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없으면 죽으라?” 남한 관료주의에 탈북민 목사 발동동

간경화 3기, 간 기증자 있는데도 한국정부는 “규정” 운운 장기이식 승인거부

“증빙서류는 있나요?”

“없습니다. 홀홀단신 탈북해온 목사가 어떻게 수 십 년 알고 지낸 친지가 남한에 있겠습니까.”

“그럼 안 되는 거죠. 우리 규정에 그렇게 돼 있어요.”

김성근 노원한나라은혜교회 목사(왼쪽)가 13일 서울 노원구 자택 침상에 누워 있다. 최진지 사모는 곁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간경화 3기인 김 목사는 간이식이 절실한 상태다. 김보연 인턴기자

“장기기증관리센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기증하겠다는 분들이 계시고 위급환자인데….”

“고등학교 동창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 그런 관계 증명이 있어야됩니다. 우린 작성한 서류를 보고 승인여부를 결정할 뿐이에요. 직원이 없어 실사는 못 합니다.”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서울 노원한나라교회 김성근(41) 목사의 아내 최진지(가명·37) 사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 담당자와의 통화는 희망마저 접게 했다.

2002년부터 줄곧 탈북민 선교에 앞장서왔던 김 목사는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얼마 전 병원에서 간경화 3기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장 장기이식 수술을 받지 않을 경우 생명을 보장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김성근 노원한나라은혜교회 목사(왼쪽)가 13일 서울 노원구 자택 침상에 누워 최진지 사모와 손을 잡고 있다. 간경화 3기인 김 목사는 간이식이 절실한 상태다. 김보연 인턴기자

그에겐 간을 이식해주겠다는 장기기증 희망자가 3명이나 있는데도 법규와 국가기관의 관료주의 탓에 아예 희망조차 가질 수가 없는 상태다. 장기이식은 반드시 장기이식관리센터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게 ‘장기이식 등에 관한 법률’ 규정이다. 불법 장기밀매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다. 그런데 김 목사처럼 기증할 사람도 있고, 기증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는 환자임에도 장기이식수술 승인은 내려지지 않는다.

1997년 탈북민으로 중국 각지를 떠돌 때부터 자신을 도와줬던 열방빛선교회(황금종교회) 최광 목사와 대전반석교회 천승현 목사, 그리고 20대 탈북민 청년 등이 김 목사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되자 선뜻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적합성 검사비용만 250만원이고, 장기이식 수술비용은 5000만원입니다. 이 돈 구하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관리센터가 이식가능 판정을 내려줘야 뭐라도 해볼 것 아닙니까. 이제 오직 하나님께 기도만 드리고 있습니다.”

김성근 노원한나라은혜교회 목사(왼쪽)가 13일 서울 노원구 자택 침상에 누워 기도를 드리고 있다. 김보연 인턴기자

최 목사는 “온갖 시련을 당하며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겨온 김 목사에게 우리 사회가 따뜻한 손길마저 거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굶주리고 제대로 영양섭취도 못해 B형 간염이 걸렸는데 이젠 간 이식 밖에는 소생시킬 방법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목사의 인생역정은 기구하다. 먹을 게 없어 아사(餓死)하는 주민이 속출하던 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시절, 그는 누나 두 명을 먼저 천국에 보내야 했다. 그리고 부모님 드릴 식량을 구하러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불법 월경해 음식을 구해 다시 고향땅인 함경북도 청진으로 갔다. 하지만 보위부로 끌려가게 됐다. 모진 심문을 당한 뒤 풀려난 뒤 그의 미래는 북한 땅에 없었다. 1997년 그렇게 탈북민이 됐다.

숨어 다니며 온갖 일을 했고 중국 각지를 떠돌았다. 그때 선교활동을 하던 최 목사를 만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크리스천이 됐다. 스스로 북한선교사가 돼 북·중 접경지대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탈북민을 도왔다. 또 중국 공안에 체포돼 고문까지 당하다, 남한 선교사들의 항의 끝에 풀려나 2002년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연세대 중어중문학과, 장로회신학대학원 신학과를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전도사로, 부목사로 열정적인 삶을 이어갔다. 지난해 7월 서울 노원구 한 건물에 탈북민 교회를 개척했다. 2004년에 결혼해 단란한 가정도 꾸렸다.

과로가 겹치며 김 목사의 B형 간염은 점점 악화돼 갔다. 계속 매스꺼움 증상이 심해졌고 소화도 되지 않았다. 병원에 달려갔다가 끝내 간경화 3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북한에 살 때 힘들게 살아 그런지 간이 안 좋네요. 수술 요건도 안 된다 하니….”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가 “장기이식수술 대상이 안 된다”는 이유로 떠밀려 퇴원한 김 목사의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최 사모와 열 두 살 딸은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었다. 

“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이에요. 중국어를 가르쳐주며 친해졌죠. 이 사람이 절 너무 사랑해줬습니다. 아직도 이 사람은 북녘 땅 지하교회를 섬기는 주님의 종들에게 제대로 된 사역자를 보내겠다는 일념뿐이에요.”

몸 약한 최 사모와 어린 딸은 일찌감치 간이식 적합성 판정에서 불합격됐다. 부부와 딸의 맑은 눈동자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

유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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