 4리터 가까이 들어갔다. 16kg 몸무게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에 인영이 얼굴과 손발이 붇는다. 소변으로 제대로 배출되지 않자 이뇨제를 맞는다. 그렇게 10시간의 치료가 끝났고 인영이도, 엄마아빠도 그로기 상태로 호텔로 돌아온다.
항암첫날 아침, 이모가 호텔에 와서 인영이 모닝콜을 해줬다.

이제는 상을 줄 시간이다. 우선 객실서비스로 스파게티를 시켜준다. 미리 준비해 간 킨더조이를 깐다. 체력보강용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해서 식욕이 돋는지 치킨이 먹고 싶단다. 아빠는 퀵 서비스맨으로 변신해 서래마을을 헤맨다. 그래도 오늘은 전에처럼 토하지 않고 잘 먹으니 행복하다.
비록 척수검사에서 관해 이후 처음으로 아세포(미성숙세포)가 1개 발견됐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었지만 5개 미만까지는 정상으로 본다는 말에 위안을 얻는다. 재발에 대한 공포는 머리 한쪽에 상수로 남아 떠나지 않지만,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창가 자리를 맡고, 열심히 몸종 노릇을 하며 기도하는 것뿐이다.
서울 항암치료에서 아빠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새벽에 일찍 가서 창가 자리를 맡는 일이다.

이번 치료를 무사히 마치면 9차례의 고용량 항암일정 중 3분의 1이 지난다. 앞으로 남은 치료기간은 1년 반.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척수검사 6번만 참으면 된다 생각하면 또 그리 아득해보이지도 않는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의료진을 믿으며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끝은 올 것이다. 그때까지 아빠는 ‘인영왕(최근에 대군에서 왕으로 승격했다)’곁에서 두 눈 부릅뜨고 호위무사 노릇을 할 테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