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122>일본영화, 독일영화 기사의 사진
‘레드 배런’ 포스터
인류역사상 최악의 전쟁을 일으킨 주범국 일본과 독일의 전쟁영화 두 편을 봤다. 아니나 다를까, 과거 반성에 인색한 일본과 그렇지 않은 독일의 태도가 그대로 읽혀졌다. ‘영원의 제로(Eternal Zero, 야마자키 다카시, 2013)'와 ‘레드 배런(Red Baron, 니콜라이 뮐러쇤, 2008)’. 비록 시대배경은 각각 2차대전과 1차대전으로 다르지만 공교롭게도 둘 다 전투기 조종사를 통해 전쟁을 다뤘다.

2차 대전 초기만 해도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군림했던 일본제국군의 제로전투기, 정식명칭 미쓰비시 A6M을 조종하다 카미카제 특공대로 자원해 산화한 조종사 이야기인 ‘영원의 제로’는 개봉 당시 일본에서조차 전쟁과 카미카제를 미화, 찬양한 영화가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신이라고까지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영화가 “거짓말로 가득 차 있으며 조작된 신화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야자키를 비롯한 일단의 비평가들은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 카미카제 특공대 조종사들이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초개같이 던진 게 아니라 마지못해 강압에 의해 자살임무에 투입됐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카미카제 이야기는 조작된 신화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든 야마자키 감독은 거세게 반발했다. “나는 전쟁을 완전한 비극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전쟁을 찬양했다고? 사람들은 보고싶은 대로 본다. 이 영화가 전쟁을 찬양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처음부터 전쟁을 찬양한 것으로 보고싶은 이들은 그렇게 볼 것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작가 햐쿠타 나오키도 역시 비난을 반박했다. “나는 카미카제의 자살공격을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에서 작품을 썼다. 아울러 전쟁을 결코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이 작품의 주제는 전쟁의 비극이 그냥 사라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을 보면 부분적으로라도 군국주의적 시각과 카미카제에 대한 찬양 함의를 품은 대목들이 눈에 띈다. 우선 제로전투기에 대한 애정 표현. 영화 초반 나레이터는 제로전투기가 당시 세계 최고의 전투기였으며 조종사들 역시 세계 최고였고 일본 해군은 세계 최강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제로전투기의 진주만 기습 장면을 보여준다. 화염과 연기를 뿜으며 침몰하는 미국 군함의 모습과 함께. 영광스러웠던 옛 군국주의 시절을 되돌리고 싶다는 소망이 손에 잡힐 듯하다.

실제로 제로는 놀라운 기동력과 스피드, 장거리 항속력을 갖춘 최상급 전투기였다. 덕분에 진주만 기습을 대성공으로 이끈 데서 보듯 태평양전쟁 초기 미군 등 연합군의 항공력을 압도했다. 제로전투기가 세상에 나온 게 1940년, 일본식 연대(황기 皇紀)로는 2600년이어서 ‘제로’라는 별칭이 붙은 이 전투기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 개발돼 전장에 투입된 미군의 최신예 전투기에 뒤지기 시작해 전쟁 말기에는 자살공격용 탈것으로 전락했다.

둘째, 영화의 주인공격인 젊은이-카미카제로 산화한 할아버지의 행적을 추적하던 외손자-는 카미카제가 요즘의 자살폭탄테러와 뭐가 다르냐는 친구의 말에 자살폭탄테러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카미카제는 항공모함 등 막강한 적을 쳐부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완전히 다르다며 화를 벌컥 낸다. 둘 다 인명을 헛되이 소모하는 ‘자살임무’라는 점은 도외시한 채 카미카제만 미화한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작가와 감독의 주장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또 있다. ‘보통국가화’를 내세우며 일본의 재무장, 나아가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영화에 “감동받았다”며 영화와 원작소설을 지지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더 주목할 것은 일본 국민들의 태도다. 이 영화는 2013년에 87억6천만엔(8천450만달러)을 벌어들여 그 해 일본 흥행수입 2위를 기록할 정도로 일본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일본사회가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 아닐까.

