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121>  “새 보안관이 왔다” 기사의 사진
‘하이눈’의 포스터
요즘 아이들에게 우상(아이돌)이라면 뽀샤시한 얼굴로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돌 가수’들, 또는 만화에서 튀어나온 ‘슈퍼히어로’들이겠지만 내가 꼬마였을 때 내 우상은 서부의 보안관이었다. 가슴에 반짝이는 별을 달고 멋진 총 솜씨로 악당들을 무찌르는. 정의의 편에 서서 악을 응징한다는 점에서는 ‘셰인’ 같은 떠돌이 총잡이나 다를 바 없다 해도 ‘법과 질서’라는 최상의 선(善)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권위까지 느껴지는 ‘와이어트 어프’ 같은 보안관은 아이들의 우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최근 린지 그레이엄 미국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을 지칭해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다(There's new sheriff in town)”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했을 때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음을 보여주었다”고 말하더니 곧 이어 북한을 겨냥해서도 “마을에 새 보안관이 왔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전임 보안관’ 오바마 때와는 아주 달라질 것임을, 완력을 행사하는데 거리낌이 없을 것임을 분명히 강조한 것이다. 그레이엄 의원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 옛날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서부영화의 명보안관들이 떠올랐다.

우선 글자 그대로 ‘새 보안관’들. 아주 옛날 고전으로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한 ‘돌아온 데스트리(Destry Rides Again, 조지 마샬, 1939)'가 있다. 마을을 장악한 부자의 손에 놀아나던 보안관이 죽자 부자는 조종하기 쉽게 마을 주정뱅이를 새 보안관으로 앉힌다. 그러나 그는 과거 명보안관이었던 데스트리의 보안관보였다. 그는 데스트리의 아들을 자신의 보안관보로 초청하고 데스트리 주니어는 명사수임에도 무장하지 않은 채 평화적인 방법으로 마을을 정화해나간다. 그러나 결국은 부자 패거리들과 총싸움을 벌이게 되고 완전히 승리해 마을을 부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법과 질서가 자리잡게 만든다. 이런 데스트리의 모습은 일단 협상 같은 평화적 방법을 모색하다가 안 되면 결국 무력사용도 불사하겠다는 미국의 모습과 겹친다.

또 현대판 서부극인 ‘워킹 톨(Walking Tall, 필 칼슨, 1973)'도 생각난다. 전직 프로레슬러였다가 보안관으로 변신한 뷰포드 푸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푸서는 레슬링에서 은퇴한 뒤 테네시주의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려하지만 고향마을이 이미 악당들로 인해 소돔과 고모라처럼 변해있자 보안관으로 출마해 당선된다. 그는 박달나무 몽둥이를 깎아 그것을 마구 휘두르면서 도박장, 매음굴 같은 악당 소굴과 마약을 거래하는 악당들을 응징한다. 비록 폭력에는 폭력이라는 식으로 대응함으로써 법적 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음에도 관객 입장에서는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그래선지 이 영화는 흥행에 크게 성공(제작비 50만달러로 2300만달러 수입)하면서 컬트 클래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04년에 드웨인 존슨 주연으로 리메이크작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새 보안관은 아니지만 명보안관으로는 명장 프레드 진네만의 걸작 ‘하이눈(High Noon, 1953)'의 윌 케인(게리 쿠퍼)과 서부영화의 단골 와이어트 어프도 있다. 겁먹은 마을사람들의 외면 속에 혼자 외롭게 흉악한 무법자들과 대결해야 하는, 특히 보안관으로서 사법적 정의에 대한 의무와 갓 결혼한 아내에 대한 인간적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에도 악당들과의 단신 대결에 나서는 케인의 모습은, 당시 2차대전으로 전쟁피로증에 시달리던 미국 국민의 정서를 무릅쓰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고독한 결단이라는 정치적 입장과 겹쳐져 더욱 눈길을 끈다. 그래서인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대통령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이 영화를 꼽았으며 특히 클린턴은 백악관에서 17회나 이 영화를 틀게 하는 등 ‘고독하게 여론을 거스르는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이 영화에서 힘을 얻었다’고 한다.

