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인영이가 아프고 난 뒤 둘째에게 더 마음이 간다. 인영이는 아픈 뒤로 땡깡이 심해졌다.
언니 물건은 자기 물건처럼 생각한다. 언니 인형을 무조건 뺏어오고 달라고 해도 안 준다. 하루에도 몇 번 씩 둘이 인영이 고집 때문에 싸우고 우는 건 늘 언니 몫이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윤영이한테 너가 언니니까 양보하라고 한다. 그럼 윤영이는 아빠는 동생 편만 든다며 울면서 엄마에게 달려간다. 아내는 윤영이를 달랜 뒤 조용히 나를 불러 윤영이가 요즘 아빠한테 많이 서운해 한다며 그러지 말라고 충고한다. 어느 손가락인들 깨물면 안 아프겠냐마는 투병 생활을 하는 5살 둘째에게 애잔한 마음이 더 가는 건 잘 고쳐지지 않는다.
언니 생일상인데 마치 자기가 주인공마냥 즐기고 있는 인영이. 윤영이는 쑥쓰러운듯 웃고만있다.

큰 딸 윤영이의 9번째 생일이었다. 윤영이는 일주일 전부터 친구들에게 줄 초대장을 만들고, 생일파티 순서를 짰다. 꼼꼼하고 섬세한 성격답게 생일음식부터 친구들 자리까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인영이는 언니 친구들이 오자 덩달아 신이 났다고 한다. 마치 자기가 주인공마냥 언니와 친구들 중간에서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고 한다. 아내가 보내 준 사진만으로도 인영이 가 흥분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저녁엔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윤영이가 좋아하는 초밥을 사주고 집에 와 생일케이크도 잘랐다.
7년전, 윤영이가 3살때 육아휴직을 했었다. 주부우울증이 올 정도로 힘들기도했지만 지나고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윤영이는 3학년이 되자 자기 방에서 혼자 자는데 생일 밤에는 자정 넘어 무서운 꿈을 꿨다며 울면서 안방으로 왔다. 잠이 깨서 인영이보다 어릴 적의 윤영이와의 추억을 찾아봤다. 윤영이가 3살 때 육아휴직을 하면서 내 블로그에 올려놨던 글과 사진들이다. 당시 2년을 쉰 아내가 복직을 하는데 말이 느린 윤영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려 국민일보 최초로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지금부터 6~7년 전만해도 선배들은 회사에 무슨 불만이 있느냐, 다른 회사로 옮기느냐 면서 다른 이유가 있는지 걱정해줬다. 아빠 육아휴직자가 귀한 시절이라 모 잡지사의 인터뷰까지 했었다.
큰딸이 지금 인영이보다 어릴때. 엄마보고싶다고 해서 엄마 직장에 몰래 쳐들어가는길에 찍은 사진.

6개월의 육아휴직은 수습생활보다 더 어려웠다. 하루 세끼 반찬이 걱정이었고, 밥 먹이는 것도 힘들었다. 초기엔 주부 우울증 비슷한 것까지 왔었다. 그래도 지나고보니 그때 육아휴직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땐 윤영이가 하늘아래 단 하나뿐인 딸이었고, 지금 인영이보다 더 많이 마음을 썼던 것 같다. 아직 무섭다고 엄마아빠 품을 찾는 10살짜리인데 인영이가 아프고 나서 ‘큰딸’의 의무를 너무 지게 한 것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밀려왔다. 요즘도 윤영이는 인영이 치료 때는 할아버지와 함께 자기 혼자 학교 숙제며 학교 과제물을 챙겨가고 있다. 그러면서 자고 일어나면 꿈에서처럼 인영이가 다 나아있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착한 언니다. 다음에 인영이가 또 떼를 써서 언니를 울릴 땐 윤영이 편을 들어줘야겠다. 인영왕도 소중하지만 윤영공주도 아빠에겐 더 없이 사랑스런 딸이니.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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