‘레드 배런’은 실제 인물로서 1차대전 때 독일 공군의 ‘에이스 중 에이스’였던 만프레드 폰 리히트호펜 남작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그의 전투기가 붉은 색으로 칠해져있어 ‘붉은 남작(레드 배런)’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전투기조종사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그를 영웅시하고 찬양하는 것은 맞지만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는 반감과 비판을 잊지 않는다.

리히트호펜은 적기를 가장 많이 떨어뜨린, 적아(敵我)를 통틀어 누구보다 우수한 전투기 조종사로서 황제 빌헬름 2세로부터 프러시아군 최고훈장 푸르 르 메리트(일명 블루 맥스)를 수여받고는 “살인을 하고 자신도 총에 맞는 게 불편하다”고 황제에게 말한다. 그러자 황제가 답한다. “짐의 병사들은 살인을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적을 파괴할 뿐이다” 리히트호펜의 대꾸. “결국은 마찬가지 아닌가요.”

리히트호펜은 또한 독일제국군 총사령관 힌덴부르크에게도 맞선다. 힌덴부르크와 대면한 그는 너라면 이제 어떻게 하겠느냐는 힌덴부르크의 물음에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내시라. 항복하는 게 옳다”고 말한다. 그러자 힌덴부르크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가 함부로 말한다며 화를 버럭 낸다. 그리고 소리친다. “그럼 그동안 희생된 우리 병사들은 어떻게 하고?” 리히트호펜의 대답. “어째서 그들의 희생이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의 희생보다 값지다는 겁니까? 희생은 다 똑같지 않습니까?”

영화는 또 그로 하여금 이렇게 말하게 한다. 독일제국이 전쟁영웅인 그를 국민과 병사들의 우상으로 만들기 위한 선전에 동원하려하자 이를 거부하면서 하는 말. “우리가 세계를 도살장(slaughterhouse)으로 만들고 있다는 걸 안다. 내 이름을 이용해서 그들은 고통과 죽음뿐인 현실을 왜곡하려 한다.” 독일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반발과 회오가 뒤섞인 이 말을 들으면서 누가 이 영화를 전쟁 미화나 파쇼 독일 찬양영화로 비난할 수 있을까.

물론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귀족들이 존재하던 시대적 상황 탓인지 ‘붉은 남작’이 전쟁을 보는 시각은 대단히 로맨틱하다. 그는 전쟁을 스포츠나 게임으로 여긴다. 마치 그 옛날 기사들이 기사도와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명예를 걸고 싸웠듯 전쟁도 그렇게 로맨틱하게 치르고자 한다. 한 예. 그는 자신이 이끄는 전투비행대의 조종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추락하는 적기에는 총을 쏘지 말라. 우리는 스포츠맨이지 도살자(butcher)가 아니다.” 군인도 아니고 스포츠맨이란다.

실제로 그 당시 상황이 정말 그랬는지는 잘 알 수 없어도 적어도 대부분 귀족이고 장교였던 전투기 조종사들 간에는 국적과 관계없이 어떤 ‘신사도’적인 동질감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영화가 시작됐을 때 독일 전투기가 영국 진지로 날아가 묘지 위를 날면서 매장작업이 한창인 곳에 조화다발을 떨어뜨린다. 매장되던 영국군 전투기 조종사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다. 이는 ‘붉은 남작’이 통산 적기 80대(공식 통계)를 격추하고 25살의 나이로 자신도 격추돼 죽음을 맞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영국군 지역에 매장된 그의 묘지에 영국군 조종사들이 바친 조화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용감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적을 위하여”(영화에 나타난 문구는 좀 다르다. ‘우리의 친구이자 적을 위하여’라고 돼있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반성이니 현재에 대한 함의니 하는 문제를 접어두면 두 영화 모두 가슴에 와 닿는 부분들이 있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혹은 충분히 예감했으면서도 마지막 임무를 앞두고 처연하지만 결연한 표정으로 애기(愛機)에 올라타거나 조종하는 젊은이들의 얼굴. 그 얼굴들을 보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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