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3층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암호화폐(가상화폐) 규제안이 정치권 이슈로 확산됐다. 수만명의 투자자들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국민청원을 전개하며 답변을 요구했다. 침묵했던 여야 의원들도 하나둘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1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가 사실상 투기·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산업 발전의 긍정적 측면보다 개인의 금전적 피해를 유발할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해 거래소 폐지까지도 목표로 하는 정부 입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거래소 폐쇄’ 방안은 투자자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어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서도 마지막 수단으로 거론됐던 조치다. 예상보다 빠르게 나온 정부의 초강경 카드는 투자자들의 반발로 이어졌다.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지난달 28일 시작됐던 ‘가상화폐 규제 반대’ 국민청원은 이날 오후 5시30분 현재 5만8142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뒤 ‘30일 동안 20만명 넘게 동의한 청원에 대해 30일 안에 책임 있는 관계자가 답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다. 이 청원의 마감시한은 오는 27일까지다.

박 장관의 기자회견을 앞둔 아침시간만 해도 참여자는 1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참여자가 증가하면서 청원 순위는 4위까지 올라갔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대부분 ‘가상화폐 규제 반대’ 의견으로 채워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몰려든 것으로 보인다. 한때 청와대 홈페이지가 원활하게 접속되지 않을 만큼 투자자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청와대는 오후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명의 입장문을 내고 “거래소 폐지와 관련한 박상기 장관의 발언은 법무부가 준비한 방안 중 하나지만 확정된 사안이 아니다”라며 “각 부처의 논의와 조율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투자자들과 비투자자들 사이에선 격론이 벌어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거품이 명백한 투기시장”이라는 의견과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양론이 충돌했다. 한쪽에선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 한쪽에선 영국의 ‘버블 액트’가 언급됐다.

튤립 버블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튤립 가격이 50배까지 치솟았지만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수천분의 1까지 폭락했던 투기 과열 현상을 말한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상승할 때마다 튤립 버블에 비유됐다.

버블 액트란 18세기 영국에서 투기를 규제할 목적으로 법인 설립을 의회가 승인하도록 제정했던 런던증권거래소·보증공사법을 가리킨다.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패착으로 이어진 사례에 인용된다. 이 법률은 영국의 시장 위축으로 금융 주도권을 미국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1825년 폐지됐다.

한동안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안에 의견을 내지 않았던 정치권에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페이스북에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만이 답일까. 아닐 듯 하다.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국내에 묶여 있던 자본의 해외 유출, 4차 산업혁명 시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 발전 저해, 거래의 인위적 차단 불가능을 거래소 폐쇄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으로 지목했다.

평소 가상화폐에 대해 가장 호의적으로 발언했던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정부의 거래소 폐쇄 방안을 ‘21세기 쇄국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규제를 반대하지 않지만, 정부는 지금 규제가 아닌 범죄로 단죄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금지해도 온라인 외국 거래소로 이동해 모두 거래할 수 있다. (조선 말) 흥선대원군 때는 쇄국하면 밖으로 나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쇄국해도 온라인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바른정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가상화폐 전문가가 법무부 안에 있는가. 마음에 안 들면 규제하고 국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 민주국가인가. 과거의 프레임으로 미래를 규정하지 말라”고 적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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