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인영이를 위해 '기적의 한글학습' 책을 샀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났는데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5살 때 독학으로 한글을 깨우친 언니 윤영이와는 참 다르다. 인영이는 한 달 새 진도를 2페이지까지 나갔는데 엄마가 더 공부하자 그러면 갑자기 “아이야 힘들어”라고 말한단다. 그러다 엄마가 언니를 혼낼라치면 눈치를 보면서 엄마에게 먼저 “공부 안 해서 미안해”라고 애교를 떤다.
신나게 놀다가도 한글공부하자고 하면 피곤하다고 한다. 언니처럼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조르다가, 학원 원장님이 한글 배우고 와야 한다고 했다면 입을 다무는 인영.

한글을 몰라도 인영이를 보면 고맙다. 처음 아팠을 때는 치즈 등 유제품을 못 먹었다. 조금 나아지고 나서 인영이가 좋아하는 치즈를 먹을 때 감사했다. 항암치료로 다 빠진 머리가 조금씩 날 때 또 감사했다. 며칠 전 아내가 인영이 머리를 묶었을 때는 씩 웃음이 나왔다. 지난 주말 키즈카페에 가서 방방 뛰는 모습을 보면 그저 기쁘다. 아직은 아이들 없는 시간을 이용하지만 인영이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뛸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인영이처럼 아픈 아이들을 둔 부모님들은 ‘나중에’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중에 다 낫고 나서 뭘 해주기에는 지금 현재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인영이가 머리를 묶을 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한글 공부 시늉만 하는 것으로 좋다.
언니와 미용실 놀이를 할때,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라고 물으면 "길게 해주세요"라고 답하는 인영이. 세갈래로 머리를 묶으니 아기 슈렉같다.

최근 건강장애학생학부모회를 통해, 10년간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17살에 하늘로 간 딸을 기리며 1억원을 기탁한 부모님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 아빠와 엄마가 10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10년 동안 아이를 통해 얼마나 행복했을지를 상상해봤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특히 아픈 아이는 더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리 아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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