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화면 캡처

호주에 사는 제임스 해리슨은 평범한 남성이다. 딸과 손주들을 사랑하고, 우표 모으기를 좋아하며, 때로는 집 근처 해안을 걷는 80세 노인이다. 하지만 그의 몸 안에 흐르는 피는 누구보다 특별하다.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로 알려진 해리슨은 지난 60여년 동안 매주 헌혈했다. 이렇게 꾸준히 헌혈을 하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 그가 누웠던 수술실로 돌아가면 알 수 있다. 해리슨은 2015년 CNN과의 인터뷰에서 “1951년, 14세 때 심장 수술을 받았다. 상태가 심각해 폐를 잘라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이 끝나고 며칠 뒤 아버지는 내가 13ℓ의 피를 수혈받았다면서 이름 모를 사람들이 나를 살렸다고 말씀하셨다”고 기억했다. 해리슨의 아버지도 아들을 위해 헌혈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성인이 되면 꼭 헌혈하겠다”고 다짐했다.


18세가 되던 해, 해리슨은 헌혈을 하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다. 헌혈이 끝나자 한 의사가 그를 불렀다. 의사는 해리슨의 피가 심각한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주 적십자사에서 일하는 의사 젬마는 CNN에 “호주에서는 1967년까지 매년 수천명의 아기들이 죽었고 의사들은 그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엄마들은 유산이 잦았고 아기들은 뇌에 손상을 입은 채 태어났다”고 했다.

RH병의 결과였다. RH병은 임신한 여성의 피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혈액세포를 공격하는 현상이다. 심각할 경우 아기의 뇌에 손상을 입히거나 아기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 RH병은 엄마와 아기의 RH 혈액형이 다를 경우 일어난다. 그리고 해리슨의 피에는 이 공격을 차단할 수 있는 항체가 있었다.


수천명의 아기를 살릴 수 있는 항체를 발견한 해리슨과 의사는 1960년대에 그의 항체를 활용해 안티디(Anti-D)라는 주사를 만들었다. 젬마는 “이 항체를 지닌 헌혈자를 찾은 사람은 호주가 최초였고 당시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도 호주에서 나오는 안티디 주사는 해리슨의 피에서 출발한다.

의사들은 해리슨이 ‘특별한 피’를 지닌 이유에 대해선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은 해리슨이 14세 때 받은 수술과 수술에서 수혈받은 막대한 양의 피가 특별한 항체 생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해리슨은 지금까지 호주에서 이 항체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50명 중 한 명이다.


젬마는 “제임스는 대체 불가하다”며 “그가 했던 일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해리슨은 몇 년 뒤 이 일을 은퇴해야 한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의 역할을 해주길 바랄 뿐이다”고 전했다.

호주에서 해리슨은 영웅으로 칭송받으며 수차례 상을 수상했다. 그는 그간 1000회 이상 혈장을 헌혈했다.

매주 헌혈하는 그는 “참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고 고백했다. 해리슨은 “바늘이 팔로 들어갈 때면 하늘을 쳐다본다”며 헌혈에 대한 두려움을 설명했다. 이어 “간호사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피를 보는 건 참기 어렵고 아픈 것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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