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맞은 서른여덟번째 봄’ 희귀병 K보리의 봄나기

그녀의 손이다. 한때 알록달록한 매니큐어가 반짝거리던 손톱이지만 지금은 깨진 반쪽짜리만 남아 있다. 손의 주인은 희귀병을 앓으면서 고왔던 살갗과 투명했던 손톱, 맑은 눈동자를 차례대로 잃었다. 지금은 꽃잎 한 점도 볼 수가 없다. 청춘을 잃었고 직장이 사라졌고 친구가 떠나갔다. 하나님은 왜 돌연히 견디기 힘든 고통을 주시는가.

K보리의 두 손. 대부분의 손톱이 다 깨어져 있다. 보리는 투병 후 바뀐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K보리 제공

2009년 8월 10일 낮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 K보리(필명·당시 30)는 대개 일주일 동안 입을 옷을 미리 정해두는 편이었다. 패션 디자이너인 그녀. 이날 옷은 오렌지 마멀레이드 컬러의 블라우스와 핫팬츠였다. 구두는 에나멜 토슈즈. 적당히 분주하지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작업 지시서에 스케치를 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온몸이 무거워졌고 한기가 돌았다. 입술이 부르텄다.

사무실을 나온 시각은 저녁 7시 5분. 병원 문은 닫혀 있었다.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그녀에게 평범한 마지막 월요일이 됐다.

2009년 8월 10일 밤부터 일주일
손과 발, 입안에 붉은 반점이 솟아났다. 집 근처 A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의사는 수족구나 신종인플루엔자를 의심했다. 보리는 격리됐다.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에 갔다. 의료진들은 수군거리며 그녀를 벌레 보듯 쳐다봤다. 엄마와 언니는 일주일 동안 대용량 락스 한 통을 다 비울 정도로 병원 구석구석을 닦아냈다.

일주일이 넘도록 병명을 찾지 못했다. 온몸은 수포와 발진으로 뒤덮였다. 눈꺼풀은 수포가 터진 고름이 엉겨 붙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10분 간격으로 가래를 뱉어내느라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죽음의 문턱에 선 것처럼 두려웠다. 침대 옆에 있던 아버지가 흐느꼈다. “오늘이 고비인 것 같아. 전화기 옆에 두고 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다행히 그날을 넘겼다.

지난 9일 경남 밀양 삼문제방에 만개한 벚꽃. 뉴시스


2009년 8월 10일로부터 한달
A병원보다 훨씬 큰 B병원으로 옮겼다. ‘스티븐존슨증후군(SJS)’ 판정을 받았다. 들어 본 적도 없는 병이었다. SJS는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는 희귀병이다. 붉은 반점에 이어 심한 수포가 피부에 계속 생기는 질환이다. 항생제 부작용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발병률은 10000분의 1. 사망률은 10% 안팎. 의사는 말했다. “증상이 심하면 손톱, 발톱이 빠질 겁니다. 머리카락까지도….”

보리가 병원 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하나둘씩 수군거렸다. 그녀와 마주치면 흠칫 놀랐다. 흉측한 괴물을 대하는 것 같았다. 온몸에 수포가 일어나 발을 딛는 것조차 힘겨웠다. 휠체어에서 침대로 이동하기 위해 가족과 의료진이 모두 동원돼야 했다. 옷을 걸치고 있을 수 없을 만큼 병세가 악화됐다. 언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엄마와 번갈아 병간호에 매달렸다.

심한 기침으로 잠에서 깬 어느 밤 언니가 보리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말했다. “보리야, 하나님 원망하면 안 돼.” 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갑자기 주먹만한 핏덩어리가 목에서 넘어왔다. 입안의 모세혈관이 터진 것이다. 당직 의사가 황급히 달려왔고 한바탕 난리가 난 뒤 간신히 피가 멈췄다. “언니, 살기 싫다.” 보리의 말에 언니는 화들짝 놀랐고 다시 그런 말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됐다. SJS 치료는 ‘드레싱’이라는 방법으로 손상된 피부를 다 벗겨내고 새 살이 나도록 하는 원리를 썼다. 살갗을 벗겨내는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진통제 모르핀을 맞았다. 환각상태에서 잠이 들고 깨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꿈을 꿨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날개를 단 그들은 침대에 누운 보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찬양을 하고 예배를 드리는 천사들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그곳은 천국이었다. 평안이 왔다. 그날 밤 하나님이 그녀를 찾아오셨다.

