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검·경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는 많지만 평범한 이웃들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들도 다 사연이 있고,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수동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할머니는 요즘도 네일숍을 찾습니다. 올해 나이 일흔 둘. 화장도 안하고, 옷도 세련되게 입는 편이 아니지만 손톱 관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십니다. 멋을 내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손톱에 색을 입히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교편에 계셨던 할머니는 단지 몸을 단정하게 하려고 손톱 손질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단골 네일숍인 서울 상수동 ‘네일마루’의 오정원(45·여)씨가 4개월 만에 다시 시작하는 ‘상수동 사람들’의 주인공입니다.

서울 상수동에서 네일숍 '네일마루'를 운영하는 오정원씨가 가게를 매일 찾아오는 강아지 '수리'와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

정원씨는 20대 때 은행에서 일했습니다. 실적 스트레스가 심했답니다. 그만두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은행에 있어야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할 수 있다”며 만류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보니 10년이 흘렀고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은행에선 희망퇴직 지원자를 받았고, 정원씨는 대상이 아니었지만 이때다 싶어 부모님 몰래 퇴직서를 썼습니다.

원래 꿈이었던 메이크업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서울 압구정동 메이크업 학원을 다니면서 메이크업, 특수 분장, 올림머리, 네일아트 등을 배웠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이 학원에서 강사도 하고 방송국에서 분장 일도 했습니다. 

그러다 네일숍에 정착합니다. 정원씨가 상수동에서 네일숍을 시작한 게 2006년이니까 벌써 11년이 흘렀네요. 당시 주변엔 자전거포(현재 가게 이름은 ‘4130’)와 치킨집 ‘또바기’만 있었답니다. 당시엔 지금처럼 거리마다 네일숍이 많지 않았습니다. 대로변이나 번화가에 몇 개 있는 정도였습니다.

네일마루 내부 모습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단골들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정원씨가 직접 끓인 우엉차를 제게 건네며 한 단골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딸이 셋인 아주머니인데 처음 여기 왔을 땐 첫째 딸 고은이가 고3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집가서 다음 달에 애기가 나온대요. 그 집 할머니부터 강아지까지 어떻게 사는지 다 알아요.” 

11년 세월동안 네일숍을 운영하며 수많은 주민들의 손을 잡아본 정원씨가 말했습니다. “상수동은 인심 좋고 정이 많은 동네인 것 같아요.”

네일마루 내부 모습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쯤 돼 보이는 한 싱글남은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손톱 정리를 하러 옵니다. 얼마 전에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났었답니다. 강남대로를 달리는데 여성 중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길래 폼을 잡다가 넘어졌답니다. 멋있게 넘어지려다 더 많이 다쳐서 6개월 병원신세를 졌습니다.

 “자유롭게 사는 분인 것 같아요. 가게에 오면 항상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시는데 매번 달라지더라고요.”

매일 이곳을 찾는 강아지도 있습니다. ‘수리’는 주인과 산책하러 나오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네일마루로 달려옵니다. 

정원씨는 간식으로 콜라비를 줍니다. 영업을 안 하는 일요일엔 가게 문고리에 ‘수리’ 먹으라고 간식 바구니를 걸어놓는데 월요일에 출근해보면 항상 비어있답니다.

강아지 '수리'가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든 채 귀엽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정원씨는 손님들과 자주 음식을 나눕니다. 여름엔 송산포도를 나눴고, 최근엔 딸기잼, 고구마말랭이, 부산에서 온 토마토 등을 손님들에게 내놓았습니다. ‘수리’가 먹는 콜라비도 제주도에서 공수해 온 겁니다. 그나저나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면 지겹지 않으세요?

“손톱 손질을 해주려면 상대방의 손을 한 시간 이상 맞잡고 있어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손톱 손질만큼 중요한 게 교감하는 거죠. 하나도 지겹지 않아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교감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지 않을까요?”

오정원씨가 강아지 '수리'를 안고 턱을 쓰다듬고 있다

*사진은 2016년 11월 13일 ‘이용상의 상수동 사람들’에 소개됐던 로프트84 김기풍씨가 촬영해 주셨습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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