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간선버스 자료사진. 국민일보 DB

아이가 버스에서 혼자 내렸다. 버스는 문을 닫고 출발했다. 버스에 남은 엄마는 당황해 하차를 요구했지만 운전사는 다음 정류장까지 멈추지 않았다. 운전사는 엄마를 포함한 승객들의 정지 요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 11일 오후 6시20분쯤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대역 정류장에서 건대입구역 정류장까지 이동한 240번 간선버스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아이는 일곱 살이었다. 당황하지 않고 대응해 엄마와 재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목격담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버스운전사와 엄마는 한 차례씩 여론의 포화를 맞았다. 모든 상황의 당사자인 버스운전사와 엄마는 한 번도 언론과 여론을 향해 목소리를 내거나 서로를 비방하지 않았지만, 엉뚱하게 ‘맘충’과 ‘꼰대’ 논란이 불거졌다. 목격자의 합리적인 문제제기마저 ‘마녀사냥’으로 매도됐다.

1. 버스운전사의 ‘승객 무시, 아이 유기’ 논란

논란은 지난 11일 오후 6시55분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에 올라온 항의문에서 시작됐다. 작성자는 240번 버스에 탑승했던 승객으로 추정된다. 그는 버스의 노선번호, 차량번호, 사건의 발생 시점과 장소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도 남겼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안녕하세요. 약 20분 전쯤 퇴근 시간이라 사람이 많아 앞뒤로 꽉 차 있었고, 건대역에서 사람들이 차례대로 내리고 있었습니다. 뒷문 쪽에 서있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다 제쳐가며 다들 내리고 있었고, 5세도 안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내리고 바로 여성분이 내리려 할 때 뒷문이 닫혔고, 아이만 내리고 엄마는 못 내렸습니다. 아주머니가 울부짖으며 아이만 내리고 본인이 못 내렸다고 문열어달라고 하는데 무시하고 그냥 건대입구역으로 가더군요. 

앞에 있는 사람들도 기사 아저씨에게 내용을 전하는데 그냥 무시하고 가더군요. 다음 역에서 아주머니가 문 열리고 울며 뛰어 나가는데 큰 소리로 욕을 하며 뭐라 뭐라 하더라고요. 만일 아이를 잃어버리게 되면 책임을 지실 건지.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리는 분주한 역에서는 좀 사람 내리고 타는 걸 확실히 확인하고 이동하시길 바랍니다. 그 아주머니가 아이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서 급하게 나갔지만, 정말 제가 그런 일을 겪었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갑니다. 꼭 사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삽시간에 퍼졌다. 버스운전사는 승객을 향한 무시 및 욕설, 아이의 실종 가능성 방관, 이 두 가지 이유로 여론의 지적을 받았다. 대중교통 운전사에 대한 불친절 경험담이 더해지면서 비난 여론은 커졌다. 문제의 버스운전사가 60세 남성으로 알려지자 비난 여론은 중장년 남성의 사고방식을 지적하는, 이른바 ‘꼰대’ 논란으로 확산됐다.

해당 버스운전사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인터넷 이용자는 반박 글을 올렸다. 그는 “(항의문에) 아주머니께서 울부짖었다고 쓰여 있었지만 과장된 표현이다”라며 “아버지는 승객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고 욕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 ‘맘충’ 매도된 엄마, ‘마녀사냥’ 몰린 문제제기

서울시의 CCTV 분석과 운전사의 경위서를 종합하면, 240번 버스는 지난 11일 오후 6시27분쯤 건대역 정류장에 도착해 16초간 출입문을 열고 승객들을 하차시킨 뒤 문을 닫고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엄마와 동승한 7세 딸이 혼자 내렸다. 버스는 10m 정도 이동해 3차로로 진입했고, 20초쯤 뒤 다음 정류장에 정차했다. 운전사가 상황을 파악한 시점은 건대역 정류장 출발 10초쯤 뒤였던 것으로 시는 판단하고 있다.

엄마는 ‘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버스는 건대입구역 정류장까지 멈추지 않았다. 이동 거리는 약 260m. 엄마는 아이를 찾으러 뛰어갔고, 다행히 아이의 전화로 만날 수 있었다. 시는 설명자료를 내고 “CCTV 등을 확인한 결과 운전사는 버스 출발 이후에 엄마의 하차 요청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버스가 4차로에서 3차로로 차선을 변경한 상태여서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도록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시와 언론이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버스운전사에게만 집중됐던 비난 여론은 엄마 쪽으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운전사가 아이의 실종 가능성과 승객의 요구를 무시한데 이어 욕설까지 했다는 항의문의 내용이 과장됐고, 엄마가 시의 CCTV 공개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이를 놓친 엄마의 육아 태도를 지적하거나, 영유아 동반해 공공질서를 어지럽힌 엄마를 비하하는 ‘맘충’ 논란까지 불거졌다.

정작 엄마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을 적어 버스운전사를 비난하거나 경찰에 처벌을 요구하지 않았다. 건대역 정류장 주변 치안센터인 자양1파출소 관계자는 “엄마가 아이를 찾은 뒤 파출소에 들렀지만 신고를 접수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어느 승객이든 적을 수 있는 대중교통 사업자 홈페이지 게시판의 민원성 게시글도 ‘마녀사냥’으로 몰리면서 상황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을 튀고 있다.

국민일보 더피플피디아: 서울 간선버스 240번

더피플피디아는 국민(The People)과 백과사전(Encyclopedia)을 합성한 말입니다. 문헌과 언론 보도, 또는 관련자의 말과 경험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백과사전처럼 자료로 축적하는 비정기 연재입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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