미국뿐이 아니다. 케인 보안관은 1980년대 자유노조운동이 한참일 때 공산압제에서 벗어나려던 폴란드 민주화투사들에게도 힘을 주었다. 특히 1989년 폴란드가 정치적 미래를 결정할 투표를 앞두고 있었을 때 하이눈에 나온 케인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가 전국에 나붙었다. 권총 대신 투표함을 들고, 또 보안관 배지 대신 자유노조 로고가 박힌 휘장을 두른 케인 보안관의 모습이었다. 그 아래 적힌 문구는 이랬다. ‘1989년 6월4일은 하이눈의 날’. ‘하이눈’이야말로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의 결투를 상징한다는 은유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눈은 제작 및 개봉 당시 매카시즘 선풍으로 인해 의심쩍은 눈총을 받아야 했다. 각본가인 칼 포먼이 공산주의자 혐의를 쓰고 반미위원회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던 탓이다. 그래서 주연도 게리 쿠퍼가 맡게 됐다고 한다. 원래 주연 후보는 그레고리 펙이었으나 그가 포먼 참여를 이유로 들어 출연을 거부했고 이어 찰턴 헤스턴, 말론 브랜도, 커크 더글러스, 몽고메리 클리프트, 버트 랭카스터가 모두 출연 제의를 고사했다. 그래서 당시 인기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던 쿠퍼가 비록 50대의 나이였음에도 극중 30대인 케인역을 맡게 됐다는데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인기를 완전히 회복했다.

또 한 가지 캐스팅과 관련해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가 나중에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국제적 스타가 되는 리 밴 클리프의 데뷔작이었다는 사실. 밴 클리프는 당초 이 영화에서 로이드 브리지스(배우 제프 브리지스의 아버지)가 맡았던 꽤 비중있는 조연인 보안관보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제작자 스탠리 크레이머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코가 너무 매부리코여서 악당처럼 보이니 수술을 받으라고 권한 것을 거부했다가 대사 한마디 없는, 단역에 가까운 악당 부하로 출연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그 날카로운 외모 때문에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악당 겸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으니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긴 맞는가 보다.

케인 보안관은 픽션의 인물이지만 실존인물로 누구보다 유명한 보안관이 와이어트 어프다. ‘OK목장의 결투’로 명성을 날린 그 사람. 사실 OK목장의 결투는 객관적인 법집행이라기보다 클랜턴 일가와 어프 형제들 간의 집안싸움 성격을 띠고 있어 와이어트 어프의 보안관 업적에 넣기는 다소 어색하지만 워낙 유명한 일화라 와이어트 어프를 얘기할 때 OK 목장을 빼놓을 수 없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그를 다룬 영화들도 대부분 이 이야기가 주제가 되곤 했다. 이를테면 헨리 폰다가 어프역을 맡아 서부 최고의 건맨이면서 여자에게 말도 잘 못 붙이는 수줍은 보안관 모습을 보여준 고전 걸작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 존 포드, 1946)’와 버트 랭카스터가 과묵한 어프, 커크 더글러스가 말쑥한 폐병환자 총잡이 독 할리데이로 나온 ‘OK 목장의 결투(존 스터지스, 1957)’, 그리고 커트 러셀이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어프역을 연기한 ‘툼스톤(조지 P 코스마토스, 1993)’이 다 그렇다.

이밖에 역시 실존인물로 친구였지만 악명 높은 무법자 빌리 더 키드를 사살할 수밖에 없었던 팻 개리트 보안관(제임스 코번) 이야기를 다룬 ‘관계의 종말(Pat Garrett and Billy the Kid, 샘 페킨파, 1973)’, 또 픽션이지만 존 웨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늙은 애꾸눈 술고래 보안관 루스터 카그번이 등장하는 '진정한 용기(True Grit, 헨리 해서웨이, 1969)’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보안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편, 훌륭한 인물만 있는 건 아니다. 나쁜, 심지어 악당이라고 할 수 있는 보안관도 있다. 마을 유지나 악당의 돈과 권력, 무력에 눌려 허수아비 노릇을 하거나 악당의 방패막이가 되곤 하는 보안관, 또는 스스로 법인양 자신의 관할에서는 왕 노릇을 하면서 권력을 남용하는 보안관 등이다. 전자의 예는 허다하게 많아서 특별히 예를 들 것도 없지만 후자의 예로는 ‘용서받지 못한 자(Unforgiven, 클린트 이스트우드, 1993)’의 빌 대것 보안관(진 해크먼)과 ‘람보(First Blood, 테드 코체프, 1982)’의 보안관 윌 티즐(브라이언 더네이)이 기억에 남는다. 대것은 마을의 평화를 지킨답시고 마을에 흘러들어온 흑인 총잡이 모건 프리먼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그를 죽였다가 이스트우드에게 혹독하게 보복당하는 인물이고, 티즐은 보안관의 직권을 남용, 옛 전우의 유족을 찾아 마을에 들어온 월남 참전용사 람보에게 그가 단지 떠돌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을을 떠나라는 등 먼저 시비를 걸었다가 ‘1인 군대’나 마찬가지인 람보에게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등 호되게 당하는 곤욕을 치른다.

‘마을의 새 보안관’이라는 트럼프가 혹시라도 이런 보안관이 돼서는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이 든다. 워낙 종잡을 수 없이 좌충우돌하는 사람이니.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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