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을 때론 한 가족을 처참히 짓밟았지만 그들은 너무나 뻔뻔했다.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들의 자백을 받아낸 고문 기술자나, 담당 검사, 유죄를 판결했던 판사들 모두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이제 와서 어쩌라는 거냐며 되레 화를 냈다.



SBS 시사고발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지난 1982년 김제의 한 농사꾼이 최을호씨 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시작으로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을 추적했다. 어느날 갑자기 최을호씨가 사라졌고 그후 그의 조카 최낙교와 최낙전씨도 종적을 감췄다. 6개월 뒤 가족간첩단이라는 이유로 이들은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을호씨는 재판 후 사형이 집행됐고 최낙교씨는 구치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최낙전씨는 출소 후 5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6월 고 최을호씨가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돼 누명을 벗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7월 벌초를 하러 온 큰 아들 최낙효씨가 실종됐고 수색 끝에 찾아낸 최낙효씨는 이미 숨진 뒤였다. 자살의 흔적도, 타살의 의혹도 남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교편생활을 하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고 아버지 때문에 교직생활을 하다가 학교를 가지 못했다”며 “아버지로 인해 자녀들이 피해를 봤다”고 입을 모았다. 최씨의 자녀들은 당시 상황을 전하며 전 고문기술자로 불리는 이근안 전 경감을 떠올렸다.

최을호씨가 사라지자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형사였던 이 전 경감은 아버지를 찾아준다며 며칠씩 집에 머물며 간첩 증거를 가짜로 만들었다. 최을호씨의 둘째 아들은 최낙전씨가 출소 후에도 불안해했다고 떠올리며 “너희는 몰라. 안 당해 보며 몰라. 내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이 그곳이더라 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이 전 경감은 구타,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주도했다. 잔혹한 고문을 했던 이 전 경감이 원했던 건 간첩이라는 자백이었다. 결국 최낙전씨는 4개월 만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제작진은 이 전 경감을 찾아 김제 가족간첩단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재론하고 싶지 않다. 병중에 있다. 평생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 대공분실 수사관은 “30년 넘은 일인데 그걸 뭘... 대공분실 직원들이 전부 고문하지 않는다. 절대 그렇지 않다. 이근안 씨만 그렇다고는 얘기할 수 없다”며 “우리만 한게 아니다. 국민들은 전부 이근안 씨가 했던 거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증언했다. 그의 증언대로라면 불법연행과 고문은 대공분실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김제 가족간첩단 같은 피해자들은 많았다. 1981년 봄 진도에서 김양식을 하던 허현씨도 남산 국가안전기획부로 끌려가 60일간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25년이 흐른 뒤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제일교포 간접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이헌치씨도 갓 태어난 아이를 빌미로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고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에서는 무기징역을 받았다. 15년 후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김병진씨도 고문피해자이자 보안사 강제근무자였다. 김씨는 “가짜 간첩을 만들어 간첩 검거를 했다고 해 훈장을 받고 포상을 받고 해외여행을 갔다” “나이가 들어 거의 정년퇴직을 했으며 그 사람들은 나라에서 주는 연금을 받으며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걱정 없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서울시경 정보과에서 근무하며 대공업무에 종사했던 석달윤씨도 간첩 조작사건으로 18년을 복역했다. 석씨는 안기부에 끌려가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치매 초기증상을 보이고 있지만 그지만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은 지울 수 없었다. 석씨는 제작진에게 “47일간 고문을 받고 18년 동안 형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은 “남자 성기에 볼펜 심지를 끼우는 고문이라든가 양쪽 종아리 무릎 뒤에 각목을 끼워 매달아 놓는다든가 했다”며 “검사 앞에 얘기하면 되겠지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검사가 공소사실을 내리치면서 다시 데려가서 다시 해오라고 했다더라”고 증언했다. 석씨는 23년이 지난 후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들은 간첩이라고 판결했던 당시 판사들은 당당했다. 석씨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자유한국당 여상규 의원은 “제작진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말에 “재심 제도가 있는 이상 무죄를 받을 수도 있겠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불법 구금과 고문에 대해서는 “고문을 당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물어서 뭐하냐”고 답했다. 당시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는데 책임을 느끼지 못하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이 정말”이라며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허현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안강민 변호사는 “기억이 없다. 고문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한참 뒤에 들었다. 나는 고문 흔적을 못 봤다”고 말했다. 그는 대공중앙 수사부장을 역임하고 2008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진도가족간첩단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 임휘윤 전 검사는 “내가 그만둔 지 18년이다. 기억도 안 나고 인터뷰도 절대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정상적으로 처리했다. 쓸데 없는 얘기 말고 들어가라”며 자리를 떠났다. 그는 고검장을 역임한 뒤 건설이사 사외이사를 맡는 등 승승장구 했다.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의 1심을 맡았던 김헌무 변호사는 “서울 형사지방법원 부임해 며칠 안 돼 그 판결을 선고했다. 변명 같지만 구속기간에 쫓겨 선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기록을 잘못 봤다고 사과해야겠죠”라면서도 “하지만 원인제공을 한 사람은 본인이다. 자백을 했기 때문에 그런 판결을 받게 된 것”이라고 답했다.


최을호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1심 판사는 광주고등법원 법원장을 역임한 이영범 변호사다. 그는 “판사가 신이 아닌 이상 사실을 100% 진실이라 할 수 없다”며 “재심 판결 났으면 됐지 뭘. 재판이 잘못됐으면 파기해서 무죄하면 되는 거다. 재심에서 무죄 났으면 됐지”라고 말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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