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예강이 엄마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아픈 아이의 부모로서 의료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관련 취재를 시작할 때였다. 믿었던 대형병원의 과실로 부지불식간에 아이를 하늘로 떠나보낸 예강이 엄마는 생각보다 강해보였다. 슬픔을 뒤로 한 채 꼭 병원의 잘못을 밝혀내고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의지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그것이 예강이를 위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그리고 해야 할 마지막 의무라고 했다.

엊그제, 예강이 의료사고에 대한 민사 1심 재판결과가 나왔다. 완전패소. 재판부는 예강이의 죽음에 의료진의 과실은 단 하나도 없었다고 판정했다. 판결문을 꼼꼼히 읽어봤다. 판결문은 예강이를 ‘망아’라고 표현하며 예강이는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아이’로 묘사했다.
예강이 엄마는 하늘나라로 간 이후에도 예강이 생일날에 선물을 사서 올려놓는다. 예강이는 아직 엄마 마음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예강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예강이 사망 당시 CCTV를 보고 며칠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영상을 보면, 예강이는 발가벗겨져 웅크린 채 누워있고, 3명의 의료진이 예강이를 잡은 채 허리뼈 근처에서 척수액을 빼내는 요추천자를 시도했다. 1년차 레지던트가 3번 실패한 뒤 2년차 레지던트가 와서 2번을 더 시도했지만 결국은 의도했던 척수액을 빼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예강이는 쇼크사했다. 예강이는 3번째 시술부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생명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 기기음이 울리고 있었지만 2명의 레지던트는 검사에만 열중했다. 레지던트는 어디에 전화를 했고, 검사를 중단하라는 지시를 받고서야 멈췄다. 나중에 떼어 본 의무기록지는 조작돼 있었다. 영상을 보면 예강이 맥박수를 보여주는 기기는 분당 130회를 떨어진 적이 없는데, 80회로 적혀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예강이는 건강체질이었다. 2014년 1월 코피가 멈추지 않았다. 3일 동안 동네병의원을 전전하다 서울의 유명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예강이 엄마는 큰 병원을 믿고 안도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강이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예강이 요추천자 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이 없다는 관련 법리를 18줄의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문장에 쉼표는 7개다. 숨을 참아가며 몇 번이고 이 문장을 읽었다.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고, 그 의료의 과정은 의사만이 알 수 있을 뿐’이라고 이 문장은 시작한다. 판결문은 CCTV 영상을 보면서 의료진이 ‘활력징후를 측정하는 모니터를 확인하며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의료진의 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축 늘어진 예강이 상태를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께에 바늘을 넣으려고만 하는 의료진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이렇게 해석할 수는 없다.
예강이 엄마와 환자단체연합회는 1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예강이 엄마는 울부짖는다. 의료사고로 허망하게 아이를 잃은 것이 억울해 재판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재판으로 더 억울한 사람이 됐다고.환자단체연합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예강이 사건의 담당 합의재판부 3명의 판사 중 우배석 판사는 가해 의사와 같은 의대 2년 선배라고 한다. 정식적인 제척 사유는 안 된다고 하지만 본인이 알아서 이 사건은 피했어야 하는 게 상식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재판부는 서민들에게만 적용되고,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을 15년 넘는 기자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목격했다.

예강이 엄마는 항소를 결정했다. 의료사고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피해자가 의료분쟁조정원에 조정신청을 냈을 때 의료기관이 이를 거부할 수 없게 한 의료분쟁조정법, 이른바 신해철법의 처음 이름은 예강이법이었다. 예강이법은 만들어졌지만 아직 의료계에서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오지 않았다. 하늘나라에서 신해철 아저씨 손을 잡고 있을 예강이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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