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은 인영이 생일이었다다. 새벽잠 없는 아빠가 5시에 눈을 떴더니 인영이가 깨어 있었다. 어제부터 감기가 걸렸는지 열이 38도를 넘어 동네 소아과에서 타온 약을 먹고 있어 걱정이 덜컥 들었다.
“아빠, 오늘 아이야 생일이야.”
씩 웃더니 인영이는 다시 잠들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인영이는 자기 생일인데 아빠는 왜 회사에 가고 언니는 왜 학교가 갔냐고 엄마에게 따졌다고 한다.
아픈 자식을 두지않은 부모는 모른다. 웃으면서 초를 불때의 기쁨을.

인영이는 열흘 전부터 엄마가 동그라미 쳐 둔 달력의 18일을 가리키며 몇 밤 자야 생일이 오는 지 수백번 물었다. 한창 마감 중인 오후에도 아빠에게 영상 전화를 걸어 자신의 생일이 며칠 남았음을  세뇌시켰다. 퇴근해 들어오니 인영이는 엄마가 큰 맘 먹고 사준 레고프렌즈 호텔을 뜯고 있었다. 인영이는 몇 달 내내 레고프렌즈 호텔을 노래 부르더니 짠순이 엄마로부터 결국은 생일선물로 받아내는 집요한 모습을 보였다. (무려 지난달 언니 생일선물보다 3배의 고가였다.)
저녁으로 고깃집 외식을 하려했는데 ‘집순이’ 인영이는 집에서 밥을 먹겠다고 우겼다. 수술부위의 실밥도 남아있어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저녁을 차렸지만 먹는 둥 마는 둥. 밤 10시에 결국 아빠표 스파게티까지 갖다 바쳐야했다.
1년 전 생일파티. 많이 크고 건강해졌다.

오늘 하루 인영이의 ‘초갑질’에 가족 모두가 시달렸지만 케익에 초 5개를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를 때는 오늘 5.18 기념식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만큼 감격스러웠다. 지난해 생일에는 무균실 입원이 예정돼 있어 생일 3일 전에 축하파티를 해줬다. 그때 페북 글을 찾아보니 ‘내년 인영이 생일 케이크는 제 날짜에 초를 켤 수 있으리라’라고 적었다. 그때는 아득하게 먼 일로 느껴졌는데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고 그 소원은 이뤄졌다. 요즘 말 안 듣고 밥도 잘 안 먹어 엄마 속을 썩이지만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 인영이는 충분히 효도를 하고 있다.
머리를 바가지머리로 잘라줬다. 은하철도999에 나오는 철이같다.

촛불을 끄고 소원을 말하라하니 인영이는 하늘을 날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문 대통령 기념사처럼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우리네 삶들이 되기를 빌었다. 인영이 생일날, 인영이보다 4살 많은 환우친구는 하늘나라에 갔다. 오늘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김동연 전 국무조정실장도 이년 전 28살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었다. 그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옆에서 많이들 그런다. 시간이 지나야 해결될 것이라고. 일에 몰두해 잊어보라고. 고마운 위로의 말이긴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자식 대신 나를 가게 해달라고 울부짖어 보지 않은 사람, 자식 따라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아픔이란 것을.' 인영이 생일 감사와 함께 세영이 부모님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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