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본 위드뉴스 웹사이트 캡처

결혼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견이 2008년 27.7%에서 2016년 42.9%로 15.2% 포인트 증가했다. 지난해 4월 발표된 ‘2017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절반 이상(51.4%)이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답했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경제적인 궁핍, 직업적 성공, 바쁜 일상 등으로 자녀 세대에게 결혼은 필수가 아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50세까지 1번도 결혼한 적 없는 사람의 비율은 60년대만 해도 1%대에 그쳤지만, 90년대 이후 경제상황 악화 등으로 2015년 기준 남성 23.37%, 여성 14.06%까지 급증했다.

하지만 결혼이 당연한 부모세대는 자녀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서는 부모가 자녀 대신 ‘맞선’을 하면서 결혼상대를 찾아주는 ‘대리 혼활’이 성황이라고 아사히신문 인터넷매체 위드뉴스가 1일 전했다. 혼활(婚活)이란 취업하듯 적극적으로 결혼 준비에 임하는 행태를 일컫는 말로, ‘혼인 활동’의 준말이다.

◇절반의 거부감, 절반의 고마움

간토 지방에 살고 있는 의사 A(32)씨. 그가 일하는 병원에는 언제 상태가 급변할지 모르는 중증 환자가 많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개인 약속은 물 건너가기 십상이다. 바쁜 일상으로 결혼을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연애를 한 적은 있다. 같은 병원의 간호사와 사귀기도 했다. 하지만 연애가 좀처럼 결혼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연애 중에도 어머니는 “상대는 결혼적령기인데 뭐하고 있는 거냐”고 주의를 주곤 했다.

그런 어머니가 2년 전부터 A씨의 결혼 상대를 찾아 나섰다. 어머니 소개로 만난 여성은 3명이다. 함께 밥을 먹었지만 누구와도 두 번째 데이트를 하진 않았다. 응급환자가 들어와 약속을 깬 적도 있다. 그는 “‘결혼은 인생의 폭을 넓히고 인간을 성장시켜준다’는 어머니의 말도 있고, 언젠가 가족을 꾸리고 싶다”면서도 “이런 어머니에 대해 절반은 난처하고 절반은 고맙다”고 말했다.

◇부모가 찾아준 상대와 순조롭게 결혼

지바현의 B(41·여)씨는 지난해 11월 3살 연상의 남자 회사원과 결혼했다. 어머니가 연결해준 사람이었다. B씨는 “일이 재미있다”며 “결혼은 아직”이라고 생각했지만 B씨의 어머니가 발 벗고 나섰다.

B씨의 어머니는 사단법인 ‘좋은 인연 부모 모임’이 주최한 대리 혼활 행사를 찾았다. 이 모임은 ‘부모끼리 마음이 맞으면 자녀들도 잘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2005년부터 시작됐다.

소식을 접한 B씨는 ‘부모가 찾은 상대와 결혼을 하다니’라는 거부감이 들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누군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라는 기대감도 어느 정도 생겼다.

B씨가 만난 남성은 5명이었다. 그중 역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남성과 마음이 맞았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두 사람은 만난 지 반년 만에 결혼했다. 양가 부모들의 기쁨은 말할 나위 없었다.

사진=일본 위드뉴스 웹사이트 캡처

◇아들·딸 ‘신상명세서’ 들고 다니며

B씨의 어머니가 딸의 상대를 찾게 해준 ‘좋은 인연 부모 모임’의 행사는 항상 성황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행사가 열린 도쿄 이다바시 도쿄대 신궁 살롱에는 60~70대 남녀가 속속 모여 들었다.

이곳의 ‘맞선회’에는 당사자가 아닌 부모들이 대리 맞선을 본다. 참가비는 1만3000엔(약 12만2000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약 120명이 모였다. 부모들은 이곳에서 자녀의 사진과 이력이 실린 ‘신상명세서’를 보이면서 자녀를 알리고 상대편 정보를 탐색한다.

“우리 애는 아이와 산책을 좋아한다” “근무지를 옮길 수 있나요” 같은 말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참가자들은 미리 자녀의 연령이나 직업, 학력, 거주지 등이 적힌 익명의 목록을 확인하고 가슴에 달린 번호표를 보면서 관심 있는 상대의 부모에게 말을 건다.

◇“아들에게도 가족이 있어야 안심”

도쿄에 사는 C(70·여)씨는 의사인 아들(39)의 혼인을 위해 결혼한 딸(46)과 함께 이곳에 참석했다. 두 번째 대리 혼활 참여다. C씨가 마음에 드는 이들 14명과 신상명세서를 공유했다. C씨가 후보자 신상을 아들에게 팩스로 보내면 아들은 이 가운데 4명 정도를 추리고 만날 약속을 정했다.

맞선회 뒤에는 가족이 모여 종종 아들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손주를 보고 싶은 아버지는 “젊은 여성이 좋겠다”며 35세 정도의 며느리를 희망한다. 이에 C씨는 “그건 아들이 결정하게 놔두라”며 핀잔을 준다. 집에 놀러온 딸도 상대의 신상명세서를 보며 “귀엽다” “생각이 비슷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화를 하면서 가족들은 “내년에는 결혼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며 기대한다.

C씨는 대학시절 만난 남편과 결혼했다. 아들도 본인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월 결혼식에 초대되는 아들은 정작 40세가 다 돼도록 결혼 소식은 없었다. C씨는 “언젠가 우리 가족이 죽을 때가 됐을 때, 아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좋은 인연 부모 모임'에 온 성혼 감사 편지. 사진=일본 위드뉴스 웹사이트 캡처

◇결혼을 보는 다른 눈

‘좋은 인연 부모 모임’ 사무실에는 부모들의 감사편지가 쌓여있다. “덕분에 인연을 만나 (자녀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모임이 없었으면 결코 (자식이) 결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2005년에 시작한 모임은 매년 50회 정도의 ‘맞선회’를 개최해왔다. 총 2만6724명의 부모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 혼활은 2000년 삿포로시의 어느 결혼상담소가 이벤트를 개최한 게 시작이었다. 일이 너무 바쁘거나 적극적이지 않은 자녀를 대신해 부모가 대신 맞선에 나서는 것이다. 우선 부모들은 자녀의 ‘신상명세서’를 교환하고, 자녀들이 서로를 마음에 들어 하면 실제로 만난다. 자녀의 동의를 얻어 참가하는 부모도 있지만 비밀로 참여하는 부모도 있다.

부모 세대는 결혼을 당연시하고 ‘결혼=행복’이라는 의식이 강한 반면, 자녀 세대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혼은 점차 ‘해도 좋고 안 해도 상관없는 것’이 돼가고 있다. 대리 혼활은 이런 세대 간 의식 차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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