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거실바닥에 엎드려 김애란의 단편을 읽다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칼질소리와 간식을 먹는 두 아이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마흔 넘은 아빠는 안 우는 척 몰래 눈물을 닦았다.
‘입동’은 52개월 된 아이를 허망하게 잃은 한 부부의 이야기다. 결혼 10년 만에 변두리 17평짜리 아파트를 마련하고 한 아이를 키우며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로 살아가던 평범한 아빠는 소설 중반부에서 이렇게 독백한다.
아내와 인영이는 하루종일 붙어있고 하루종일 심심해한다. 요즘은 인영이가 자주 엄마를 혼내는 듯 하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양 손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그랬다.’
따사로운 가을날, 감사한 마음으로 따뜻한 겨울을 준비한다.

생각하기 싫었지만 지난 2년여 간 아이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은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병실에서 가쁜 숨을 쉴 때도, 까까머리로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 품에 안겨 잘 때도, 하나도 안 아픈 아이처럼 신나게 놀이터에서 뛰어 놀 때도, 부지불식간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부재의 상상에 거칠게 머리를 흔든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 기억 때문인지 소설 속 남자의 아픔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세종 패셔니스타, 인영.

최근 인영이는 ‘52개월째’ 기저귀를 뗐다. 또래 아이들보다는 2~3년 정도 늦었고, 유치원에 가서야 기저귀를 졸업한 언니보다도 1년가량 늦었다. 아직도 가끔 밤새 이불 빨래 더미를 엄마에게 선물하지만, “아빠, 쉬야 도와줘”라며 내 손을 잡고 변기에 앉아있는 인영이에게 늘 “인영이 최고”라고 말해준다. ‘기적의 한글학습’ 책은 몇 달째 3페이지에 머물러 있어도, 아빠에게는 인영이가 기저귀를 졸업한 것이 기적같이 기쁠 따름이다.

찾아보니 5일 전이 입동이었다. 겨울이 시작됐다. 이번 겨울은 여느 때보다 더욱 따뜻하게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감사함을 땔감삼아.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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