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철 기상청장이 1990년 남극 세종과학기지 근무시절 찍은 사진. 앞줄 왼쪽 4번째 붉은 원이 남 청장. 출처=극지연구소 홈페이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신임 기상청장에 남재철 기상청 차장을 임명하면서 '남극에서 살아본 첫 기상청장'이 배출됐다. 

남재철 청장은 서울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기상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영국 레딩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서울대로 돌아와 대기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기환경, 기후변화 등 기상 업무 전반에 걸쳐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는데, 특히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남 청장은 1988년 기상청 산하 국립기상연구소 연구사로 입사한 후 1990년 1월부터 12월까지 '제3차 월동연구대'의 기상 담당 연구원으로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1년 동안 생활했다. 한국극지연구진흥회 홈페이지에는 ‘눈보라 몰아치는 남극세종기지산 오이소주’라는 제목으로 남 청장이 쓴 글이 지금도 게재돼 있다. 2012년 3월 30일 공개된 이 글은 남 청장이 남극에서 생활할 때의 일화를 소개한 것이다.

그는 “남극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으로 제3차 세종기지 월동대 기상담당으로 참가했는데, 기지에 공급되는 음식이 대부분이 장기 보관을 위한 냉동식품이었다. 5월쯤부터는 날씨가 나빠져 신선한 야채의 공급이 중단됐다”면서 세종기지에서 온실을 운영한 일화를 소개했다.

남 청장은 “온실을 운영해 오이 3개를 수확하던 날 기지에서 대책회의를 했다. 한 대원이 '오이소주를 만들면 공평하게 모두가 오이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제안하더라”며 오이소주를 만들어 대원들이 나눠 마셨다고 했다. 그는 “세월은 오래됐지만, 남극 세종기지 생활은 영원히 잊기 어려운 소중한 추억”이라고 덧붙였다.

남 청장은 이후 2006년 국립기상연구소 예보연구실장을 맡았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기상청 기획조정관실 국제협력담당관을 지냈다. 국회기후변화포럼 이사, 세계기상기구 대기과학위원회 부의장 등 해외무대 활동과 더불어 부산기상청장, 기상청 기상산업정보화국장, 국립기상연구소장, 수도권 기상청장 등을 거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기상청장에 남재철 현 기상청 차장을 임명했다. 뉴시스



◇ 남재철 청장이 쓴 글 ‘남극세종기지산 오이소주’ 전문

결혼하여 첫 아이가 태어난 지 보름 만에 남극행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생생한데 벌써 19년 전으로 세월이 무척 빠르게 지나갔다. 남극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으로 제3차 남극세종기지 월동대 기상담당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기지에 공급되는 식품은 대부분이 장기 보관을 위한 냉동식품이다. 김치는 캔 김치가 주를 이루고 야채는 처음 들어갈 때 가지고 가서 냉장 보관하여 2-3개월 먹게 되면 5월경부터는 날씨가 나빠져서 신선한 야채의 공급이 중단된다.

우리는 세종기지에서 온실을 운영하기로 하고 이에 필요한 물자를 사전에 준비하였다. 빈 콘테이너 한 개에 히터를 설치하고 대원들 모두가 근 일주일 매달려서 온실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배양토(흙)와 남극 흙을 잘 섞어서 큰 화분을 만들고 오이,들깨, 상추, 무우,배추 씨앗을 파종하였다. 제법 싹이 잘 나와서 자랐다. 그런데 며칠 후 일부 무우 배추 싹이 말라 죽었다. 뿌리가 썩어 버렸다. 원인이 월까? 연일 대책회의를 했다.

농촌진흥청 연구소에 팩스로, 전화로 문의했다. 물과 빛이 문제일 거라는 답변을 받았다. 남극 빙하 녹은 물을 주었는데 산도를 측정하니 산성도가 높았다. 그래서 이온정수기를 가동하여 물을 약간 중화시켜서 주었다. 그래도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광이 부족한 것 같아서 콘테이너 벽면을 랩으로 붙이고 형광등을 추가로 설치하였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드디어 상추가 제법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랐다. 전 기지대원이 모여서 김매기 행사를 했다. 그날 우리는 상추 향기를 맡으며 남극 대구회를 먹을 수가 있었다. 물론 개인당 정확히 열 장씩 분배했다.

상추에 이어 오이가 제법 잘 자랐다. 처음 달린 오이가 자라는데 아까워서 쉽게 따 먹지를 못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오이가 사라졌다. 대원 중에 누군가가 몰래 따 먹은 것이었다. 기지 내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지만 범인은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날로 콘테이너에 튼튼한 자물쇠를 달고 나와 믿을만한 몇몇 대원이 교대로 물을 주고 오이를 제법 크게 자라게 하였다.

세 개의 오이를 수확하는 날 기지에서 대책회의를 했다. 이 오이를 어떻게 골고루 나누어 먹을까? 한 대원이 제안하길 오이소주를 만들면 공평하게 오이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채택되어 즉시 남극 세종기지산 오이소주가 만들어지고 대원들이 한 잔씩 공평하게 나누어 마셨다. 이 맛과 향이 바로 고향의 오이 그 자체였다.

지금도 낚시로 잡은 남극 대구회에 남극산 깻잎,남극산 오이소주가 생각난다. 세월은 오래 되었지만,나에게서 남극 세종기지 생활은 영원히 잊기 어려운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다.

진채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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