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위 잘나가는 이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 검·경 연예인 스포츠 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는 많지만 평범한 이웃들의 삶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들도 다 사연이 있고,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수동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천차돌(31)씨. 차돌씨에게 가장 자신있는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이 사진을 보내왔다.

이름이 특이했습니다. 천차돌(31). 주변에서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차돌처럼 단단하게 살라는 의미로 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라고 대답했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아이가 태어날 당시 KBS에서 ‘은빛여울’이란 드라마를 했는데 거기 나오는 아역배우의 극중 이름이 차돌입니다. 드라마를 좋아하던 아버지는 자식의 이름을 즉흥적으로 지었습니다.

어린 시절 차돌씨. 왼쪽 눈을 감은 채 입을 앙 다물고 있다.

차돌씨도 즉흥적인 걸 좋아합니다. 지난해 10월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 동안 유럽과 동남아로 훌쩍 여행을 떠났습니다. 숙소도 미리 정해놓지 않은 채 돌아다닌 날이 많습니다. 언젠간 퇴사를 하게 될텐데 느지막이 나오면 할 게 없을까봐 아예 서른 살 때 사표를 냈답니다. 차돌씨는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거기가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에요. 제 인생에 이직은 없습니다. 퇴직만 있을 뿐.”

원래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대학교 때 처음 유럽여행을 다녀와서 여행 관련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직장도 하나투어였습니다. 지금까지 50개가 넘는 나라를 다녀왔답니다. 대학 입학 후 줄곧 혼자 살았는데 상수 서촌 충정로 서대문 등을 옮겨 다녔답니다.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주거도 여행처럼 했습니다. 그동안 갔던 국가 중 제일 좋았던 곳이 어디에요?

하나투어에 다닐 때 직장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

차돌씨는 라오스를 꼽았습니다. 라오스 남쪽엔 시판돈이란 무인도(無人島)가 있습니다. 여기서 3일간 고독을 씹다 왔습니다. 통상 혼자 여행을 가도 현지에서 동행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선 철저히 혼자여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답니다. 

고독을 방해한 게 딱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강아지. “현지에서 만난 개가 24시간 절 쫓아다녔어요. 숙소까지 제 집처럼 자연스럽게 들어왔어요. 마지막 날엔 부두까지 절 데려다주더라고요.”

라오스 시판돈에서 차돌씨를 쫓아다니던 강아지가 차돌씨 손을 핥고 있다.

스위스에 갔을 땐 체르마트에 있는 마테호른 산에서 스키를 탔습니다. 여태까지 스키를 딱 한번 타본 차돌씨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곤돌라로 정상에 갔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했답니다.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스키 좀 타는 사람은 1시간이면 내려오는 코스를 차돌씨는 3시간 걸려 내려왔습니다. 함께 갔던 지인은 진즉 포기하고 곤돌라로 내려와 까르보나라를 먹고 있었습니다. 차돌씨가 말했습니다. 

“개고생을 하고 내려온 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그렇게 청명할 수가 없었어요. 하얀 눈세상을 파란 하늘이 덮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까지 세척되는 느낌이었죠.”

차돌씨가 스위스 마테호른 산에서 스키를 타다 멈춰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차를 렌트했습니다. 고작 2㎞ 이동하는 동안 시동을 15번이나 꺼트렸답니다. 알고 보니 수동기어를 3단에 놓고 계속 시동을 걸고 있던 겁니다. 사소한 에피소드인 것 같은데 차돌씨는 한껏 들떠있었습니다. 

여행 이야기는 이런 매력이 있습니다. 사람들과 여행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지난 3월 상수역과 합정역 사이에 술집을 차렸습니다. ‘여행상담술집 여행자살롱'.

여행상담술집 여행자살롱 외부 모습.

한 콜롬비아 남자가 여행자살롱에 왔습니다. 남자는 중국 광저우 여행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콜롬비아인이 광저우에 가려면 비자가 필요한데 남자는 이걸 모르고 있었답니다. 차돌씨가 아니었다면 여행을 못가 휴가를 망칠 뻔 한 것이죠.

차돌씨는 이곳을 여행자들의 아지트로 만들어가고 싶어 합니다. 여행 작가, 사진가, 여행에디터 등 여행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3명의 여행 작가와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둔 이름도 있는데 바로 ‘합정동 공항 프로젝트.’ 매달 마지막 금요일엔 파티를 할 건데 9월의 파티 콘셉트는 ‘남미, 내 인생을 바꾸는 여행’입니다.

'여행상담술집 여행자살롱' 내부 모습.

정말 여행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요? 차돌씨는 여행을 다닐 때 박정현의 ‘꿈에’를 즐겨듣습니다. 이 곡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이건 꿈인 줄 알지만 지금 이대로 깨지 않고서 영원히 잠 잘 수 있다면.’ 여행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에게 여행은 깨고 싶지 않은 꿈같은 것일 겁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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