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 앞에는 교수님과 그의 딸 사진이 있었다. 딸이 내 또래라고 들었다. ‘이게 성희롱이 맞나? 내가 딸과 비슷한 나이라서 이러는 건가?’ 패닉 상태였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세르지오 베르두 교수가 한국인 대학원생에게 2개월간 성추행을 하고도 ‘8시간 교육 이수’ 처벌만 받았다고 ‘허프포스트US’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허핑턴포스트에 실명을 공개한 대학원생 임여희(26)씨는 지도교수인 베르두 교수에게 두 차례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부산 출신인 임씨는 한국에서 전자공학 학사 과정을 마친 후 2015년 8월 23세에 프린스턴 대학교로 떠났다. 임씨는 2학기(2016년 1월)부터 학계 권위자인 세르지오 베르두 교수에게 논문 지도를 받게 됐다. 하지만 1년 뒤부터 베르두 교수는 임씨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교수는 축구 경기나 영화를 보자며 제자인 임씨를 집으로 초대해 단 둘이 있는 상황을 연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씨가 지난 4월 프린스턴대학 ‘타이틀9 사무처’(교육현장의 성적 차별을 감시하는 기구)에 제출한 문서에 따르면 임씨는 지난 2월과 3월 베르두 교수 자택에서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당했다.


지난 2월 베르두 교수는 임씨에게 한국 영화 ‘아가씨’를 보자며 집으로 초대했다. 임씨는 전에도 교수가 축구 경기를 보자고 제안해 한 차례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임씨는 “그때는 다른 사람도 오기로 했는데 취소됐었다”며 “당시 둘이 축구를 봤는데도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아가씨’는 성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어 더 걱정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당시 임씨가 친구와 주고받은 문자메세지 내용을 보면 임씨는 친구에게 “그 영화에 성적 묘사가 있는 걸 교수님이 아시는지 모르겠다” “영화 내용은 다 모르시는 거 같은데 여쭤봐야 할까?” “근데 여쭤보는 것도 이상하다. 교수님을 의심하는 것 같다”며 걱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임씨는 교수와 만나기로 약속한 며칠 전 베르두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영화 ‘아가씨’가 궁금해 검색해봤다”며 “노골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저는 그런 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며 “다른 한국 영화를 보거나 교수님이 좋아하는 다른 영화를 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베르두 교수는 “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싶다”며 “넷플릭스는 그 감독의 영화 ‘아가씨’만 제공하더라”고 답했다.

세르지오 베르두 교수

결국 임씨는 교수의 제안에 따라 ‘아가씨’를 함께 보기로 하고 2월 23일 교수의 집으로 향했다. 교수는 임씨에게 술을 따라줬고 함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여러 상황이 두려웠던 임씨는 “소파 가장자리에 붙어 앉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수는 다른 소파가 있었음에도 임씨 옆에 바짝 붙어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물으며 손을 임씨 어깨에 얹었다.

임씨는 “교수가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혼란스러웠고 당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와 그의 딸이 함께 있는 사진이 눈앞에 있었다. 딸이 나와 비슷한 나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딸과 내가 비슷한 나이여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성희롱인지 판단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영화가 끝나자 임씨는 몸을 조금씩 떨며 집으로 향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들었으나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랐다고 한다. 일주일 뒤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베르두 교수는 3월 9일 임씨에게 연락해 ‘아가씨’와 같은 감독의 작품인 ‘올드 보이’를 함께 보자고 권했다. 이메일을 주고받던 중 베르두 교수는 “나를 세르지오라고 불러줘”라며 웃는 이모티콘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아가씨’를 함께 보며 어깨에 손을 얹었던 이전 사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잘 몰랐다”는 임씨는 “교수님을 향한 내 생각이 오해이길 바랐다”고 밝혔다. 그렇게 3월 10일, 임씨는 베르두 교수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이들은 각자 레드 와인을 두 잔씩 마셨다. 이때 교수는 임씨에게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을 가리키며 성적인 농담을 건넸고 어깨에 또다시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손으로 어깨를 쓰다듬듯이 문질렀다.

와인을 마시다 흰색 셔츠에 흘린 임씨가 자국을 지우려 하자 교수는 비누와 휴지를 들고 와 직접 닦기 시작했다. 임씨는 지속적으로 “저렴한 옷이다” “상관할 필요 없다”고 말했으나 교수는 배 쪽에 묻은 자국을 지우려 30초 이상 문질렀다고 한다. 임씨는 “교수님이 배를 만지는 듯한 기분이 싫어서 옷을 살짝 들었는데 손을 옷 안으로 집어넣어 만졌다”고 밝혔다. 임씨가 “이러실 필요 없다”고 하자 일단락됐으나 교수는 이번에 허벅지에 손을 갖다 댔다.



집에 돌아온 임씨는 전날 밤 일어났던 사건이 부적절했다고 판단해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메일에서 “집에 온 뒤에, 교수님이 다리를 만진 건 부적절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교수와 제자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하며 교수님도 선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고 밝혔다.

그 후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임씨는 “이야기를 나눈 끝에 관계를 조금 회복했고 그 뒤에는 아무 일이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몇 주 뒤 임씨는 다른 교수에게 해당 사건을 이야기하게 됐고 그 교수는 타이틀9에 이 사건을 전달했다. 4월 13일 사무처는 임씨와 베르두에게 조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약 두 달의 조사 끝에 지난 6월 9일 학교는 베르두 교수에게 “성희롱 책임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냈다.

사무처는 베르두 교수가 “프린스턴의 성차별 및 성과 관련한 직권남용에 관한 정책을 위반했다”며 “책임을 묻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처벌은 ‘8시간의 교육 이수’였다. 타이틀9의 책임자는 교수의 행동이 정직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며 “학생이 부적절한 행위를 지적했을 때 교수가 더 이상의 행동을 멈췄기 때문에 처벌이 8시간 교육 이수에 그쳤다”고 밝혔다.

임씨는 “가장 큰 문제는 교수와 나의 권력관계”라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다른 학생들도 나와 같은 위험에 처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처벌은 예방의 효과가 있어야 한다”며 “만약 대학이 짧은 기간이라도 정직 처분을 한다면 학생들이 이 사실을 알 것이고 다른 성추행의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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