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인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제1272차 정기 수요시위'에서 위안부 소녀상 뒤로 참석자들이 한일합의 무효,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와 법적배상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성호 기자

체면만 구긴 아베의 소녀상 어깃장
일본 정부 역사 왜곡 작태 그만둬라
차기 한국 정부, 위안부 재협상해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결국 체면만 구겼다. 아베 총리가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의 일본군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항의하며 귀국시켰던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4일 서울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귀국 조치를 취한 지 85일 만에 아무런 소득도 없이 한국 귀임 조치를 취한 셈이다. 일본군위안부 소녀상 설치 문제에 국한하면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내외적으로 어깃장을 부린 것만 부각시켰다.

아베 총리는 이날 나가미네 대사를 관저로 불러 “한국에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등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위안부 합의 준수 등 일본 입장을 분명히 전달하라”면서 “한국의 차기 정부도 합의를 이행하도록 정보 수집과 활동에 만전을 기하라”고 나가미네 대사에게 지시했다고 NHK방송이 전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뉴시스

 나가미네 대사는 이날 김포공항에 도착해 “황 권한대행 등 주요 인사들을 만나 위안부 합의를 이행하도록 강력히 촉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나 스가 장관의 발언은 일본 지지층을 달래기 위한 제스처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일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잘 알면서도 일본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지시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 정부는 민간단체가 소녀상을 설치했으므로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람직한 처신이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소녀상과 관련한 정부 입장은 이미 누차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면서 “그런 입장 하에서 일본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4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고개를 숙인 채 귀임하고 있다. 뉴시스


나가미네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인 아베 정부가 실익이 없는 외교 강수를 유지하기에는 한국 정세와 북핵 문제가 너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나가미네 대사가 “북한 문제를 둘러싼 공조를 비롯해 일본과 한국이 협력하고 연계해 가는 것은 앞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 대목에서 일본 정부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아베 정부가 한국의 차기 정부에 합의 이행을 강조한 것도 무의로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선 후보 5명이 한·일 정부가 체결한 일본군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합의 파기와 재협상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한국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소녀상 건립 문제에 대해 아베 정부가 한국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민간단체의 활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촛불 시위’를 경험한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부산 동구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한 시민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소녀상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부산=뉴시스

 이번 기회에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가 제안한 것처럼 국회 안에 소녀상을 건립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간단체와 정치인이 추진하면 일본 정부의 ‘간섭’을 충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독도 주변의 섬들에 일본식 지명까지 붙였다. 일본 국토교통성 산하 국토지리원이 독도의 주요 2개 섬인 동도와 서도를 각각 메지마(女島)와 오지마(男島)로 명명하는 등 11개 섬에 일본식 이름을 제멋대로 붙인 것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소녀상 건립 문제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역사 왜곡 작태를 그쳐야 마땅하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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