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126>70년 전의 데자뷔 기사의 사진
트럼프 대통령(좌)과 코미 전 FBI국장
백악관과 FBI, 의회 청문회, 언론, 그리고 러시아. 작금 워싱턴 정가와 미국 사회를 뒤흔드는 기관들과 국가의 면면이 70년 전과 어쩌면 그리도 흡사한지 데자뷔(旣視感)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한 달 간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제임스 코미 싸움’을 보노라면 약 70년 전 할리우드를 들썩인 블랙리스트 파문과 놀랄 만큼 닮았다는 게 미국의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의 지적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그때나 지금이나 애국심과 미국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진실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물론 역시 그때도 지금도 개중에는 진실이 뭔가에 매달리기보다는 쇼에 더 관심 있는 축도 있지만.

1949년 6월8일 FBI의 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익명의 소식통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아카데미상을 2회나 수상한 프레드릭 마치와 에드워드 G 로빈슨 같은 거물들을 포함해 연예계의 수 많은 저명인사가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이었다. 또 같은 해 간첩죄로 법정에 선 주디스 코플론이라는 여성의 지갑에서 할리우드 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리스트가 발견됐다. FBI는 이 리스트가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FBI 보고서가 공개된 지 2주 후 버라이어티지는 이 충격적인 뉴스가 반격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할리우드와 연예계는 지난 10여일 동안 “빨갱이 딱지 붙이기”와의 전면적인 싸움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이FBI 보고서에 거론된 이름들은 ‘무차별적으로’ 인용된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해리 S 트루먼 대통령도 이 같은 주장에 동조했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문제의 명단은 ‘히스테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1947년 미 하원 ‘비(非)미국적 활동위원회(HUAC)’는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할리우드에 침투해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일련의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 청문회에서 처음 증언한 인사들 가운데 ’굿바이 미스터 칩스(1939)‘,‘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 등으로 유명한 샘 우드 감독은 할리우드에 공산주의자가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 중에 공산주의자가 많으냐는 질문에 ‘작가(대본가)들’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1주일 뒤 각 신문에 ‘할리우드의 반격’이라는 제목이 붙은 전면광고가 실렸다. 할리우드의 저명인사 200여명이 서명한 짤막한 성명서였다. 성명은 ‘영화계에 먹칠을 하는 HUAC의 소행에 혐오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며 ‘개인의 정치적 소신에 대한 어떠한 조사도 우리 사회의 기본적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규제 시도도, 아메리카니즘에 대한 어떠한 자의적인 기준 설정도 우리 헌법의 정신과 문구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이 성명서에 서명한 인사들 가운데는 FBI 보고서에 공산주의자로 기록된 프레드릭 마치와 에드워드 G 로빈슨을 비롯해 헨리 폰다, 험프리 보가트, 캐서린 헵번, 진 켈리, 그레고리 펙, 오슨 웰스, 프랭크 시나트라, 그리고 윌리엄 와일러와 빌리 와일더 감독 같은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와 함께 언론들도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한 신문은 리스트에 등재된 이른바 ‘빨갱이 형제’들이 진짜 영화 대본에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내용을 많이 주입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고, 다른 신문은 청문회가 정치적 쇼에 불과한 것은 아니냐고 힐난했다.

사실 1949년 6월 8일 FBI의 충격적인 보고서가 공개된 직후부터 언론들은 문제를 제기했다. 예컨대 프레드릭 마치가 러시아를 위해 기금을 모은 것을 두고 언론들은 2차대전 때 미국의 동맹국이었던 러시아가 전쟁 후 경제난에 허덕이는 것을 보고 동정심에서 그랬을 뿐 그가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에 동조해 그런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트루먼 대통령의 기자회견도 FBI 보고서의 신빙성을 크게 희석시켰으나 그럼에도 HUAC의 조사 활동은 계속됐다. 그 결과 돌턴 트럼보 같은 시나리오작가는 청문회에서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하다가(그는 실제로 자신이 공산주의자라는 신분을 감추고 엉뚱한 말만 했다) 교도소에 수감됐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다른 많은 이들도 할리우드에서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 중 일부는 뉴욕이나 유럽으로 이주했다.

그러다가 5차 청문회가 열리던 1951년 9월19일 파라마운트영화사의 중역 프랭크 프리먼은 할리우드가 HUAC에 전폭적으로 협력한 사실을 후회하는 연설을 했다. 그는 왜 영화계 아닌 다른 업계는 사냥대상에서 제외됐는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할리우드가 신문 1면을 장식하기 충분해서인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트럼프-코미 전쟁’도 결국 이와 비슷하게 끝날 것인지, 과연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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