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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 그게 대체 뭔데?

2017년 요즘, 평소 코르셋을 착용한다는 여성은 흔치 않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르셋’이라는 단어는 온·오프라인 모두에서 수년 전에 비해 더욱 자주 마주치게 됐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혐오(misogyny)’는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페미니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확산됐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페미니즘 용어들이 생겨났다. 최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여성정책 토론회에서 ‘젠더폭력’(성별 차이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신체, 정신, 성적 폭력)의 의미를 몰라 진땀을 뺀 일화도 있었다.

‘맨스플레인’ ‘젠더감수성’ ‘미러링’ 등과 함께 페미니즘 진영 내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용어 중 하나인 ‘코르셋’은 여성이 사회로부터 받는 시선과 가부장적 억압으로 인해 행하는 일종의 ‘자기검열’을 뜻한다.

코르셋이란 본래 여성의 체형을 날씬하게 보이도록 고래 뼈나 철사를 넣어 만든 보정 속옷이다. 19세기 유럽에는 13인치 ‘개미허리’가 대유행해 많은 여성들이 허리가 가늘어 보이기 위해 코르셋을 착용했다.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린 것은 물론이고 무도회장에서 기절하는 경우가 숱했다고 한다. 심한 경우 간을 비롯한 신체 장기가 제 위치에서 이탈되거나 갈비뼈가 삐뚤어지는 기형적인 신체를 가지게 되는 사례도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코르셋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노동이 본격화됐고, 코르셋은 여성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됐다. 또한 정부는 전시 물자인 철사 확보 등의 이유로 코르셋 착용을 규제했다. 코르셋의 빈자리는 활동성 면에서 더 나은 브래지어가 대체하게 됐다.


현대판 코르셋 ‘브래지어’,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잖아?

그러나 브래지어 역시 여성의 몸을 상징적으로, 물리적으로 억압하는 데 있어 코르셋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성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착용하는 속옷은 ‘와이어 브래지어’다. 와이어가 가슴의 모양과 탄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와이어 브래지어는 다양한 부작용을 수반한다. 와이어가 가슴 밑 부분을 조임으로 인해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림프절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소화불량과 역류성 식도염, 수족냉증 등 다양한 질병을 일으킨다.

직접적으로 이러한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대부분의 여성들은 브래지어로 인해 답답함을 느끼고 여름에 땀이 차는 것을 일상적으로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류산업학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여성의 97.7%가 브래지어를 착용한다. 시대가 지날수록 속옷 사업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기능과 패션을 가진 속옷이 탄생했다. 개인의 기호에 맞춰 다양한 종류의 속옷을 취사선택할 수 있으니 소비자로서 제품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속옷의 착용 여부가 선택의 문제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브래지어를 입을지, 말지’ 두가지 선택지에서 많은 한국 여성들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브래지어는 당연히 입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브라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노브라를 ‘성적인 것’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EBS ‘까칠남녀’에서 3개월간 ‘노브라’ 빅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브라’ 빅데이터에는 수집되지 않았던 ‘성관계’라는 키워드가 등장했다.

지난 9월 위키트리에서 10·20대를 대상으로 한 “노브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320명 중 225명(70.3%)가 “개인의 자유다”라고 답했다. “남자도 똑같이 유두가 있는데 왜 여자만 입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보기 불편하다는 주장은 논리가 없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개인의 자유”라고 답한 남성응답자는 74%로 여성응답자 67%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 응답자들은 “내 가족, 특히 내 여자친구는 안된다”라며 이중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노브라’가 타인에 의해 성적인 코드로 읽히고, 가족 혹은 남자친구로서 그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관심을 보인 한 50대 남성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았으면 ‘불편하다’에 스티커를 붙이고, 제대로 받지 않았으면 ‘개인의 자유다’에 붙이겠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연예인 설리의 경우만 봐도 노브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너그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설리가 개인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차림의 사진을 올릴 때마다 연일 화제가 되며 댓글 창에는 ‘노브라’에 대한 악성 댓글과 갑론을박의 토론이 펼쳐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누리꾼은 “워터파크... 노브라는 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워터파크에서 노브라를 한 여성을 보았는데 좀(노브라하는 것을)자제해야하는 것 아닌가’하는 내용이었다. 40개 가량의 댓글 대부분에는 “남사스럽다” “외국에서 살다 왔나” “자신 있나 보다” “별 미친 여자 다 보겠다. 더럽다” “남자들 눈이 돌아갔겠다” 등의 비난이 이어졌다.

이처럼 ‘노브라’를 했을 때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을 뿐 아니라 원치 않는 ‘섹슈얼한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을 여성들은 공공연히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브래지어, 자기가 선택한 것 아니야?”라는 식의 이야기는 현실 상황을 무시한 채 모든 책임을 여성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의 브래지어 착용은 일종의 예의나 에티켓, 즉 ‘여성으로서 지켜야 하는 사회적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브래지어가 ‘현대판 코르셋’이라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상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여성의 몸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의 자유 (Free the Nipple!)

여성도 유두가 있고 남성도 유두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타인의 유두가 드러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이 한여름에 유두가 두드러지는 얇은 옷을 입고 외출했다고 해서 ‘개념이 없다’ ‘문란하다’ ‘외국에서 살다 왔나’라는 말을 듣지는 않는다.

