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의 첫 편지가 온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나는 아빠다’ 연재를 보고 인영이의 집중치료가 끝난 것을 축하하고 응원한다는 글이었다. 몇몇 분들이 보내주신 응원 메일처럼 감사한 마음으로 답장을 했다. 그런데 그뒤로도 수녀님은 잊을만하면 한 달에 한 두 번 메일을 보내주셨다. 본인도 바닷가 마을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계신지 몰라도 인영이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즐거움은 더 없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 처음엔 수녀님께 메일을 보내는 것이 조금 어렵고, 어색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어색함보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인영이와 수녀님. 다음에는 병원 말고 바닷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녀님은 인영이를 위해 햇감자를 캤다며 보내주시더니, 인영이가 스파게티를 좋아한다는 말에 맛좋은 유기농 토마토도 몇 번이나 보내셨다. 그것들을 먹이며 “수녀님이 보내 주신거야”라고 하면 인영이는 “수녀님? 그게 머야?”라고 물었다. 수녀님 사진도 없고 설명할 길이 막막해 “인영이를 사랑해주시는 분이야”라고 말해줬다.

수녀님은 여러 차례 자신의 어린이집에 인영이를 데리고 놀러오라 권하셨지만 쉽지 않았다. 꼭 한번 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던 찰나에 지난번 고용량항암치료 기간에 맞춰 수녀님이 병원을 찾아주셨다. 새벽 6시 첫차를 타고 오로지 인영이를 보러 달려오신 것도 감사한데, 바리바리 인영이와 윤영이 선물을 한보따리 갖고 오셨다. 처음에는 조금 서먹해하던 인영이는 수녀님의 맞춤형 눈높이 놀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다행히 힘든 첫날 치료를 마치고, 해독제만 맞으면 되는 날이어서 인영이도 신나게 놀 수 있었다. 한 두시간 뒤에는 인영이는 마치 친구처럼 수녀님 머리에 쓴 하얀 두건을 보고 “수녀님 머리 예쁘다~”고 하더니 “근데 수녀님 몇 살이야?”라며 수녀님을 당황하게도 만들었다. 잠깐 보고 가시겠지 생각했는데, 수녀님은 오후 늦게까지 인영이와 놀아주셨다. 수녀님은 다음에는 바닷가에서 만나 모래놀이를 하자고 인영이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을 찍었다.
인영이가 사춘기가 오고 소녀가 됐을때 엄마아빠에게 말하지 못한 고민을 수녀님께는 이야기하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

며칠 전 수녀님과 카카오톡으로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인영이 사진을 카톡에 올려놓으셨다. 인영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고 하셨다. 인영이도 엄마 아빠가 잘 놀아주지 않으면 “아 수녀님 보고싶다”고 한다. 인영이가 사춘기가 되고 엄마아빠한테 털어놓지 못한 고민을 털어놓는 분이 수녀님이었으면 좋을 것 같다.
수녀님의 기도 덕분인지 인영이는 요즘 최상의 컨디션으로 엄마를 매일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가고 있다. 수녀님이 가까운 곳에 계셨으면 아마 아내는 수녀님 어린이집에 인영이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약속대로 올 여름에는 꼭 수녀님을 보러 가야겠다. 병원 지하에서 칼국수 한 그릇 대접한 것 밖에 없는데 가서 맛난 저녁을 사드려야겠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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