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알바를 해야 하는 연극 경력 20년차인 배우의 서글픈 사연을 표현한 삽화. 생활고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사건 이후 ‘최고은법’이 제정됐지만 예술인들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국민일보DB


불행히도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이 대세인 시대
경기침체 장기화로 빈곤층과 실업자들 쏟아져
빈곤의 사회적 책임 공론화와 대책 마련 절실
협동조합·마을기업·사회적기업 역할 확대해야
재벌과 전략 산업만으론 경제성장 한계에 봉착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우석훈 지음, 문예출판사, 316쪽, 1만4800원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 표지.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불행하게도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두 현상이 한국경제의 앞날에 심각한 걸림돌로 떠올랐다.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노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막일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호(號)는 망망대해에서 좌초할지 모른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은 바라지도 않고 먹고사는 문제에 짓눌려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삶을 마감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 최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계기로 빈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지만 그때뿐이다. 최씨 사건으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최고은법’이 제정된 것 말고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최씨 사례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갑작스럽게 실직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경제적 난관에 봉착하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베이비붐 세대들도 쏟아지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는데도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벼랑 끝으로 몰리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이 이번에는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는 책으로 독자를 찾아왔다. 문예출판사 제공


경제 상황이 장기적으로 어려워지는 ‘L자형 불황’(장기 불황)을 맞으면 정부·기업·가계의 수입이 급감하고 정부의 복지정책마저 후퇴해 가난한 서민들은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의 저자 우석훈은 이런 시대에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사회적 경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황일수록 사회적 공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적 경제를 통해 난국을 돌파하라고 주문한다. 사회적 경제의 주축인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가 본궤도에 오르려면 지역 단위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

일본 고베나 스페인 몬드라곤처럼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지역경제의 네트워트가 형성돼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지방 취업자도 늘어난다는 것이 저자의 논리다. 사회적 경제가 경제 인프라이면서 사회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는 좌파 정책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 저자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좌·우파 모두 도서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경제는 도서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역대 정권의 정책을 보더라도 사회적 경제가 좌파 정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더욱이 유럽 기준으로 보면 한국의 좌파 정권은 좌파도 아니다.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싹텄다. 김대중 정부가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자활정책을 펴면서 지역에 근거를 둔 자치조직들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어렵게 발아한 사회적 경제는 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성장했다. 관련 법도 만들어졌다.

많은 손님들로 북적이는 전북 완주군의 한 로컬푸드 매장 모습. 뉴시스. 완주군 제공


사회적 경제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미한 편이다. 저자는 이 비중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경제 영역으로 아파트 협동조합, 에너지 분야, 로컬푸트 사업을 꼽았다. 저자는 3개 분야 모두 성공 가능성·잠재성·공익적 기여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재벌과 전략적 산업만으로 끌고 가기에는 한국경제가 이미 한계 상태에 이르렀다.

지역경제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지 않고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 영역이 활성화되면 전체적으로 고용도 늘어난다. 유럽 선진국들이 지역자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매진하는 것도 경제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전략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주택협동조합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초기 임대주택 건설을 주도한 것이 주택협동조합이었다. 우리 사회에도 임대아파트 사업에 협동조합이 사업 주체로 참여했거나 소규모 공동주택 마련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 기업이 등장했다.

 우리나라도 중앙·지방정부가 토지를 임대하고 협동조합이 건물 부분을 책임지면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 프랑스나 스웨덴처럼 주택협동조합의 비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가 한국전력(한전)과 한전 자회사를 통해 대부분의 전기를 관장하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사회적 경제가 기여할 부분은 많다. 미국은 전체 전기의 4분의 3을 대형 기업이, 4분의 1을 지방자치단체와 협동조합 등 소규모 지역 사업자들이 공급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의 태양광 시공 사업은 사회적 기업이 맡고, 유지·관리 업무는 협동조합이 담당하는 기술적 조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방정부가 태양광 분야의 시민 파트너로 협동조합 형태를 선호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4호 직매장의 개장식 장면. 뉴시스. 완주군 제공


지역 농산물을 중심으로 식품 시장을 재구성하는 로컬푸드 사업은 생활 밀착형 분야에서 사회적 경제가 성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역이다. 중간 유통 단계를 과감하게 줄인 로컬푸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분야다. 정부나 농협이 상당한 매장 비용을 지원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돈이 지역 안에서 돌아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을 준다. 전북 완주, 경기도 김포의 로컬푸드 사업이 전국에서 가장 독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로컬푸드 분야에서 447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완주군은 올해 매출액 600억원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은 종교계의 역할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그는 “한국에서 돈이 있는 집단은 정부와 대기업을 빼고 나면 종교계밖에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하고 “짧은 기간에 사회적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와 기업, 시민의 역할이 중요한 것처럼 종교계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와 종교계가 사회적 경제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면 지역경제뿐 아니라 국민경제를 살리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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