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이는 이제 만10살이지만 어쩔때는 엄마보다 동생을 더 잘 돌본다.

장인장모님이 오신 주말 인영이가 일찍 잠들었다. 백만년 만에 심야영화를 보러 가려는데 윤영이가 따라가겠다고 한다. 부모님과 동행하면 만 10세 윤영이도 볼 수 있는 ‘신과함께’를 골랐다. 뽀로로부터 호비, 타요를 거쳐 겨울왕국, 최근에는 프리파라까지. 윤영이와 함께 본 건 만화영화뿐이었는데 어른영화를 함께 앉아서 보니 낯선 느낌이었다. 엄마아빠 사이에서 팝콘과 핫도그를 먹으며 스크린을 응시하는 큰딸을 보니 이제 다 컸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좀 있으면 아빠하고 안 놀아 주겠구나란 두려움(?)이 엄습했다.
'동생도 잘 돌볼게요'라는 문구에 미안해졌다. 알게모르게 윤영이가 가졌을 부담감을 생각했다.

며칠 전 결혼기념일에 윤영이는 또 한 번 아빠를 놀래 켰다. 한 이틀 동안 밤늦게까지 자기 방에서 핸드폰을 갖고 놀고 있어 혼을 냈는데 알고 보니 몰래 아빠엄마 결혼기념 영상물을 만들고 있던 거였다.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하고, 그것을 오려서 사진을 찍어 영상으로 만들었다. 컴맹인 아빠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물이었다.

인영이가 치료를 받는 동안 둘째에게 마음이 더 간 게 사실이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티를 냈다. 둘이 싸우면 인영이 편만 들어서 윤영이를 울린 적도 몇 번 있었다. 아빠 노트북에 있는 ‘인영사랑’ 폴더를 보더니 ‘윤영사랑’ 폴더는 왜 없냐며 서운해 하기도 했다.
윤영이는 결혼기념일 축하 카드에 ‘저랑 동생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동생도 잘 돌볼게요’라고 썼다. ‘동생도 잘 돌볼게요’라는 문구를 보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놀기 바쁜 저학년 초등학생에게 알게 모르게 동생이 아픈 상황을 주지시키고 부담을 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귀요미들. 아들만 있는 분들은 이런 딸들을 갖기위해 또 한번의 모험을 하길 권한다.

또래보다 키가 커서 어느새 엄마 어깨를 넘어섰지만 윤영이는 여전히 5살 아래 인영이와 잘 놀아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방학 일과표에 동생 과외 시간을 만들어 한글을 가르쳐주고 책을 읽어준다. 칭찬스티커 제도도 고안해 스마트폰 중독 증세를 보이는 인영이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려고 애도 쓴다. 썰매 타는 인영이 사진을 편집해 아빠 인스타그램에 올리라고 조언도 해줬다.
이런 말하면 후환이 두렵지만 어쩔 때는 윤영이가 엄마보다 더 낫다.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윤영이 담임선생님들은 “윤영이 정도만 하면 혼낼 게 하나도 없다”고 입을 모으셨다.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지만 결혼12주년을 맞아 큰 딸 자랑을 했다. 자랑할거 다 하면 밤 새 써도 모자라 조금만 했다. 특히 아들만 있는 분들은 이런 딸 하나 갖기 위해 모험 한번 해볼만 하다고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