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병원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적막한 그 공간의 느낌을.

인영이가 아픈 이후 처음으로 ‘풀타임으로’ 명절을 보냈다. 인영이는 할아버지 산소도 따라가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이틀 밤도 자고 왔다. 인영이는 대전 할아버지(친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해 혼란을 겪은 것을 빼고는 연휴를 즐겼다.
2년여동안 항암 치료를 씩씩하게 잘 받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인영이가 아픈 이후 병원 생활을 하던지 아니면 윤영이만 데리고 아버지 성묫길에 올랐는데 올해는 온 가족이 갔다. 인영이는 할아버지 보러 가자는 말에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있다는데 어떻게 할아버지를 보러 가냐며 합리적 의심을 하더니, 산소 앞에서는 “근데 할아버지 어디 있어?”라고 물었다. 영혼과 육신의 분리를 어떻게 설명할 길 없어 저 안에 계시다고 산소를 가리키니 하늘나라에 있다며 왜 땅 속에 있느나며 따졌다. 인영이는 처음 보는 시골 어르신들한테 “우리 집에 놀러와”라며 편하게 말을 놔 아빠를 식은땀 나게 만들었다.
2년만에 온 가족이 아버지 산소에 갔다. 아버지는 병상에서도 갓 돌이 지난 인영이를 많이 예뻐해주셨다.

인영이는 성묘 다음날에는 네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여수 처갓집에 가서 이틀 밤을 자고 왔다. 모기에 몇 방 물렸지만 감기 한번 안 걸리고 잘 놀다 왔다.

난생 처음 9일 연속 쉬어보니 참 좋았다. 연휴 첫 날 호캉스 간 것 외에는 특별히 계획하고 논 것도 없지만 집에서 인영이 엉뚱한 말에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쉼이고 힐링이었다.

몇 개 생각나는 인영어록.
“엄마 나중에 애기되면 내가 장난감 많이 사줄게.”(인영이는 나이가 들면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건 줄 안다)
“엄마 잠이 안와. 내 안에 마법이 있어.”(잠이 안오는 심오한 이유를 설명하며)
“앗, 미안. 실수.”(언니 일부러 때린 뒤 실실 웃으며)
“우와 엄마 쭈쭈 진짜 이쁘다.”(병원 가는 고속 버스 안에서 엄마를 칭찬하며)
“엄마, 아빠 죽으면 엄마랑 언니랑 호텔 가자.”(호텔 수영장 또 가자는 걸 안 간다고 하자)
“아빠 오래오래 죽어.”(오래오래 (살다가) 죽어의 줄임말)
추석 기념 호캉스. 비용이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위생적인 측면에서 호텔 수영장을 찾을 수 밖에 없다.

2년 가까운 투병생활동안 살얼음을 걷는 날들이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두꺼운 얼음길을 걷는 기분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지만. 정말 ‘오래오래 죽어’ 인영이가 낳은 딸의 손을 잡고 아버지 산소에 가고 싶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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