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세에 처음 그림 팔아본 강형구 작가의 성공 뒤엔


분명 회화라는데 사진 같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다. 붓 자국 없는 극사실주의 초상화 작가 강형구(63). 19세기 후기 인상파 화가 반 고흐에서부터 20세기를 산 뇌쇄적 미모의 마릴린 먼로, 중국의 문화혁명을 이끈 정치가 모택동, 한국의 독재자 박정희, 그리고 삼국지 속 인물 관우 …. 역사 저편의 인물에 다시 숨을 불어 넣어 우리 앞으로 현현시키는 마술사 같은 솜씨의 작가, 강형구. 심지어 그가 늙어 90이 넘은, 미래의 자신을 그린 초상화조차 지금 살아 있는 인물처럼 생생하다.

비법은 에어 스프레이 회화다. 에어 스프레이로 뿌려 그렇게 세밀한 초상화를 완성해낸다.
“우리는 붓 자국 때문에 이게 그림이구나, 그림답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제 작품은 기법상으론 굉장히 사진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그림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붓 자국 없는 사진 같은 사실주의를 연출하려고 에어 스프레이를 쓰는 겁니다. 나는 지금 64세이니 94세의 강형구를 그리는 것은 허구지요. 그 거짓말이 실감나려면 사진처럼 그려져야 하는 기법일 수 밖에요.”
2007년 가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추정가의 무려 7.5∼9배인 456만7500홍콩달러(약 6억원)에 낙찰된 고흐 초상화. 짙은 블루 톤에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작가 제공

그는 지금 인기 작가다. 2007년 가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짙은 블루 톤에 강렬한 눈빛을 한 고흐 초상화가 추정가의 무려 7.5∼9배인 456만7500홍콩달러(약 6억원)에 낙찰됐다. 무명의 작가 강형구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킨 순간이다. 초상화, 그것도 역사적인 스타 아이콘을 강렬하게 재현시킨 작품을 자신의 브랜드로 인식시킨 순간이기도 했다.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는 작가 자신을 그린 초상화도 추정가 50만∼60만 홍콩달러를 크게 웃도는 240만7500홍콩달러(약 3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작가 강형구는 성공가도를 달린다. 그러기에 그가 52세에 처음 작품을 팔아본, ‘눈물 젖은 빵맛’을 하는 늦깎이 작가라는 사실이 의외다. 지난 2월 중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났다. 아라리오 갤러리는 그에겐 특별한 곳이다.

강 작가는 미대를 졸업했다. 중앙대(당시 서라벌예대) 서양화과에 입학해 대학미전 특별상 까지 받았다. 하지만 농약제조회사에 취직했다. 대학시절에 일찍 결혼 해 아이까지 있던 그로서는 안정적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만 10년을 샐러리맨으로 살던 그는 그리고 싶다는 욕망을 더 이상 누르기 힘들어 마흔을 목전에 둔 38세에 화가로 다시 시작했다. ‘토굴에서 도 닦듯’ 10년을 그리기만 했다. 그리고 21세기가 된 2001년 첫 개인전을 가졌다. 48세의 첫 개인전이다. 들고 나온 것은 초상화였다. 캔버스에 붓이 아니라 에어 스프레이로 그렸다는 게 달랐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이듬해 2회 개인전을 열었고, 해외 아트페어에도 나갔다.그리고 처음 그림을 팔았다. 2004년 상하이 아트페어에 나간 초상화 작품을 사준 이는 아라리오 갤러리 김창일 회장이다. 그는 2006년 아라리오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었고 10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다.
강형구 작가가 자신을 그린 초상화. 2013년 작. 캔버스에 유채, 300 x 230 cm. 작가 제공

오십 줄을 앞둔 늦깎이 신예 작가 강형구가 한국 화단에서 입지를 굳힌 건 전속 갤러리의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거나, 아주 더디 오거나 그랬을 것이다.
“저 같은 경우엔 국내 개인전은 물론 외국 전시도 열어줬지요. 컬렉터 관리도 해주고. 판매도 해주고….”
‘사진 조각’으로 유명한 권오상 (43) 작가도 2007년부터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있다.두 사람은 입을 모아 말한다. “전속 갤러리의 후원이 없었다면 오늘이 있기 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싶다”라고.

# 전속 갤러리… 화랑과 작가의 공생법

갤러리는 될 성 부른 작가를 발굴해 후원하고 키워준다. 국제갤러리, 학고재갤러리, 현대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등 메이저 갤러리들이 전속 작가 제도를 시행한다. 전속 작가에 대한 후원 방식은 여러 가지다.

전시를 앞두고 아직 생산되지도 않은 작품을 미리 사주며 작품 제작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작업실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전시를 열어주고 국내외에 홍보를 해준다. 작품이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프로모션을 하고 팔릴 수 있도록 컬렉터에게 소개해주는 것도 화랑이 하는 일이다. 연봉을 주는 곳도 있다. 1990년대 초반 메이저 갤러리의 전속작가였던 A씨는 당시 월 300만원 가량의 생활비를 지원받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연예인 기획사가 소속 연예인들에 대해 훈련을 시키고 마케팅을 하는 것처럼 화랑도 전속 계약을 맺은 작가를 후원해서 키워주는 것이다.
2016년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중국 베이징 파크뷰 그린전시홀의 관우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강형구 작가. 현지 전시장에서 퍼포먼스를 하듯 작업해 완성한 그림이다. 작가 제공

이런 후원의 반대급부로 화랑은 전속 작가의 작품 판매에 대해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다. 가나아트, 현대 갤러리, 국제갤러리, 학고재 갤러리, 아리리오 갤러리 등 메이저 화랑의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전속 계약을 맺거나 집중 관리하는 작가들의 이름(ARTISTS)이 나온다.

