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124>로저 무어경을 추모하며 기사의 사진
젊은 시절의 로저 무어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똑바로 말하자. 최근 타계한 로저 무어 경은 매력적이고 멋진 배우이긴 했어도 연기가 특출 난 ‘명우’는 아니었다. 그가 받은 기사 작위도 로렌스 올리비에나 알렉 기네스, 심지어 마이클 케인과는 종류가 다른 것이었다. 즉 올리비에와 기네스, 케인의 작위는 모두 그들이 영화 등 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시 말해 연기력을 인정받아 받은 것인데 반해 무어의 작위는 그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약하는 등 정력적으로 ‘자선활동’을 벌인 공로로 받은 것이다.

그러나 영화 역사상 불멸의 캐릭터 007 제임스 본드역을 맡아 007 배우로는 가장 많은 7편의 본드 영화를 남긴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있을 게 분명하다. 그만큼 3대(엄밀하게는 4대다) 본드로서 로저 무어는 세계 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당초 우리나라에 로저 무어가 알려지기로는 나폴레옹전쟁 당시 영국군 장교로 나와 수녀역을 맡은 캐롤 베이커와 공연한 멜로 사극 ‘기적(어빙 래퍼, 1959)’이 몇 차례씩 리바이벌 상영됐을 때였다. 그후 그는 국내 TV로도 방영된 ‘세인트’라는 TV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다시 한 번 유명세를 탔다. 1920년대에 레슬리 차터리스가 쓴 동명의 연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말하자면 영국판 괴도 루팡이라 할 수 있는 사이먼 템플러라는 로빈 후드 비슷한 의적 도둑 겸 탐정 이야기인데 1962년부터 1969년까지 방영된 인기 장수 드라마였다. 무어는 애당초 미국 대중을 겨냥해 영국에서 만든 이 드라마 시리즈로 인해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은데 이어 이후 숀 코너리가 하차한 007영화를 이어받았다. 물론 그 사이에 조지 레이즌비라는 2대 본드 배우가 있었지만 이 불운한 호주 출신 배우는 단 1편의 본드 영화로 단명했고, 번외판 본드영화인 ‘카지노 로얄(존 휴스턴 등, 1967)’에서 본드로 나온 데이빗 니븐까지 치면 무어는 4대 본드가 된다.

어쨌거나 무어는 1954년 데뷔해서부터 거의 사망할 때까지 60여년간 배우 활동을 했지만 본드 영화를 제외하면 딱히 ‘이거다’라고 할 만한 대표작이 없다. 본드역할로 세계적 톱스타가 된 뒤 리 마빈과 공연한 ‘샤우트(Shout at the Devil, 피터 헌트, 1976)', 리처드 버튼, 리처드 해리스와 공연한 ’지옥의 특전대(Wild Geese, 앤드루 V 맥클라글렌,1978)‘ 데이빗 니븐, 텔리 사발라스 등과 공연한 ’아테네 탈출(Escape to Athena, 조지 코스마토스, 1979)‘ 등 이런 저런 흥행작들에 얼글을 비쳤지만 내세울만한 작품이나 역할은 찾아볼 수 없다. 초대 본드 숀 코너리가 007을 그만 둔 후에도 다양한 역할을 섭렵하면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까지 받는 등 연기력을 뽐내며 맹활약한 데 비교할 수조차 없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평범한 연기력과 평면적인 표정연기 등을 스스로 비하하며 농담의 소재로 써먹곤 했다. 어떤 평론가는 무어가 세 가지 표정밖에 짓지 못한다고 혹평했는데 그것은 한쪽 눈썹 치켜올리기, 다른 쪽 눈썹 치켜 올리기, 그리고 두 눈썹 모두 치켜올리기라는 것이었다. 무어는 이 혹평을 갖고도 농담을 했다. “‘세인트’와 제임스 본드의 차이는 눈썹에 있다. ‘세인트’는 걸핏하면 눈썹을 치켜올렸으나 본드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다만 폭탄이 터졌을 때는 예외다” 심지어 그는 ‘문레이커(1979)’와 ‘옥토푸시(1983)’로 그때까지 본드영화로는 최고 흥행성적을 올렸으면서도 “나는 본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특히 숀 코너리와 자신을 비교해 코너리를 ‘완벽한 본드’라고 추어올리면서 자신은 코너리처럼 냉혹한 킬러 스타일도 아니고 운동능력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유머 있고 난봉꾼 같은 본드’로 만족했다고 술회했다.

자신의 연기력에 대한 가혹할 만큼 냉정한 평가는 본드영화 외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나름대로 명우 소리를 들은 리처드 버튼 및 리처드 해리스와 ‘지옥의 특전대’에서 공연했을 때 셋이 대사를 말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대사를 모두 잘라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맥클라글렌 감독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 “당신은 내가 정말 저들과 맞상대해서 연기대결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요? 난 그저 여기 앉아서 시가나 피우겠소.”

그런 정도이니 그가 아카데미상과 거리가 멀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가 아카데미상의 트로피를 들고 집으로 간 사건이 발생했다. 때는 1973년. 45회 아카데미 시상식 때였다. 남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선 무어는 수상자로 말론 브랜도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러나 브랜도는 아카데미상 수상을 거부하고 시상식장에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대리 수상자마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무어는 트로피를 들고 자기 집으로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네사람들은 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줄 알고 환호했으나 다음날 아침 아카데미 주최 측에서 자동차를 보내 트로피를 회수해갔다. 어찌됐건 무어로서는 아카데미 트로피를 가슴에 안고 집에 돌아가는 ‘영광’을 맛본 것만도 다행이랄까.

무어는 1973년 45세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본드역을 맡아 활발한 액션을 펼치기보다는 유머와 능청이 넘치는 우아하고 온화한 스파이를 연기했다. 그래서 슈퍼스파이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기에는 터프함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터프했다고 한다. 곱상하게 잘생긴 얼굴과는 딴판으로. ‘샤우트’에서 공연한 마초 중의 마초 리 마빈의 증언. “그는 돌처럼 딴딴하다. 누구라도 그를 과소평가했다간 큰 코 다칠 것.”

그러나 무어는 총기의 달인인 슈퍼 스파이 역할로 일세를 풍미한 데 비추면 놀랍게도 총기공포증(hoplophobia)을 갖고 있었다고. 그 원인인즉 그가 14살 때 형이 오발한 공기총탄을 다리에 맞은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무어는 만년에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로 나오는 007 영화에 악당으로 출연하고 싶어 했으나 불발에 그쳤는데 그가 출연한 7편의 본드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한 악당은 크리스토퍼 리가 연기한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 스카라망가였다고. 또 가장 좋아한 특수장비는 ‘죽느냐 사느냐’에 등장했던, 금속에 들러붙는 자석 시계였고 가장 좋아한 본드걸은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 나왔던 바바라 바크(나중에 링고 스타의 부인이 된다), 그리고 가장 좋아한 조연은 ‘나를 사랑한 스파이’와 ‘문레이커’에 출연한 강철이빨의 거한 ‘조스’역의 리처드 킬이었다, 이와 함께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은 작품은 마지막 작품인 ‘뷰 투 어 킬’이었다고 한다.

무어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무어에게는 머무는 호텔마다 수건을 집어오는 괴상한 수집벽이 있었다는데 한 영국신문에 ‘로저 무어는 수건 도둑’이라는 기사가 나오는 바람에 그만뒀다고. 그러나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스위스 자택에는 수집해놓은 호텔 수건 컬렉션이 여전히 남아있었다고. 참으로 인간적이었던 로저 무어경이여, 편히 잠드시길.

김상온 (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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