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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과 청인의 경계에 선 '코다'의 삶…"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1. 지난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5차 수화언어와 음성언어 언어학 회의(The 5th Meeting of Signed and Spoken Language Linguistics)에서 발표 중인 이현화 국립국어원 주무관.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청각장애를 가진 ‘농인(聾人)’ 부모에게 태어난 자녀를 말한다. 그 중에는 청력이 손실된 농인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모두 통칭 코다라고 한다.

정상적인 청력을 가졌더라도 코다의 모어는 ‘수어(手語)’다. 음성언어보다 수화언어를 먼저 익히며 자라지만, 이들의 귀는 청인(聽人· 청각장애가 없으며 음성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다. 농인의 문화 속에서 성장한 코다들은 부모와 청인 사회를 잇는 다리가 되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곤 한다. 농인과 청인의 경계, 그 어딘가에 코다의 삶이 있다.

2014년 코다 영화감독 이길보라 씨가 만든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개봉했다. 청각장애인 부모와 코다 자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코다는 이렇게 청각장애인을 삶과 문화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최근 한 코다 젊은이가 국민일보에 ‘코다의 세상’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현화씨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수어통역사로 활동했고, 현재 국립국어원에서 한국수어를 보급하고 연구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이 글이 “모든 코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다음은 이현화 국립국어원 특수언어진흥과 주무관의 칼럼 전문.

*글에서 ‘농인’은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반대로 청각장애가 없으며 음성언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청인이라 표현한다.

7월 13~16일 캐나다에서 열린 '코다 인터내셔널 컨퍼런스'. 이현화 주무관 제공

<코다 월드, 새로운 세상>

3년 전, 나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관련 회의에서 한국수어-한국어 통역을 하기 위해 스위스에 갔었다. 그 곳에는 한국어, 한국수어, 영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가 있었고 그 당시 한국에서는 보기 쉽지 않았던 국제수어도 있었다. 그 자리에는 영어를 국제수어로 통역하는 통역사가 3명이 있었고 나는 같은 통역사로서 그들의 통역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3명 모두 통역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는데 뒤늦게 그들이 '코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통역 중간에 교대를 할 때면 나란히 앉아 쉬거나 이야기를 나누고는 하였다. 그때 국제수어통역사 중에 한명이 나에게 미국에 ‘코다 인터내셔널(Coda international)’이라는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이 매년 전세계의 코다들이 모일 수 있는 큰 행사를 개최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런 조직이 있다는 것에 놀라고 반가웠지만 거리·비용 등 물리적 조건으로 인해 내가 그곳에 갈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그 해 말, 나는 한국의 코다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농부모의 자녀라는 단 하나의 공통점으로 인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는 왜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감정들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물음을 계기로 우리는 점점 더 깊은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코다를 위하여 무언가를 하고 싶고 해낼 수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후 우리는 이 모임의 이름을 코다 코리아(CODA Korea)라고 지었고, 한국의 코다들을 만나 삶을 나누기도 하고 해외의 자료들을 살펴보며 우리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한국에서 코다의 삶은 무척이나 힘이 들고 외로운 반면 해외 자료에서는 코다의 삶과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농부모의 자녀라는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왜 우리의 삶과 정체성은 그토록 다르게 그려지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이유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외 코다 조직의 사례를 통해 코다 코리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야 할 일들을 구체화해야 했다. 

우리는 점차적으로 우리의 계획들을 실행해나가기 시작하였고, 작년에는 영국과 홍콩의 코다들을 한국에 초빙한 후 세미나를 개최하여 코다와 관련된 지식과 우리의 정체성 그리고 그에 관련된 조직적인 활동을 공유하는 등 우리의 시야를 넓혀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코다 인터내셔널을 만나야 할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코다 인터내셔널’ 홈페이지.

코다 인터내셔널은 1983년에 세워진 국제적 조직으로 코다를 위한 여러 활동들을 해 왔고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코다 인터내셔널 컨퍼런스(Coda international conference)’다. 이 컨퍼런스에서는 코다 그리고 농인과 관련된 학술 자료, 문화 정보 등을 나누며 코다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여러 행사들을 진행한다. 그건 그렇고 전세계의 코다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니.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을까? 도대체 모여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왜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굳이 이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것일까?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나는 그 컨퍼런스의 등록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7 컨퍼런스의 개최지인 밴쿠버에 도착하였고 오랜 비행에 지친 나는 호텔에 들어가 바로 잠을 청하였다. 잠이 겨우 들었을 때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그녀는 나와 방을 함께 쓰기로 한 코다였는데 잠에서 깬 나를 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나를 안아보아도 되는지 물었다. 얼떨결에 나는 그녀와 포옹을 나누었고 그렇게 코다 월드로 빨려 들어갔다.

그 곳에는 11개국에서 온 300여명의 코다가 있었다. 이 컨퍼런스를 32번이나 참석한 코다부터 나처럼 이번 컨퍼런스가 처음인 코다도 있었다. 우리는 외국에서 오랜 시간 외로이 지내던 한국인이 같은 한국인을 만났을 때 동질감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것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완전히 공감하며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곳에서 나는 나의 부모가 농인이며 내가 수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을 긴 문장으로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고, 당연히 “그럼 너희 부모님 운전할 줄 알아?” “티비는 볼 수 있어?” “점자 읽을 수 있어?” 같은 황당한 질문을 받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됐다. 나는 나로서 오롯이 존재할 수 있었다.

7월 13~16일 캐나다에서 열린 '코다 인터내셔널 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이현화 주무관(오른쪽).

7월 13~16일 캐나다에서 열린 '코다 인터내셔널 컨퍼런스'에 참여한 이현화 주무관(가운데).

수많은 코다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에 어떤 코다가 이 컨퍼런스에 처음 오게 되었던 계기를 “I wanted to belong to something(나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었다)”이라고 말하였다. 많은 코다들이 농사회(Deaf community)와 청사회(Hearing community)의 중간에 있으며 농인과 수어를 사랑하고 청사회보다 농사회에 더 정서적으로 친밀함을 느끼지만 그 어느 곳에도 완전하게 꼭 들어맞는다고 할 수 없었고 어딘가에 속하고 싶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이곳을 찾게 되었다고.

“나는 샌드위치에 낀 고깃덩어리처럼 중간에 끼어있는 존재라고 느꼈다”고 말한 어느 코다의 인터뷰처럼 코다 월드를 알기 이전의 우리의 정체성은 농사회와 청사회의 그 중간 어디쯤에선가 떠다니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곳에 바로 코다 월드가 있었다. 농인도 청인도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코다였고 그 세계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CODA,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코다를 KODA(Kid of Deaf Adults), 농인의 손자를 GODA(Grandchild of Deaf Adults), 코다의 자녀를 COCA(Children of Coda Adults)라고 명명하며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코다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수어와 농문화가 어째서 농부모의 것이기만 하냐, 내가 그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고 그 언어가 이미 나에게로 왔으니 그것은 나의 언어이고 나의 문화이지 않냐.” 그렇다. 그렇게 코다 월드에서 코다의 언어와 문화는 전승되고 있었다.

지금도 농사회와 청사회 그 어딘가를 표류하고 있을 코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박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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