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에 언급된 중국 역사 속 인물들. 왕안석의 정책은 민생 파탄을 낳았고, 왕망은 권모술수로 황제의 권력을 찬탈했다. 측천무후는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펼쳤으며 여불위는 권력을 위해 자신의 아이를 잉태한 여인을 왕에게 바쳤다. 제환공은 만년에 간신을 가까이해 굶어 죽었다. 삼인 제공


역사무대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간신들
간신은 아첨·모함·협박·파당·축재에 능해
똑똑하고 치밀하고 집요한 속성 갖고 있어
간신배 방치하면 국가·국민이 도탄에 빠져
19대 대선서 국민의 현명한 판단 필요해

간신/오창익 오항녕 지음, 삼인, 284쪽, 1만4000원

'간신' 표지.



간신(奸臣)은 시대를 불문하고 역사무대에 등장했다. 임금이 아둔하고 어리석으면 간신이 득세했고, 임금이 똑똑하고 올곧으면 간신은 설 땅을 잃었다.

간신(奸臣)과 간신(諫臣)은 구별해야 한다. 奸臣은 간사한 신하이고, 諫臣은 임금에게 옳은 말로 간하는 신하이다. 간신(奸臣)과 간신(諫臣)의 한글 표기는 똑같지만 뜻은 천양지차다.

 이 책의 큰제목은 간신(諫臣)이 아니고 간신(奸臣)이다. ‘그들은 어떻게 나라를 망쳤는가’란 부제를 보면 이 책의 지향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간신하면 헤픈 웃음으로 아첨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내시 못지않게 하찮은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런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간신은 아주 똑똑하고 치밀하고 집요하다. 그는 사리사욕을 취하지만 절대로 사리사욕처럼 보이도록 행동하지 않는다. 거짓말·아첨·협박·모함·파당·축재 등 온갖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신의 출세나 축재를 위해서라면 나라의 장래와 백성의 안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간신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무리를 지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간신 그룹으로 세력을 키운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 사회의 시스템으로 깊게 뿌리를 내린다. 간신 한 명을 처벌한다고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 그들은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한다.

저자들은 옛 중국과 고려, 조선의 간신 25명을 집중 조명했다. 이들과 결탁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이 책에 등장하는 간신 규모는 훨씬 많다.

고려 공민왕 때 신돈(辛旽)은 왕의 정신을 뒤흔든 도사였다. 천민 출신으로 고려 말 승려였던 신돈은 공민왕의 신임을 받고 권력을 장악했다. 공민왕과 신돈 사이에는 희한한 일화가 있다.

 공민왕이 위기일발의 순간에 승려가 구해주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공민왕을 칼로 해치려고 할 때 승려가 나타나 공민왕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김원명이라는 신하가 공민왕에게 신돈을 천거했다. 공교롭게도 신돈이 꿈속의 승려와 무척 닮았다고 한다. 신돈은 총명했고 말도 잘했다고 한다. 공민왕은 도를 깨우친 사람으로 보고 신돈을 중용했다. 공민왕이 신돈에게 제수한 관작의 글자 수가 50자에 달했다.

충직한 신하 이승경과 정세운이 신돈을 요승(妖僧)이라고 간언했지만 공민왕은 충언을 듣지 않았다. 이승경과 정세운이 죽은 다음 신돈은 궁궐을 드나들며 권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한때 신돈은 공민왕의 개혁 작업을 적극 돕기도 했다. 하지만 신돈은 정치권력을 장악하면서 뇌물수수, 인사청탁, 탐욕, 불륜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신돈은 능력보다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측근들을 주로 천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추천을 받아 차은택 김종덕 송성각 김상률을 문화 관련 요직에 앉힌 것과 판박이다. 저자들은 “최순실의 측근 차은택은 스스로 창조경제추진단장과 문화창조융합본부장이 되었고, 차은택의 대학 은사인 홍익대 김종덕 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광고업계 선배인 송성각은 한국콘텐츠진흥원장, 외삼촌 김상률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대학원 은사 김형수는 미르재단 이사장에 임명했다”고 지적했다.

신돈의 비행이 그칠 줄 모르자 사헌부가 신돈을 처형하고 그 당파를 귀양 보내고 가산을 몰수해야 한다고 공민왕에게 거세게 요구했다. 결국 신돈은 귀향을 갔다가 이틀 만에 죽임을 당한다.

최순실씨의 다양한 모습. 뉴시스


 최순실 일당의 구속수감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저자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법의 심판을 받고 있는 이들을 현대판 ‘간신’으로 판단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로 잘 알려진 중국 진(秦)나라의 환관 조고(趙高)도 대표적인 간신이다. 지록위마는 조고가 자신의 권세를 시험하기 위해 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마음대로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조고는 진시황이 죽자 승상 이사와 짜고 진시황의 가짜 조서를 만들어 진시황의 큰아들 부소(扶疏)를 죽이고, 황제의 자질이 부족하고 우둔한 호해를 황제로 즉위시켰다. 호해는 대궐 출입을 통제하는 낭중령 자리에 조고를 앉혔다.

 박근혜 정권에서 문고리 3인방이 권력을 농단한 것처럼 조고도 국정농단의 선봉에 섰다. 조고를 포함한 간신배의 농간으로 황제에 오른 호해의 무능이 진나라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조고와 한통속인 승상 이사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호해에게 건의한 말을 들으면 귀를 의심할 정도다. “검소하고 절개가 있으며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 조정에 있으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즐거움은 끝장입니다. 간쟁하고 따지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제멋대로 방만한 행동을 할 생각을 굽혀야 합니다. 열사(烈士)가 죽음으로 절개를 지키는 행실이 세상에 드러나면 음란한 즐거움에 탐닉하는 풍조가 사라집니다.”

검소하고 절개 있고 어질고 의로운 사람을 가까이 두라는 것이 아니라 멀리하라는 말을 듣고 호해는 흡족해 한다. 이런 간신들과 무능한 호해가 만났으니 진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저자들은 조선 광해군 때의 문신 이이첨(李爾瞻)을 실록까지 손댄 역사의 간신으로 평가한다. 이이첨은 선조의 후사 문제로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이 대립하자 대북의 영수로서 광해군의 옹립을 주장하다가 유배됐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조정에 복귀한 뒤 소북파를 숙청하고 폐모론을 주장해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부터). 국민일보DB. 뉴시스


 그는 ‘선조실록’ 편찬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면서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충신들을 깎아내리는 역사 왜곡에 일조했다. 사관은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 이항복 등이 수찬을 끝내지 못하고 기자헌, 이이첨이 대신하게 되자 역사기록이 아주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이이첨은 인조반정 뒤 지방으로 도망을 가다가 붙잡혀 참형을 당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혼군(昏君·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폐위시켰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에 따른 법적 조치였다. 하지만 이들 기관의 법적 단죄도 국민의 분노와 저항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왕조시대에 왕에게 필요한 것은 간신을 구별하는 눈이었다. 군주가 바르고 영민하면 간신이 득세하지 못하고, 혹시 간신이 있더라고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군주가 어리석고 자질이 부족하면 온통 간신배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현명한 유권자들은 19대 대통령선거에서 간신을 용납하지 않을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시민들이 민주주의 시대에 간신을 분별하는 눈을 갖고 있어야 제2, 제3의 국정농단을 막을 수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