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 연세누리정신과 원장
“부모님은 제게 잘해 주세요. 같이 산책도 해주시고, 집이 부자도 아닌데 제가 원하면 어려서부터 옷이든 장난감이든 뭐든지 사주셨어요. 아버지 사업도 어려우신데 저를 미국에 유학까지 보내주셨고요. 그래서 부모님에게 별 불만은 없어요.”

조기 유학 중 귀국해 진료를 받았던 아이의 말이다. 그런데 이 아이의 문제는 고질적인 이명 때문에 몇 년간 시달려 왔다는 것이다. 이명과 불면증으로 인해 유학 생활이 도저히 힘들어 귀국한 상태였다.

“어렵게 유학을 갔는데 그 아이들 보다 잘하고 열심히 해야 했어요.” 

실제로 그 아이는 학교에서 매우 모범적이고 성적도 우수했다. 다른 부모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속내는 겉으로 보는 것과 달랐다. 그 아이는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부담을 많이 주시는 건 아니예요. 하지만 ‘너만 잘해주면 이 정도 고생쯤은 백번이라도 할 수 있어’라거나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줄 테니까 넌 공부만 열심히 해’라고 하시는 말씀이 사실은 은근한 강요로 들렸어요. 공부를 안하고 있으면 죄책감이 들고 제가 공부를 덜했다 싶으면 귓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 집중을 할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아이의 엄마는 공부를 잘하는 형제들 틈에서 자랐다고 했다. 수재 소리를 듣는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평범했던 엄마는 늘 열등감을 느끼며 살았다. 자신이 무가치하고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만 잘했다면 자신도 언니나 동생들 처럼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좋은 직장도 갖고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 살 수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남편도 다른 조건은 보지 않고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우리 아이가 언니네 아들보다는 잘해야 하는데, 뒤처지면 어쩌나’ 하는 쫓기는 마음이 생겼다. 아이도 이런 엄마의 마음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아이도 사촌들과 비교해 자신이 좀 나아야 마음이 편했고, 엄마도 만족스러워 했다.

요즘 대다수 부모들은 아이에게 물리적으로는 모든 걸 충족시켜 준다. 그리고 아이에게 그것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개는 겉으로는 “다 아이 잘 되라고 하는 거지요. 난 아이에게 바라는 거 없어요. 자기 앞가림하고 편하게 살라고 하는 거지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하진 않아요. 이왕이면 돈 들였으니 열심히 하라고만 해요”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내가 이루지 못한 한을 네가 풀어 주어야 해. 넌 내 모든 희망이야’라는 식이 주문이 들어 있다. 아이 목을 죄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가 얘기하지 않아도 무언의 압력을 예민하게 느낀다. 

부모 마음 속에 있는 콤플렉스를 먼저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게 아이의 콤플렉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호분(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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