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3사가 전국 330개 투표소에서 진행 중인 공동 출구조사 수치의 사전 유출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철통 보안' 속에 조사를 진행 중이다. 대통령 탄핵 사태로 비롯된 조기 대선의 민감한 국면과 2014년 6·4 지방선거 당시 JTBC의 '지상파 출구조사 인용 보도' 경험을 감안해 '수치 관리'를 한층 강화한 것이다.

과거 대선, 총선 등 전국 선거에서는 지상파 방송의 출구조사 분위기가 정치권에 전달되곤 했다. 후보 캠프에서 판세 분석을 위해 방송사의 출구조사 상황을 알아보는 경우도 있었다. 출구조사를 사칭한 ‘지라시’도 횡행했고, 이를 근거로 투표 당일 오후에는 지지층 결집을 요구하는 카카오톡 메시지 등이 범람했다.

이번 대선에선 이런 분위기가 연출되기 어려워졌다. 방송사마다 철저하게 출구조사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수치가 유출될 경우 '탄핵 대선' 국면에서 자칫 보혁 갈등의 소재로 이용되거나 작용하거나, 정치 개입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지방선거의 'JTBC 사건'도 보안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JTBC는 지상파 3사가 출구조사를 발표한 지 3초 만에 같은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KBS MBC SBS 지상파 3사는 "JTBC가 출구조사 결과를 무단으로 사용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손석희 사장을 무혐의 처리했지만 임원과 PD, 기자는 기소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출구조사 수치는 조사를 진행하고 방송을 준비하는 팀에서만 알고 있다. 극도의 보안 속에 관리된다. 사내에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지상파 3사와 한국방송협회가 구성한 '방송사 공동 예측조사위원회'(KEP)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전국 330개 투표소에서 약 9만9천명을 대상으로 출구조사를 진행한다. 칸타퍼블릭, 리서치 앤 리서치, 코리아리서치센터 등 3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원 1650명이 각 투표소 출구로부터 50m 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 5명마다 1명씩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집계된 결과는 지상파 3사에 각각 전달돼 투표가 종료되는 오후 8시 정각에 예상 당선자와 득표율이 동시 발표된다. 심층조사 결과는 오후 8시 30분부터 방송될 예정이다. 이번 조사의 오차한계는 출구조사의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0.8%포인트, 심층조사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로 KEP는 예상했다.

지상파 3사는 이번에 국내 선거 최초로 ‘심층출구조사(Exit Poll with a Long-form)'를 도입했다. 심층출구조사는 “누구에게 투표했나”뿐 아니라 “누가 투표했나” “왜 투표했나”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 등을 파악하는 조사 기법이다.


투표자에게 성별, 연령, 소득, 지역, 교육 수준, 결혼 여부, 종교 등 인구통계학적 질문을 던져 성향을 파악하고, 이어 후보 결정 요인, 정치 성향, 차기 정부 과제, 사회 현안 의견 등 심층적인 질문을 추가로 던진다. 약 130명의 조사원이 전국 63개 투표소에서 약 3천300명을 대상으로 16개 문항을 심층 조사하고 있다.

‘표심’을 좀 더 정확하고 깊숙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조사 방식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국내에선 막대한 비용 때문에 시도되지 못했다. 지상파 3사는 10억원 이상 소요되던 기존 출구조사에 비해 훨씬 많은 자금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KEP 관계자는 “지지 후보만 묻는 기존 출구조사와 심층출구조사를 병행하고 그 결과에 통계학적 가중치를 부여한다”며 “어떤 배경과 생각을 가진 국민이 어떤 후보를 지지했고,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과 기대 때문에 지지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EP는 심층출구조사를 위해 통계학과 언론학 전문가를 대거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고려대 통계학과 박유성 교수, 숙명여대 통계학과 김영원 교수, 서강대 경영학과 이윤동 교수,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웅 교수 등이 참여했다.

박유성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껏 출구조사라고 했던 건 사실상 출구조사가 아니었다. 학문적으로 말하면 이번에 시도하는 출구조사가 진짜 출구조사”라며 “선거 보도를 출구조사를 넘어 민주주의를 위한 출구조사가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심층출구조사 결과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국민이 어떤 이유로 어떤 정책과 후보를 지지했는지 보여준다. 국민의 생각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이어서 당선자가 국정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통해 국정 방향을 제시하는 조사”라고 했다.

KEP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출구조사가 실시되지 않은 사전투표 결과도 '우회적으로' 반영키로 했다. 방송협회 관계자는 "선관위로부터 사전투표자의 지역, 성별, 연령 등 자료를 미리 받아 '인구통계학적으로 비슷한 유권자는 유사 성향을 가질 것'이라는 가정하에 본조사 결과를 보정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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