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기독문학기행] 미우라 아야코(하)… 눈 고개에 떨어진 밀알 하나, 열매를 맺다

일본 홋카이도의 겨울은 춥고 길다. 사람의 키만큼 쌓인 눈은 벚꽃이 필 무렵에야 녹기 시작해 아직도 그곳은 설국이다. 지난달 14일, 아사히카와 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시오카리 고개에 다다르자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숨이 찬 듯 거친 엔진소리를 냈다.

‘한 알의 밀알’이 된 나가노 마사오 추모비 앞으로 기차가 폭설을 뚫고 지나가고 있다. 고다 도시유키 제공

“기차는 지금 시오카리 고개의 꼭대기 가까이에 와 있었다. 시오카리 고개는 데시오 지방과 이시가리 지방의 경계로 큰 고개다. 아사히카와에서 북쪽으로 약 30km 지점에 있었다. 깊은 산림 속을 몇 번이고 구비 돌아 넘는 무척 험한 고개로 기차는 산기슭에 있는 역에서부터 힘겹게 오르는 곳이다.”(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설령’ 중에서)

시오카리 고개는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1922~1999)의 소설 ‘시오카리 고개’의 배경이 된 장소이다. 일본인 사이엔 ‘빙점’ 못지않게 이 소설이 많이 알려졌다. 국내엔 ‘설령(雪嶺)’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시오카리 역사 뒷편 언덕으로 시오카리고개기념관(미우라 아야코 고택)이 아련하게 보였다.

한 알의 밀알이 된 청년
소설 ‘시오카리 고개’는 열차승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순직한 신실한 크리스천 철도직원의 생애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그렸다. 기독교에 거부감을 느꼈던 주인공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죽음이란 크나큰 희생으로 생을 마감한 이야기는 깊고도 강렬하다.

소설 ‘설령’의 실제 주인공 니가노 마사오.

소설의 실제인물 나가노 마사오(長野 政 雄·1880~1909)는 국철 아사히카와 운수사무소의 서무주임이었다. 1909년 2월 28일 철도부직원 기독교청년회를 조직해 주일에 각 역을 순회하며 전도했던 그는 나요리 지역 순회전도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그가 탔던 열차가 시오카리 고개의 급경사지에 진입했을 때 객차의 연결고리가 풀려 열차가 반대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져 전복될 위험에 처해졌다. 그는 재빨리 열차 승강구 발판 쪽으로 뛰어가 핸드 브레이크를 잡아당겨 기차의 속도를 겨우 줄였다. 그러나 속도는 더 이상은 줄지 않았다.


“점점 급커브가 육박해 오고 있었다. 다시 폭주하면 기차는 틀림없이 전복한다. 여러 개의 급커브가 치례차례 기다리고 있었다고 노부오는 판단했다…노부오의 손은 핸드 브레이크에서 떨어졌다. 그 몸은 철로를 향해 날았다. 기차는 맥없이 삐거덕 소리를 내며 노부오의 몸 위로 기어올랐다. 마침내 기차는 완전히 정지했다.”(‘설령’ 중에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이야기는 1968년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로 세상에 알려졌다. 나가노 마사오는 소설 속 주인공 나가노 노부오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당시 이 사건이 기독교 복음전파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기독교 신자가 되면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시대였다. 그러나 노부오의 죽음은 그런 몽매함에서 사람들의 머리를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고 아사히카와, 삿포로를 중심으로 한 철도원 직원 몇 십 명이 기독교에 입교했다.”(‘설령’ 중에서)

미우라 아야코가 나가노 마사오를 알게 된 것은 64년 7월 초였다. “로쿠죠교회의 89세가 된 후지하라 에이기치씨 댁을 방문했을 때, 그가 신앙수기를 보여주었다. 나가노 마사오의 생애가 기록돼 있었다. 나는 나가노 마사오의 위대한 신앙 앞에 납작하게 되도록 한바탕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깊고도 강렬한 감동이었다.” (‘설령’ 작가 후기 중에서)

문학의 산실 시오카리고개기념관
시오카리고개기념관은 미우라 아야코가 ‘빙점’을 비롯해 ‘시오카리 고개’ ‘길이 있는 곳에’ 등 초기 대표작을 집필한 집이다. 작가는 결혼 후 1961년 아사히카와 도요오카 2조 4가에 이 주택을 건축해 10년 동안 살았다. 71년 새 주택으로 이사한 후 옛집을 교회에 기증했다. 교회 전도관과 목사관으로 사용됐던 구주택이 99년 이곳에 복원된 것이다.

기념관을 안내해 준 고다 도시유키(42·북도신문기자)씨는 “노후된 구주택이 철거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미우라 아야코의 팬들이 주택복원위원회를 조성해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시오카리 고개’의 배경이 된 이곳에 주택을 복원하게 됐다”고 설명해주었다.

