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검·경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는 많지만 평범한 이웃들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들도 다 사연이 있고,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수동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남자아이는 자주 울었습니다. 태권도장에 다닐 땐 다른 아이들의 기합 소리에 놀라 울었고 피아노 학원에선 피아노를 치다 자꾸 틀려서 울었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긴장을 많이 했답니다. 슈퍼마켓에서 계산하는 것도 잘 못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갑니다. 1992년 5월 7일.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입니다. 어린이날 선물을 받고 이틀 뒤 떠난거라 25년이 지난 지금도 날짜를 기억했습니다.

울보 아이

시카고 드폴대에 다니던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국방부 건물(펜타곤)이 항공기와 충돌해 붕괴됐습니다. 이슬람 테러조직의 소행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때부터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해졌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 대하는 게 익숙치 않았던 도밍고(35)씨는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복막염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습니다. 병상에서 일어난 뒤 결심합니다. 이제부턴 주도적으로 내 삶을 살겠다고 말이죠.

얼마 뒤 도밍고씨는 한인학생회를 꾸렸습니다. 첫 모임 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데 긴장돼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답니다. “안녕하세요, 도밍고입니다.” 고작 이 한마디를 하는데도 얼마나 더듬댔는지 모르겠답니다. 그래도 조금씩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사람이 좋아졌습니다. 경제학도였던 도밍고씨는 복수전공으로 심리학을 선택합니다.

도밍고씨

2007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투자증권회사에서 미국 부동산 관련 일을 했습니다. 얼마 안 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집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이 무너졌고 회사는 거기에 투자할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퇴사를 했고, 2009년 5월 싱가포르의 펀드회사에서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싱가포르에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게 그즈음이었습니다.

현지에 있던 친구가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기획하는 회사를 차렸는데 도밍고씨는 이 회사에서 서류 번역하는 일을 가끔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번은 한국인 통역사가 펑크를 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도밍고씨가 무대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인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사람 대하는 게 나아지긴 했지만 무대에 오를 정도는 아니었나봅니다. 도밍고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굳어버렸다”고 전했습니다. 

여차저차 겨우 통역을 마쳤는데 그때 느낀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답니다. 혹시 잘 해내지 못할까봐 머뭇거려지는 일이 있으신가요? 일단 한번 도전해보세요. 다시 도밍고씨의 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공연기획 관련 일을 하는 도밍고씨

그 뒤로 공연기획 일을 하다 보니 한국 아티스트들이 억울하게 피해보는 일을 여러 번 경험합니다. 브로커가 모델이나 가수 악기연주자 영상제작자 등을 부른 뒤 잠적했습니다. 돈을 떼먹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여러 명이 좁은 방에 몸을 구기고 자야했고,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아티스트들도 수두룩했답니다. “한번은 모델 일을 하러 싱가포르에 온 친구가 있었는데 브로커가 사라지는 바람에 제 집에서 4개월을 머물렀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갑자기 일이 사라졌고 자신을 알릴 길도 없으니 속수무책인거죠.”

아티스트들은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알리는 법을 몰랐습니다. 도밍고씨는 그 친구의 포트폴리오를 대신 제작해 각종 오디션에 제출했습니다.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재능을 알릴 수 있도록 직접 나선 것이죠. 그리곤 아예 한국으로 돌아와 제대로 회사를 차렸습니다. 이름은 페이머스. 스펠링은 ‘Famous(유명한)’에서 o가 빠진 ‘Famus’입니다. 

페이머스 웹사이트 캡처

이곳에선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어줍니다. 그들끼리의 네트워킹을 만들어주고 이 재능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연결시켜주는 역할도 합니다. 모델 연기 미술 음악 공방 영상제작 어느 분야든 괜찮습니다. 

이렇게 페이머스와 함께한 재능인이 19일 현재 1만7351명입니다. 두 달쯤 전엔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에 카페 ‘페이머스그라운드’를 차려 재능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에 있는 카페 '페이머스그라운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했던 남자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플랫폼을 만든 뒤 웹사이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재능이 가치가 되고 재능으로 소통하는 세상, 당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세요.’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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