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신항 철재부두에 있는 세월호 선체. 뉴시스


박정희·박근혜 시절에 초대형 선박 사고 발생
재난은 가라! 그러나 재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
사고 나면 ‘피라미’만 처벌 받고 ‘몸통’은 빠져
참사 때마다 약발 없는 대책만 남발하는 정부
국민이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이끌어내야
우리나라는 위험사회 넘어 초위험사회로 진입

재난을 묻다/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 지음, 서해문집, 312쪽, 1만3500원

우리나라 연해에서 발생한 해난사고 가운데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선박 침몰사고 2건이 각각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일어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때 우리나라 첫 부녀 대통령이라는 명예를 안았지만 ‘대참사 첫 부녀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것이다. 평생 씻지 못할 ‘대참사 첫 부녀 대통령’이라는 오명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깨지지 않는 기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는 국민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를 국민에게 안겼다. 시간이 흐른다고 참사를 뇌리에서 지우면 안 된다. 참사 원인,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을 위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지난달 24일 전남 진도군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수면 위 13m까지 올라온 세월호가 2척의 잭킹바지선에 와이어로 묶여 반잠수식 선박으로 이동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일보DB

'재난을 묻다' 책 표지 사진.

 미수습자를 수습한다고 일단락되는 성격의 참사는 더더욱 아니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아직 진행형이다.

잊을 만하면 참사가 터지는 우리나라는 ‘참사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1964년부터 2013년까지 10명 이상이 사망한 재난은 무려 276건에 달했다. 두 달에 한 번꼴로 재난이 발생한 셈이다. 유럽 선진국이 테러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우리나라는 참사 위험에 직면해 몸을 떨고 있다.

최근 들어 위험은 점점 대형화·고도화·집적화·복합화되고 있다. 건물은 더욱 높아지고, 지하철은 더욱 깊은 지하에 건설되고, 철도·지하철·항공기·선박 등은 더욱 대형화되거나 가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위험사회를 넘어 초위험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위험이 구조화·고착화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위험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치돼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시민들이 육상 거치된 선체를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모두 7명으로 구성된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재난참사기억프로젝트팀’은 세월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억하고 기록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과거의 재난을 역사 속에서 불러냈다. 이들은 유가족을 만나고, 신문 기사와 국회 기록과 보고서를 뒤지고, 정부 정책과 법원 판결문을 재해석하면서 대형 재난사고를 재구성하고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남영호 침몰사고(1970. 12. 15)는 우리 연해에서 발생한 최악의 해난사고다. 탑승 인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피해자 규모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당시 내무부 교통부 해상해양경찰대별로 집계가 달랐다. 

탑승객 명단을 작성하지 않고 초과 인원을 태웠기 때문이다. 사망자를 최소 319명에서 최대 337명으로 추산할 뿐이다. 생존자는 단 12명에 불과했다.

남영호는 출항부터 침몰 조짐을 안고 있었다. 정원과 적재량을 각각 최소 30명과 4배가량 초과한 것이다. 과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였다. ‘죽음의 항해’를 감행한 셈이다.

 생존자는 “평소 뱃전과 수면까지의 거리가 190㎝에 달했지만 사고 당일은 30~40㎝밖에 되지 않았다. 바닷물이 거의 배에 넘실넘실거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만에서 코리아쌀베지 관계자들이 육상 거치된 세월호 세척과 지장물 제거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선장과 통신사는 무자격자였다. 남영호가 조난 무전을 쳤지만 해경은 제때 응답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본 순시선과 제7관구해상보안본부가 한국 해경에 침몰 사실을 긴급 타전했지만 한국 해경은 묵묵부답이었다.

일본 순시선과 제7관구해상보안본부는 사고 당일 오전 9시부터 낮 12시30분까지 줄기차게 무전을 쳤지만 한국 해경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7관구해상보안본부는 오전 9시30분쯤 순시선 5척을 현장에 급파해 구조활동을 하도록 지시했다.

한국 경비정들은 골든타임을 한참 넘긴 뒤에야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일본 순시선이 8명, 우리 해경이 3명, 우리 어선이 1명을 구조했을 뿐이다. 더 빨리 현장에 도착했더라면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가족들은 국가의 무능과 선주의 뻔뻔함을 목도하고도 변변한 항변도 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의 군사독재 공포가 국민을 짓눌렀고, 참사는 민주화 세력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유가족의 발언이 당시의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군사정부 때니까 꼼짝을 못했어. 그 당시에는 피해자가 까불면 더 때려. 이거 뭐 숨을 쉴 수가 있어야지. 그때는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게 너무 비참한 거야.” 당시에도 유가족들 사이에 ‘이게 나라냐’라는 비통함과 울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영호 참사를 계기로 매뉴얼을 만들고 관리감독을 엄격히 했다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정부의 대응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불행하지만 앞으로도 ‘제2의 남영호’ ‘제2의 세월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참사희생자정부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다. 뉴시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2003. 2. 18)는 지하철 사고 가운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인명피해를 낸 참사였다. 이 참사로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다쳤다. 승객의 방화로 시작된 화재는 참사로까지 악화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쏘시개나 다름없는 객차의 재질, 1인 승무원제로 인한 안전인력의 부족, 취약한 방재시스템 등이 맞물리면서 대참사로 이어졌다. 1년 뒤 홍콩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망자는 없고, 대피과정에서 14명이 찰과상을 입은 것과는 크게 대비되는 참사였다.

전남 여수시 대림산업 폭발사고(2013. 3. 14), 전남 장성군 장성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 화재 참사(2014. 5. 28), 경기도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의집 화재참사(1999. 6. 30) 등 이 책에 소개된 재난참사 7건의 원인은 기업의 탐욕과 국가의 무책임으로 요약할 수 있다.

대부분 기업주는 법망을 빠져나가고 현장 책임자 등 ‘피라미들’만 처벌을 받았다. 관리감독의 책임을 준엄하게 물은 사례도 별로 없다. 대참사가 있을 때마다 이런저런 대책을 발표하지만 대체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와 판박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들은 말한다. “참사를 둘러싸고 누구는 정의와 단죄를 말하고 누구는 회복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무엇보다 기억과 기록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기억과 기록이 가능할 때만, 그래서 진실이 드러날 때만 합당한 치유와 보상,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 용서와 화해를 통한 공동체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만에서 시민들이 미수습자 사진을 보고 있다. 뉴시스


작가들은 “전문가와 주변 인사들의 격려와 관심, 지지와 지원이 희생자 유가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된다. 재난 참사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해당 사고와 처리 과정에 대해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이들과 일반 시민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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