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5시15분. 5시45분으로 맞춰 둔 알람을 못 들은 줄 알았다. 입원병동 창가 자리를 맡기 위해 5시30분 호텔 문을 나섰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지나 겨울의 새벽이 됐다. 3개월마다 3일 동안 이뤄지는 집중 항암치료. 어느새 인영이가 아픈지 만 2년이 되어가지만 이 새벽의 공기는 상쾌함보다는 무거운 느낌이다.
4년전, 병상에 누운 아버지가 난간을 잡고 잠드신 적을 본 적이 있다. 아버지의 투병이 젖은 솜같은 먹먹함이라면 어린 딸의 아픔은 격렬한 통증으로 다가온다.

6시. 병원에서 가장 먼저 인영이 진료 카드를 찍고 숙소로 돌아왔다. 인영이는 아직 자고 있다. 7시가 넘자 인영이 치료를 위해 3박4일 현장체험을 신청하고 서울을 따라온 윤영이가 먼저 눈을 비비며 ebs를 튼다. 차를 덥히기 위해 10분 먼저 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8시. 인영이 치료가 시작됐다. 가슴정맥관에 바늘을 꼽고 수액을 연결했다. 속이 안 좋기 전에 뭐라고 먹여야 하는데 인영이는 아무것도 안 먹는단다. 네 가족이 한 침상에 모여 보드게임을 한다. 1등에게는 메뉴를 정할 자격이 주어진다. 인영이 아침 먹이기 게임이다.
지하에서 우동을 조금 먹이고 병실에 올라왔다. 엄마와 화장실에 가더니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며 오늘 허리주사 맞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인영이는 1박2일 서울 나들이인줄 알고 신나게 짐을 쌌었다. 어제 박물관도 가고 장난감도 사주면서 그때서야 내일 병원에 가야한다고 말했는데 허리주사 맞는 날인 걸 예감했나보다.
치료 전날 언니와 함께 간 어린이박물관. 인영이는 항암치료때문에 서울에 오는 줄 몰랐다.

원래 허리주사(척수검사)를 먼저 맞은 뒤 손등에 항암제와 동시에 들어갈 수액용 바늘을 꼽는데 오늘은 순서가 바뀌었다. 손등에 바늘 꼽을 때 눈물이 뚝뚝. 그래도 잘 견뎠다. 하지만 허리주사는 5살 아이의 인내 한계치를 넘는 것 같다. 허리를 새우처럼 구부리는 준비자세 때부터 눈물 콧물 범벅이다. 장난감 3개 사준다는 아빠의 말에도 반응이 없다.

점심에 뭐라고 먹여야 독한 항암 약을 버틴다. 좋아하는 하얀색 순두부 집을 검색해 차를 타고 포장해왔다. 다행히 한 그릇은 비웠다.
오후 2시. 방을 교체하기 위해 숙소로 갔다. 특급호텔이라고 하는데 어제 밤에 방이 너무 추웠다. 온도를 아무리 올려도 23.5도를 넘지 않았다. 이 호텔은 궁전이라는 이름을 없애야 한다.
‘나중에 인영이 다 낫기만 해봐라. 다신 안 온다.’
대신 아플수 없는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인영이가 좋아하는 게임을 티나게 져주는 일이다.

다른 방으로 짐을 옮기고 잠시 잠들었다. 인영이가 계속 운다는 아내의 카톡. 인영이는 어느새 커서 몸의 아픔이 마음의 아픔으로 옮겨지는 것을 아는 것처럼 흐느끼고 있다. 2리터가 넘는 항암제와 수액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해 이뇨제를 맞고 기저귀까지 찼다. 아빠도 본 체 만 체. 언니는 인영이를 통해 알게 된 또래 환아들과 휴게실에서 놀기 바쁘다. 아직 애다.

오후 4시. 인영이가 잠들었다. 아내와 윤영이에게 잠시 쉬다오라 숙소로 보냈다. 작은 손으로 침상 난간을 잡고 자고 있다. 투명한 수액과 노란 항암제가 쉴 새 없이 18.7kg의 작은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다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7시 넘어 12시간의 긴 치료가 끝났다. 바늘을 빼는데 인영이가 ‘퉤’할 것 같다고 한다. 비닐 봉투에 노란 토사물을 받았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 내일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혼잣말을 한다. 방에 들어와 3번을 더 토했다.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언니가 먹는데도 아무것도 먹기 싫다고 한다.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게임에서 일부러 티 나게 져주는 일이다. 카드게임에서 보기 좋게 져 줬더니 그제야 조금 웃는다. 밤 10시. 마지막으로 속을 비우더니 잠이 들었다. 서울에 온다는 눈은 내리지 않았다. 긴 하루였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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