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미국을 향해 연일 ‘위협 발언’을 쏟아내던 북한이 사흘째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일일이 대응하며 ‘말의 전쟁’이라 불릴 만큼 위협 수위를 높여가던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지난 달 말 이후 2주가량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북한은 미국을 향한 ‘말 폭탄’을 통해 다음 도발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제시해놓은 상태다. 괌을 ‘포위사격’할 텐데, 어떤 미사일이 어떤 경로를 얼마 동안 비행해 어디에 떨어질지까지 상세히 언급했다. 시점은 ‘8월 중순’이며 “(김정은의) 명령만 떨어지면 임의의 시각에 언제든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춰놓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말한 뒤 북한 정권의 대외 ‘소통’ 창구인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지난 10일부터 관련 보도를 멈췄다. 트럼프 대통령이 듣도록 미국 시간에 맞추려는 듯 이른 아침에 위협 발언을 공개하던 지난 주 중반의 보도 행태가 금요일부터 보이지 않고 있다. 13일 오전에도 북한 매체는 미국을 향한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의 대북 위협 발언은 “화염”에서 시작해 “장전(locked and loaded)”으로 끝났다. 이후 발언마다 수위를 높여 대응해온 북한은 이후 뚜렷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침묵’의 배경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사흘간 벌어진 ‘말 전쟁'

미국 시간으로 계산하면 미국과 북한의 ‘말 전쟁’은 지난 주 8~10일(현지시간) 사흘간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을 촉발한 건 워싱턴포스트였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ICBM에 탑재할 수 있도록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북한이 '레드라인'에 바짝 다가섰거나 이미 넘어섰다는 뜻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몇 시간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은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그들은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힘(power)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북한은 “괌 포위사격 검토"라는 폭탄선언을 꺼내들었다. 전략군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질세라 “북한이 정신 차리지 않으면 과거 극소수의 국가만 경험했던 큰 곤경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 같은 상황을 암시한 것이었다.

북한은 다시 위협 수위를 높였다.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이 직접 나서서 '괌 포위사격'에 동원할 '화성-12형'의 발사 개수(4기), 비행 경로(일본 시마네현, 히로시마현, 고치현 상공을 통과), 비행 시간(1065초), 탄착 지점(괌 주변 30~40㎞ 해상)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북한에 대한 군사옵션이 완전히 준비됐고 장전됐다(locked and loaded)”면서 “김정은이 다른 길을 찾기 바란다”고 했다. 괌 도발을 감행할 경우 군사적 응징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장전됐다’는 표현은 곧바로 반격에 나서겠다는 의미였다.


◇ 사흘째 이어진 北의 ‘침묵’

트럼프의 “장전” 발언 이후 북한 매체에 보도된 것은 “인민군 자원입대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미 항전 의지를 다지는 주민 집회, 군인 집회 소식도 잇따랐다. 미국에 맞서 내부 결속을 굳건히 유지하려는 선전용 기사가 연일 전면에 배치되는 동안 미국을 향한 언급은 자취를 감췄다.

그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가늠해볼 수 있다. 실질적인 도발 준비에 착수했을 가능성과 중국의 입김이 작용해 숨고르기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병존한다.

‘도발’에 무게를 둔 관측은 김정은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화성-14형 2차 발사시험을 감행한 뒤 북한은 성대한 자축연회를 열었고, 김정은은 이 자리에 부인 이설주와 함께 참석했다. 이것이 공개석상에 드러낸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 2주가 지나도록 북한 매체는 그의 동정을 전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달 13일 화성-14형 1차 발사 자축연회에 참석한 뒤에도 보름간 잠행하다 2차 발사를 지휘했다. 지난 5월 화성-12형을 발사하기 전에도 8일간 모습을 감췄다. ‘잠행 후 도발’의 공식은 그가 정권을 잡은 뒤 늘 되풀이됐다. 2주째 계속되는 이번 잠행도 추가 도발을 위한 준비 과정이며, 그 도발은 북한이 공언한 ‘괌 포위사격’과 무관치 않을 거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마침 21일부터 한·미연합을지훈련이 예정돼 있다. 북한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은 괌 도발 시점으로 ‘8월 중순’을 언급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침묵 △김정은의 잠행 △김락겸이 공개한 괌 도발 시나리오 △한미 군사훈련 일정 등이 한꺼번에 맞물려 있어 이 낯선 ‘침묵’은 ‘폭풍전야’를 뜻한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반면 미국와 북한의 말 전쟁에 갑자기 끼어든 중국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이하 현지시간) 북한 문제를 얘기하며 "평화적 해법(peaceful solution)"이란 표현을 꺼냈다. 그는 "북한과 관련해 '매우 위험한'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오늘 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하기로 했다"며 "희망 섞인 말이긴 하지만, 이 모든 문제는 잘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평화적 해법을 나보다 더 선호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통화는 예고대로 이뤄졌고, 양측은 “북한이 도발적이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원론적인 수준의 발표였지만 그 이면에는 더 구체적인 대화가 있었을 게 분명하다. 미국과 북한의 일촉즉발 대결 상황에 중국이 끼어들어 ‘톤’을 누그러뜨린 모양새가 됐다. 중국이 개입을 ‘공개적으로’ 진행한 것은 의도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음을 뜻한다. 불쑥 끼어들었다가 아무런 성과도 나타나지 않을 경우 스스로 영향력을 깎아내리는 꼴이 된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중국이 북한에 ‘긴장 고조 행위’를 자제토록 강하게 압박했고, 북한의 침묵은 그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해석한다. “화염” 발언 사흘 만에 튀어나온 트럼프의 “평화적 해법” 언급도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이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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