모태신앙으로 늘 교회에 다녔지만 하나님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그러나 고통이 줄어들진 않았다. 수포로 피범벅이 된 보리는 환자복을 입을 수도 벗을 수도 없었다. 의료진이 무심코 내뱉은 말은 모멸감을 줬다. “얘는 뭐야. 환자복도 안 입었잖아. 그냥 시트로 둘둘 말려왔네.” “전신 화상인가, 무슨 병인데 이 지경이야.” 자기들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보리의 몸을 내동댕이쳤다.

그때마다 그녀는 온몸을 벌벌 떨었다. 환자 등록 번호 ‘AZ731998.’ 물건처럼 다뤄진다고 느꼈다. 오전 8시, 오후 2시와 7시. 하루 세 번씩 살갗을 벗겨냈다. 진통제도 소용없었다. 어느 날 치료 후 언니에게 부탁했다. “언니, 손에 붙은 이 거즈 좀 떼 줘.” 보리는 겨우 입을 열어 턱 아래로 손바닥을 가리켰다. 언니는 머뭇거렸다. “이거 거즈가 아니고 손바닥 피부야.”

손톱과 발톱이 다 빠졌다. 머리카락도 빠지기 시작했다. 두피는 가뭄에 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졌고 그 사이로 머리카락이 한 줌씩 빠졌다. 입 안이 헐어 물 한 모금도 먹을 수 없었다. 하루 세 번 드레싱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 링거 라인을 바꾸고 소변 줄을 교체했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병원비가 걱정됐다. 아버지 퇴직 후 살림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9년 8월 10일로부터 1년
보리는 삼남매 중 막내였다. 교사인 큰오빠가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병원비로 내놨다. 지옥 같은 고통의 순간을 견딜 수 있게 한 건 가족이었다. 어느 늦은 밤 오빠가 퇴근길에 병실에 들렀다. 보리는 오빠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것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이 상황에서도 주님을 먼저 찾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K보리가 최근 자신의 책 ‘일곱 번째 봄’에 손을 얹고 있다. 강주화 기자

보리와 아버지 어머니 언니 오빠 모두 하염없이 울었다. 처참한 상황에서도 가족은 감사 기도를 했다. 조금씩 새살이 났다. 몸도 가눌 수 있게 됐다. 미음도 먹게 됐다. 걷는 연습을 했다. 하지만 몸 여기저기에 이상이 왔다. 엉덩이가 붙어 성형수술을 하기도 했고 항문이 좁아져 특수치료를 받기도 했다. 석 달여 만에 겨우 퇴원했다. 걸음을 어느 정도 뗀 뒤였다.

퇴원 후 반년이 흘렀다. 소화기내과, 피부과 통원치료가 끝났다. 하지만 눈에 계속 문제가 생겼다. 네 차례 크고 작은 눈수술을 했다. 수술 때 마취를 했지만 뜬 눈 위로 날카로운 철제 수술도구를 봐야 했다. 핏발이 서고 소름이 돋았다. 공포는 어느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떨리는 동공 위로 예수님이 비쳤다. 그분의 손에 난 못 자국,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 보리의 마음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사 41:10) 그녀는 그렇게 그 시간을 견뎠다. 그동안 친구들의 연락이 뜸해졌다.