기념관 1층은 미우라 아야코가 무명시절, 밤에는 글을 쓰고 낮에는 생계를 위해 운영하던 잡화점을 재현했다. 잉크, 연필, 노트, 과자, 기름 등이 60년대 생활상을 떠올리게 했다. “결혼 후 잡화점을 열었다. 밤 10시에 가게 문을 닫고 그날의 매출을 정리한 후 매일 밤 2시까지 글을 썼다.”(‘이 질그릇에도’ 중에서)

미우라 아야코의 고택을 그대로 옮겨 놓은 시오카리고개기념관

상점 안쪽으로 석탄난로가 놓여진 거실 테이블에 부부 찻잔이 놓여 있다. 늘 손 잡고 기도했던 부부의 모습이 그려졌다. “업무상 두 사람은 항상 함께 있다. 취재, 여행도 함께하고 산책도 함께 한다. 20여년이 넘게 구술필기를 하고 있는 우리는 한 책상에 마주 앉아 일한다.”(‘마음이 있는 집’ 중에서)
나무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갔다. 미우라 아야코 문학의 산실인 서재는 아야코와 남편 미쓰요의 직장이었다. 서재 테이블엔 원고지와 잘깍여진 연필이 있다. 작가는 추위가 극심한 겨울엔 이불을 뒤집어쓰고 ‘빙점’을 써내려갔다. 작가는 하루를 시작하며 기도했을 것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무엇을 생각할까? 아. 오늘은 나의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 하루도 잘 보살펴 주시겠지요.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언제나 기도합니다.”(‘영원한 약속’에서)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휴지통에 쓰여진 ‘감사’라는 글씨였다. 투병 중에도 감사했던 그는 휴지를 버릴 때 조차 감사를 묵상했던 듯하다.

“나는 난치병 파킨슨병에 걸렸다. 몸 상태는 의자에서 일어서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밤에 혼자 힘으로 화장실에 가지도 못하고 서너 번씩이나 미우라를 깨워서 도움을 받았다.”(‘작은 한 걸음부터’에서)

“주위 사람들의 사랑, 몇몇 친구들, 은사,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미우라 미쓰요 아니 그보다도 먼저 이 생명을 주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의 병상생활은 보물 덩어리였다.”(‘삶을 주시는 하나님’ 중에서)

2층 서재 옆엔 나가노 마사오 기념실이 있다. 영화와 소설로 만들어진 ‘시오카리 고개’의 관련자료를 관람할 수 있고 미우라 아야코가 낭독한 소설 ‘시오카리 고개’를 들을 수 있다.

지난달 14일 시오카리역사 안으로 열차가 진입하고 있다.

시오카리고개기념관의 게시판에 적혀있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는 말씀을 묵상 한 후 기념관 밖으로 나왔다. 기념관 인근에 세워진 나가노 마사오의 추모비가 시오카리 기차역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기차는 시오카리 고개를 오르내릴 것이다. 이 고개를 넘는 많은 여행자들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충실하게 살았고 충실하게 죽은 나가노 마사오를 기억하길 바래본다.

“이 고개를 넘을 때 나가노 마사오 씨를 추모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가 설날마다 새로 써서 몸속 깊이 간수하고 다녔던 유언 ‘나는 여러 형제자매들이 내 죽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감사의 참뜻을 맛보기를 기도한다’는 말을 가슴 속에 새겨두었으면 한다.” (‘설령’ 작가 후기 중에서)

승객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나가노 마사오의 이야기는 부활절을 하루 앞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게 한다.

“하나님 제 생명 그녀에게 주어도 좋습니다”
-미우라 아야코·미우라 미쓰요 부부, 병도 가르지 못한 지고지순한 사랑-


“내가 병을 앓는 동안, 미우라 미쓰요는 나 아닌 다른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며 기다려 준 것이다. 1주일에 한 번은 꼭 병문안을 와 주었고 함께 기도해 준 미우라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병을 치료하고 결혼할 수 있었다.”(‘이 질그릇에도’에서)

미우라 아야코와 미우라 미쓰요 부부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유명하다. 아야코를 세 번째 만난 날 미쓰요는 “하나님 제 생명을 그녀에게 주어도 좋습니다. 그녀를 낫게만 해 주세요. 3일만이라도 함께할 수 있다면 결혼하겠습니다”고 기도했다. 이 기도가 아야코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사람은 59년 5월 24일 아사히카와의 로쿠조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작가는 1992년 다시 병상생활을 시작했지만 투병 중에도 남편과 함께 교회에 출석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과 함께 구약성서 3장, 신약성서 1장을 읽었다. 성경을 읽고나면 남편이 아내의 건강과 집필을 위해, 이웃을 위해서 기도했다. 이들에게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였다.

남편 미우라 미쓰요는 아야코의 집필을 돕기 위해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병상에 있는 아내의 손이 돼 구술집필을 도왔다. 남편은 83권의 책 중 70권을 구술집필 했다. 67년 ‘시오카리 고개’를 쓸 때부터 30여년동안 충실한 비서로 지냈다. 사랑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우라 아야코는 고통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었다. 고통을 통해서 주님의 구원의 빛을 더 잘 드러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했다. 또 죽기 직전에 죽는 것은 내게 주어진 최후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병으로 잃게 된 것은 건강뿐이라고 생각했다. 신앙도 얻었고 다시 바꿀 수 없는 남편도 얻었고 소설을 쓰는 즐거움도 얻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순조로울 때도 있고 불우할 때도 있다. 불행해 보일 때도 있고 행복해 보일 때도 있다. 어느 쪽이던 절망할 필요도 없으며 기뻐할 필요도 없다. 빛은 언제나 우리 바로 곁에 있다고 믿고 싶다.”(‘작은 한 걸음부터’에서)

시오카리(일본)=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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