이는 결국 성차별 문제와 직결된다. 여성의 몸이 남성의 몸과 달리 ‘보여지는 객체’로서 취급받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북미와 유럽권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다. 브래지어의 불편함과 자기검열에 반발한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자기 동네에서 직접 ‘노브라 데이’ 캠페인을 열기도 했다. 프랑스 웹사이트 “boobstagram”은 인스타그램 가슴 검열 정책을 풍자하며 10월 13일을 노브라데이로 상정했다.

노브라를 넘어 “여성도 남성처럼 상의 탈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캠페인도 적지 않다. 지난해 1월 호주 브리즈번 올레이 공원에서는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야외 이벤트가 열려 50여 명의 여성들이 가슴을 드러낸 채 피크닉을 즐겼다. ‘가슴 노출을 허하라’는 뜻의 ‘프리 더 니플’은 2015년 8월 미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여성 운동의 구호로 “남성들이 자유롭게 웃옷을 벗고 길을 활보할 수 있듯, 여성들도 당당하게 가슴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워털루에서는 수백 명의 여성이 상의를 입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시위가 있었다. 여성이 상의를 벗고 다닐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기 위해서였다. 실제 온타리오주는 1996년 통과된 법에 의해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가슴을 드러내는 것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수영장 직원이 상의를 가리지 않은 8살 여자아이에게 상의를 입으라 요구한 일이 있어 여론의 반발이 있었다.

해외 SNS 유저들의 ‘남성 젖꼭지 합성’도 유행이다. 남성의 상의 노출은 괜찮지만, 여성의 유두는 노출하지 못하게 하는 SNS 정책에 항의하는 캠페인으로 ‘프리 더 니플’의 SNS버전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역시 지난해부터 페미니즘이 빠르게 확산되며 ‘여성의 몸 해방’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페미니즘 단체 ‘언니미티드’는 ‘언니’와 ‘리미티드’를 합친 이름으로 ‘제한 없는 여성들의 몸 해방을 응원하자’를 의미한다.

지난 3월 4일 종로구에서는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페미답게 쭉쭉간다’라는 이름의 문화제가 개최됐다. 언니미티드는 ‘찌지해방’이라는 배지판매와 함께 ‘브라 보관소’를 열었다. 브라보관소의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➀간이탈의실에서 브래지어를 벗고 맡긴다 ➁당당한 가슴으로 문화제와 행진을 즐긴다 ➂행진이 끝나고 브래지어를 찾아간다(보관을 원치 않을 시 탈의 후 바로 가져가도 된다)

뽕브라, 푸시업브라, 와이어브라 등 ‘여성의 가슴은 크고 봉긋하고 예뻐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몸으로 행사를 즐기라는 의미에서 기획됐다고 한다.


브래지어는 갑갑하고, 노브라는 부담스럽고... 대안은?

브래지어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고 ‘여성의 몸 해방’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누구나 노브라에 선뜻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브라를 향한 차가운 사회적 시선이 존재하고, 의도치 않게 ‘관심병자’로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은 사회적 불편함 대신 육체적 불편함을 감수하기를 선택한다.

최근 이러한 여성들을 위해 브래지어 대신 착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니플패드(패치)’는 유두를 가리는 스티커 형태로 과거에는 주로 남성용으로 출시됐다. 하지만 노브라를 원하는 여성들이 계속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여성용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름 4~6㎝의 원형이나 꽃 모양으로 실리콘 형태와 패브릭형태가 있다. 피부에 닿는 접착 면은 스티커처럼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고, 사용 후 중성세제로 깨끗이 세척했다 건조시키면 20회 이상 재착용할 수 있다. 유두 부분을 빼고는 피부에 닿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노브라와 가장 가까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브라렛(bralette)은 기존 브래지어에 있던 패드나 와이어 등을 없애 가슴에 가해지는 압박을 최소화한 형태의 브래지어다. 후크가 아닌 밴드로 뒷부분이 마감되어 있다. 가슴 아래 딱딱한 와이어와 두꺼운 패드, 등 뒤의 후크로 여성의 가슴을 전방위로 압박하며 ‘봉긋하고 아름다운 가슴’으로 보이는데 주력했던 기존의 브래지어와는 전혀 다른 속옷이다. 가슴이 크든 작든, 벌어져 있든 모여 있든 있는 그대로의 가슴을 존중한다. 최근에는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듯한 편안함 뿐만 아니라 다양한 디자인으로 브라렛을 찾는 소비자들이 증가해 많은 속옷 브랜드들이 ‘브라렛 컬렉션’을 출시하고 있다. 카일리 제너 등 해외 셀러브리티들이 브라렛을 입고 촬영한 사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여성이 노브라를 해야 하고, 노브라를 해야만 여성의 몸이 해방된다는 것은 아니다. 브래지어를 쇼핑하는 것이 취미인 여성도 있고, 가슴의 특성상 오히려 브래지어를 입는 게 더욱 편한 여성도 있을 것이다. 다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에 대한 주체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노브라에 대한 차가운 사회적 시선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것이다.

민다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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