문제는 작가를 후원해서 결실을 맺기까지는 지난한 세월이 요구된다는 점이다. K갤러리 대표는 화랑업이 아주 인내를 요하는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화랑은 10년 후를 내다보고 하는 일입니다. 승부를 빨리 보고 싶어 하는 기질은 맞지 않지요. 성미 급한 사람은 차라리 바로바로 답이 나오는 옥션이 낫지요.”
화랑주야말로 5년, 10년, 20년 길게 내다보는 장기 투자자 인 것이다.

# 화랑은 어떻게 먹고 사나

화랑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작가를 발굴해 개인전을 열어주고 그의 작품을 팔아서 먹고 산다. 일부 화랑 중에는 옥션처럼 2차 시장 역할만 하는 곳이 있다. 한번 팔린 ‘중고 작품’을 사서 거래해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화랑의 임무는 이렇게 유망한 작가를 발굴하고 전시해주며 작가와 함께 커가는 것이다.

작품이 팔리면 화랑과 작가는 50: 50으로 나눈다. 1000만원에 팔리면 화랑이 500만원, 작가가 500만원을 가져가는 식이다. 500만원은 화랑의 매출이며 여기에 전시 비용, 홍보비, 도록제작비 등 전시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 비용을 제한 금액이 순수익이 된다. 단골 컬렉터가 깎아달라고 하면 화랑의 수익은 또 준다.
“요즘처럼 미술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20, 30% 깎아달라는 컬렉터까지 있어요. 밑지고 판다는 게 맞지요. 작품이 팔려도 통장에는 남는 게 없어요. 그런데 그걸 몰라요. ‘안 남기고 드렸습니다’해도 믿지 못하는 고객이 많습니다.”(A갤러리 대표)

그렇다면 밑지는 장사를 하는 셈인데, 어떻게 화랑의 영업이 지속되는 것일까. A갤러리 대표는 “좋은 작가의 작품을 창고에 많이 쟁여두는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2년 뒤, 5년 뒤 가격이 오르면 그 때 팔아서 타산을 맞추기도 한다는 것이다. 매번 전시를 통해 수지 타산을 맞추는 것은 어렵고 최소 5년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대박’이 터지기까지 버틸 수 있는 인내, 무엇보다 자금의 유동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화랑,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래의 성장주를 찾아낼 수 있는 안목도 전제되어야 한다. 화랑주인에게는 미술사적 지식과 함께 시장의 흐름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전문가의 안목을 빌리기도 한다. 대개 메이저 화랑들은 교수, 평론가, 전시기획자 등 외부 자문위원을 두고 이들로부터 좋은 작가를 추천받는다.

그러나 그저 뜨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뜰 수 있도록 함께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인다. 전속작가의 이름값을 올리기 위해 전시를 통해 노출 빈도를 높이고, 언론에 기사가 나 주목받게 하고, 비평가의 글을 실어 미술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원앤제이갤러리 박원재 대표는 “컬렉터에게 작품을 구입하도록 설득하려면 결국 작가를 밀어줘야 줘야 하지 않겠냐. 5년 후 오르지 않을 작가를 추천하면 어느 컬렉터가 화랑을 믿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속작가 제도는 혼자 있으면 게을러 질수 있는 작가를 전속 시스템 속에 넣어 굴러가게 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3년에 몇 회 전시 등 계약 조건이 있는데 이런 조건에 맞추기 위해서라도 작가들은 작품을 생산하게 된다는 것이다.

# 화랑이 작가를 간택하는 포인트는

기껏 투자한 작가들이 작가의 길에서 중도하차하면 어떻게 될까. 이는 주식투자에서 보면 원금을 날리는 일이다. 이런 위험 부담 때문에 메이저 화랑은 신진작가를 전속작가로 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어떤 유형일까. 어떤 갤러리 대표는 성실성을 따진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일정한 작품 물량이 나와 줘야 시장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갤러리 대표들에게 전속작가를 고를 때 뭘 보는지를 물어봤다.
“작가 품성을 봅니다. 타고난 예술가인가, 이 길 밖에 모르는구나 하는 느낌이 있는 작가를 고르는 것이지요.” (학고재갤러리 우찬규 대표)
“예술성 못지않게 인간성을 봅니다. 작가와 화랑의 관계는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서로 믿고 지원하는 것인데, 신의를 지키지 못하면 안 되지요.”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
“저는 진정성을 봅니다. 진정성이 있으면 성실성은 그냥 따라와요. 성실한데 진정성이 없는 작가도 있거든요. 열심히 하는데 뭘 하는지 모르면 안 되는 거잖아요.” (원앤제이갤러리 박원제대표)

결국 컬렉션의 출발은 좋은 화랑을 만나는 일이다. 아직은 시장에서 평가 받지 못했지만 충분히 잠재력 있는 작가를 발굴할 줄 알고, 이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화랑, 그런데서 전시하는 작가라면 일단 믿고 사볼만 하지 않을까.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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