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수능일 마포대교 지킨 뜨거운 청년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난 23일 오후 9시. 서울 마포대교는 바람이 세찼다. 김현준(27) 파주 하늘문성결교회 전도사가 핫팩 70개를 들고 나타났다. “많이 춥죠. 핫팩 있는데 써보실래요?” 행인은 뜨듯한 핫팩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손에 따뜻함이 전해졌는지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왔다.

핫팩을 나눠주기 위해 마포대교를 걷고 있는 청년들. 강민석 선임기자

마포대교는 편도 1.3㎞다. 보통걸음으로 20분이 넘는 거리다. “지난해 여름과 올해 초에도 이곳에 왔어요.” 지나가는 자동차 소음이 심해 김 전도사의 말이 가물가물 들렸다.

김 전도사가 파주에서 이곳까지 온 것은 수능 후 혹시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수험생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는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렸다. “함께하실 분들을 구합니다. 내일 대한민국 고3들은 정말 중요한 수능을 봅니다. 늘 수능이 끝난 후 마음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밤에 마포대교를 배회하려고 합니다. 혹여나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형으로서 오빠로서, 인생을 조금 더 산 선배로서 위로해주고 손을 내밀어볼까 싶습니다.”

그는 “2013년 미국 무디신학교를 다닐 때 기숙사 학생리더였는데,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시도했던 신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다”면서 “그때 내면의 아픔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으며, 교회가 그들의 상처를 감싸줘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했다.

김현준 파주 하늘문성결교회 전도사(왼쪽)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지난 23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행인에게 핫팩을 건네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마포대교 중간에 초록색 불빛이 보였다. ‘SOS 생명의 전화’였다. 주변 난간에 적힌 글이 눈에 들어왔다. ‘민철♡선경 375일.’ ‘순일♡유빈 654日’ 그 위로 자살방지 펜스와 철사줄 5개가 설치돼 있다. 누군가 사랑과 추억의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겐 마지막 공간인 셈이다.

50분 뒤 A씨(가명·25)와 B씨(36)씨, 최동인(30)씨가 나타났다. 김 전도사가 SNS에 올린 글을 보고 온 사람들이다. 핫팩 90개를 들고 온 A씨는 “학교 다닐 때 왕따를 경험하고 자살시도를 몇 번이나 했었다”면서 “극단적인 결정을 하려는 아이들에게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작곡을 불러주려고 기타를 가져왔다”고 했다. 여의도침례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B씨도 “한국이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말을 들었는데, 혹시라도 자살을 시도하는 학생이 있다면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저쪽에서 남녀커플이 다가왔다. 어씨가 “많이 추우시죠”라며 핫팩을 건넸다. 여성은 당황스러워하더니 핫팩을 두 손으로 받았다. 고마웠는지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다시 건넸다.

SNS에서 뭉친 4명은 2인 1조가 돼 인도 양쪽 구간을 걸었다. 오후 11시가 되자 눈발이 흩날리더니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최씨는 “눈이 많이 내리는데, 그것 때문이라도 극단적인 결단을 내린 수험생이 나오지 않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포대교를 찾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목동에 거주한다는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목격됐다. 그는 “혼자 한강을 보고 싶어 나왔다”고 둘러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만난 A씨와 김 전도사, B씨, 최동인씨(왼쪽부터) 가 서로 인사를 하는 모습. 강민석 선임기자

청년들의 마포대교 사역은 고등학생을 목동까지 태워주고 다음날 오전 1시30분이 돼서야 끝났다. 김 전도사는 “많이 걷느라 허리와 다리가 아프지만 수험생을 만나지 않았던 건 다행”이라면서 “다음 주부턴 아침마다 코코아를 타서 교회 아이들이 다니는 중고등학교 앞으로 달려 갈 예정이다”라며 웃었다.

‘힘든 일을 이겨낸 사람’ ‘언제나 따뜻한 사람’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사람’. 마포대교 난간에 붙은 문구가 SNS에서 뭉친 4명의 청년을 응원하는 듯 했다. 한강경찰대는 “수능 이후 현재까지 투신사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26일 밝혔다.

백상현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