2009년 8월 10일로부터 네 번째 봄
언니는 다시 직장을 구했고 부모님은 농장일을 나갔다. 가족의 일상을 회복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수술에도 시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수술 동의서에 아홉 번째 사인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 언니가 손을 가만히 잡았다. 보리의 손등 위로 언니의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보리는 그날 저녁 혼자 교회로 갔다. 집에선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울 수도 없었다.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하나님, 치료의 끝이 보이지 않아요. 너무 두려워요. 이러다 제가 정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까봐 두려워요. 하나님 부탁해요. 이제 제발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저는 더 이상 자신이 없어요.’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얼마 뒤 누군가 조용히 다가와 꼭 안아주었다. 보리가 출석하는 교회 사모님이었다.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안아 주었다. 그 순간 보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하나님은 어떤 순간에도 그녀를 잊지 않고 천사를 보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부터 새벽기도도 나가고 매주 토요일 사모님과 기도 모임도 했다.

병원, 교회, 집을 오갔다. 시간은 흘렀고 또다시 봄이 찾아왔다. 입사 동기는 팀장으로 진급하고 연애하던 친구는 결혼을 했다. 결혼한 친구에게선 임신 소식이 들려왔다. 그럴 때 평범한 삶을 더 이상 살 수 없는 모습에 화가 났다.

그로부터 4년 뒤, 2013년 10월
그나마 보이던 왼쪽 눈이 급격히 나빠졌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성경책을 집어 들었다.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글자가 희미해져갔다. 시야가 흐려지고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욥 5:18) 마지막으로 눈에 남은 건 말씀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K보리가 최근 자신의 책 ‘일곱 번째 봄’ 여백에 ‘나는 꿈꾸고 하나님은 일 하십니다’라는 문장을 쓰고 있다. 강주화 기자

구강점막 이식수술을 했다. 입안의 살을 눈에 붙이는 수술이다. 시력 회복을 위해서였다. 수술 후 눈에는 묵직한 플라스틱 안대를, 입에는 붕대를 칭칭 감았다. 그 눈에 그 입을 하고서도 먹어야만 했다. 엄마가 끓여준 미음을 빨대로 먹었다. 엄마를 위해, 가족을 위해 먹었다. 하나님이 살려주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믿고 싶었다. 어떡하든 삶을 지키고 싶었다.

그녀는 하나님에게 왜 자신을 택했는지 계속 물었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한다.” 하나님이 사랑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녀는 투병기를 쓰기 시작했다.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종이를 한 줄씩 접어서 또박또박 써내려갔다. 기타를 배웠고 성구를 외웠다. 출석 교회에서 주최하는 영어성경 암송대회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다. 자신이 천천히 꿈꾸면 하나님이 반드시 일하신다는 사실을 일상에서 체험했다.

2015년 아픈 이후 일곱 번째 봄
가족들과 인천 강화도 펜션으로 1박 여행을 갔다. 보리는 한쪽 테이블에 기대 탄산수 한 모금을 마셨다. 비록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두 눈으로 볼 순 없었지만 그녀는 그 이상을 채워주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자신이 아프지 않았다면 가족들이 더 행복했을 것이란 죄책감을 감사의 마음으로 바꿔갔다. 보리에게 천국을 보여준 사람은 가족이었다.

보리는 일곱 번째 봄을 보낸 뒤 투병기를 한 출판사에 보냈다. 그 원고는 채택됐고 최근 책으로 나왔다. ‘일곱 번째 봄.’(두란노)

그리고 2017년. 아홉 번째 봄
그녀를 만났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말하지 않으면 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아채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여쁜 사람이었다. ‘그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지 물었다. 망설임 없이 답했다. “아니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프기 전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아픈 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꽃을 보는 눈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보는 눈을 얻었다. 그 눈을 잃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물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요?”라는 말이 되돌아왔다. 생긋 웃으며 말했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혼자 공원 산책하는 거요.” 다음 봄에는 하나님이 이 꿈을 이뤄주실까.

창밖으로 연분홍색 벚꽃이 날리고 있다. 연두 빛 이파리가 바람에 살랑인다. 눈뜬 우리는 저 나무들 사이로 혼자 산책할 수 있다. 꽃도, 잎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녀가 고통 속에서 본 하나님을 우리는 본 적이 있는가. 만나고 있는가.

강주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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