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동학대 후유증과 관련된 연구에서 아동이 어렸을 때 경험하는 학대로 발생한 심리‧정서적 외상이 아동의 사고와 정서를 관장하는 뇌 영역에 끼치는 영향은 어른들이 전쟁 전‧후에 경험하는 정도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청년기고] 학대라는 전쟁 속 아이들
경기용인아동보호전문기관(굿네이버스) 정영규 임상심리사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동학대'를 아동의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의 극단적인 폭력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상에서 훈육 차원이라 여기는 신체 및 정서학대도 아동학대에 포함된다. 그리고 훈육을 목적으로 한 학대 역시 지속될 경우 아동의 우울과 불안, 공포를 관장하는 변연계와 행동과 정서를 조절하는 전두엽의 뇌신경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성인과 달리 학대로 인한 외상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들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대를 경험한 아동 대부분은 전쟁과 같은 현실을 언어와 의식의 차원이 아닌 뇌와 온 몸 그리고 무의식의 영역을 통해 '각인'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이성적인 사고가 발달하지 못한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와 고통은 대부분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환경적으로는 학대를 벗어나도 그 학대의 영향이 아동의 심리정서와 이후 세상에 적응하는 것에 매우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필자가 심리치료를 진행했던 철호(가명, 17세)는 아동학대의 심각한 후유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첫 만남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철호는 아빠의 폭력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가출을 시도했다. 아빠는 일주일 3~4번씩 아빠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철호가 정신을 잃을 만큼 허리띠로 때렸다. 아이는 아빠가 짐승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학대후유증으로 철호는 아빠의 학대가 없어도 집에 있으면 불안해지게 됐다. 때문에 1년에 300일 이상을 집 밖에서 지냈고, 학교 숙직실이나 공사 중인 건물 등에서 잠을 잤다. 그런 철호를 아동보호전문기관, 주민센터, 구청, 학교에서 설득해 안전한 보호시설에 입소시켰지만 자신도 설명하기 힘든 불안과 공포가 느껴졌고, 결국 아이는 다시 거리로 뛰쳐나갔다.

대부분의 학대피해아동은 철호와 같이 또래 수준보다 매우 높은 수준의 불안정감과 소외감, 무력감을 경험한다. 학대가 지속된 기간이 길수록, 그 정도가 심각할수록 아동은 우울과 불안의 수준이 심각해지고, 행동조절력은 저하된다. 결국 아동은 세상과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잃게 된다. 후유증이 심한 경우 정신과적 문제와 성격장애를 경험하는 경우도 많다. 영유아일 때부터 학대를 경험하는 경우에는 발달에 심각한 손상을 받아 낮은 지능 발달이나 사회성의 심각한 손상이 오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아동이 학교나 또래관계에 적응하는데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학대피해아동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학대행위가 중단되는 것 뿐 아니라 가족이 아동의 치유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허나 아동학대 행위자의 80%가 부모이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아동학대 가해자인 부모는 자신의 축적된 삶의 패턴, 양육방법에 대한 무지, 왜곡된 가치관, 자신의 심리정서적인 문제 등으로 자녀에 대한 학대행위를 완전히 멈추지 못하고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현장조사와 강경한 법적 대처, 사회복지 서비스를 통한 환경 변화를 유도함에도 아동학대가 중단되고 후유증이 치유되지 않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아동학대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외부적 요소에 대한 개입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처를 발견하고, 치료하는 심리‧정서적 개입이 필수적이다.

앞서 소개한 철호는 필자를 만나 심리치료를 시작했다. 심리치료 초기에는 장난감을 부수고 모래를 뿌리거나, 욕설을 하거나 뛰쳐나가버리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과도한 애정을 요구하며 자신을 치유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런 철호를 아무런 조건 없이 수용하고, 공감해주며 천천히 치료했다. 함께 한 지 11회기 만에 철호가 내게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은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이제 벗어나고만 싶었던 보호시설에 갈 용기가 생겼다고. 현재 철호는 보호시설에 입소해 학대후유증을 이겨내며, 적응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보이는 상처와 함께 보이지 않는 마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동학대는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대 상황에서 벗어나게 이끄는 것 뿐 아니라 여전히 마음의 상처 속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치유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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