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127>‘원 소스 멀티 유즈’의 명암 기사의 사진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의 포스터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가 컨텐츠산업의 대세다. 우리말로 딱 떨어지게 번역하기가 난감해 영어 그대로 쓰이는 이 말을 굳이 번역하자면 ‘하나의 이야기나 내용을 다양한 미디어로 전달 또는 판매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마블이나 DC 코믹스의 인쇄만화들이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로 끝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좋은 예다.

‘전달’ 외에 ‘판매’라는 말을 갖다 붙인 것은 이 시스템이 문화적 다양성의 추구 외에 상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만드는 것은 이야기를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고 해도 영화의 주인공들을 인형(피규어)으로 만들어 파는 것은 이야기의 전달과는 무관하다. 돈벌이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원 소스 멀티 유즈는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이야기를 개발하려 애쓸 필요 없이 하나의 이야기나 내용을 이런 저런 포맷의 변형을 통해 소뼈처럼 되풀이해 우려먹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유용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르다. 소비자도 익숙한 이야기가 새로운 그릇에 담겨 마치 새로운 요리처럼 입맛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즉 노벨티(novelty)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한 이야기를 다른 미디어의 틀에 맞추어 이리 저리 비틀어 새로운 것인 양 호도하는 데 실망하거나 반감, 혐오감마저 느낄 수 있고 원작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이야기나 내용의 특성에 따라서는 원 소스 멀티 유즈화하지 않는 게 더 낫다. 최근 그런 범주에 속하는, 즉 하나의 미디어로만 존재하는 게 더 좋을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한편씩 봤다. 우선 영화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루퍼트 샌더스, 2017)’. ‘아키라’와 함께 전설로 불리는 일본의 SF 아니메를 할리우드가 실사영화로 만든 것이다.

물론 그 아니메도 인쇄 만화(망가)가 원작이었다. 두 원작에서는 쿠사나기 마코토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여성이 두뇌만 인간인 사이보그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스칼렛 조핸슨이 미라 킬리언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역할을 한다. 물론 원래의 정체는 일본여성인 쿠사나기 마코토임이 무덤의 묘비를 통해 한 컷 보여지지만 영화 내내 이 여주인공은 쿠사나기 마코토 아닌 미라 킬리언으로 불린다. 그 탓에 백인이 아시아인을 연기하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논란이 네티즌들 사이에 불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차치하자.

도대체 영화는 왜 만들어졌는지 존재이유가 불분명하다. 원작 아니메의 철학적인 내용을 거의 담아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원작의 새로운 해석도 없다. 아니메는 현실과 가상현실 간의 모호한 경계와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다뤄 SF영화의 걸작 ‘매트릭스(워쇼스키 형제, 1999)’에 지대한 영감을 줄 정도의 깊이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영화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볼거리와 액션에 치중한다. 여주인공 쿠사나기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도 거의 멜로 수준이다. 또 넘쳐나는 CG 사용으로 인해 화면은 애니메이션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그림(컴퓨터로 그림으로써 진짜처럼 보이긴 하지만)이 대부분이라면 역시 움직이는 그림인 애니메이션을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한창 인기몰이중인 스칼렛 조핸슨이 아니메의 주인공 쿠사나기 역을 맡았다는 사실이 주는 호기심과 신선함, 그리고 생경함을 이용해 기존 아니메의 관객을 꼬여서 돈을 벌겠다는 의도였을까. 게다가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차용한 배경 도시의 모습은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를 포함해 ‘블레이드 러너’를 거의 그대로 베낀 듯한 느낌을 준다. 전혀 새롭지 않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얘기해서 ‘공각기동대’는 아니메로 그대로 놔두는 편이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The Red Turtle, 미카엘 뒤독 드 위트, 2016)’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와 일본 합작의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 아니메의 간판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에 참여했다. 참여했다기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가 네덜란드 애니메이터 드 위트의 다른 작품을 보고 반해 꼭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제안을 해 성사된 작품이다. 드 위트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영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애니메이터로 그가 만든 ‘아버지와 딸’은 2000년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대사가 거의 없는 ‘붉은 거북’은 무인도에 표류한 한 선원의 이야기다. 마치 동화 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한 내용이다. 이 선원은 무인도에서 뗏목을 만들어 탈출하려하나 붉은 바다거북이 이를 자꾸 방해하자 거북을 살해한다. 그러나 죽은 거북은 젊은 여인으로 변신하고 선원은 이 여인과 짝을 이뤄 아들까지 낳고 섬에서 같이 살다가 평화롭게 늙어죽는다. 그러자 여자는 다시 거북으로 변해 바다로 돌아간다. 마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환상적 리얼리즘, 또는 마술적 리얼리즘을 떠올리게 한다. 아울러 기가 막힌 색채와 그림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미국의 롤링스톤지(誌)는 이 작품을 일컬어 ‘로빈슨 크루소와 토토로가 만난 보석 같은 작품’이라고 극찬했고 이 작품은 2016년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 말하자면 걸작 애니메이션이란 얘긴데 설마 이 작품을 실사영화로 만들지야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즉각 포기할 것을 권한다. 그 자체로 최선인 것을 굳이 개악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사례 중에는 이미 거창한 실패로 끝난 것들이 적지 않다. 게임을 영화로 만든 ‘슈퍼 마리오 형제(Super Mario Brothers, 로키 모튼, 애너벨 쟁클, 1993)’와 그 유명한 만화 캐릭터를 영화화한 ‘포파이(로버트 올트먼, 1980)’가 대표적이다. 봅 호스킨스가 마리오, 존 레귀자모가 루이지, 그리고 데니스 호퍼가 악당 쿠파왕을 연기한 ‘슈퍼 마리오형제’는 4800만달러의 제작비가 들었음에도 2000만달러밖에 수입을 내지 못해 흥행에서 참패했다. 아울러 평도 지극히 안 좋았다. 스토리, 캐릭터, 대사까지 한마디로 총체적 난장판이라는 것이었다.

‘포파이’는 명장으로 불리는 로버트 올트먼이 연출하고 명우 소리를 듣던 로빈 윌리엄스가 타이틀롤을 맡았음에도 모든 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제작비 6000만달러를 들여 겨우 2000만달러만 건졌고 평가도 악평이 더 많았다. 이 인기 있는 유명한 만화의 선원 캐릭터를 영화로 만들면서 가라앉는 배에 태웠다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 가만히 놔두는 게 더 좋을 경우도 있는 법이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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