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어울리는 음식이 하나씩 있습니다. 부산은 돼지국밥, 의정부는 부대찌개, 마포는 갈비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음식별 맛의 고장은 누가 정한 걸까요? “여행 준비하다가 느낀건데 유독 춘천에는 닭 요리가, 군산엔 중식이 많더라고요. 왜 그런 건가요?”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습니다.

‘마케터’가 만든 맛의 고장
춘천에 가면 닭갈비를 꼭 먹으라고들 합니다. 둘의 관계는 태초에 맺어진 듯 확고부동해 보입니다. 왱이 1920~1999년 동아일보·경향신문·매일경제·한겨레에 나온 기사와 광고를 분석해봤는데, ‘춘천’과 ‘닭갈비’ 두 단어가 신문에 함께 나온 건 1980년 6월 13일이 처음이고, 이듬해엔 두 단어가 신문에 한 번도 같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1995년 춘천과 닭갈비란 단어가 뜬금없이 39번이나 나옵니다. 그 중 33번은 ‘춘천닭갈비’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집 광고였죠. 그해 10월 12일 매일경제는 ‘닭갈비 전문점 급속 확산’이란 기사에서 “통닭집이 닭갈비 체인점으로 속속 전환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신규 체인점 모집 업체가 6~7개에 이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춘천 닭갈비가 다른 지역보다 유독 맛이 있으니까 지역 대표 음식이 됐겠지만, 사람들 머릿속에 춘천 닭갈비가 자리 잡는데 ‘마케팅’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1995년 경향신문에 실린 춘천 닭갈비 체인점 모집 광고



전두환이 만든 맛의 고장
원래 춘천의 유명 음식은 막국수였습니다. ‘춘천’과 ‘막국수’란 단어는 1967년 5월부터 신문에 함께 등장했죠. 당시 동아일보는 ‘메밀막국수’란 기사에서 “옛 자유당 집권 시절 이 지방 출신 국회의원들은 지프차로 춘천 막국수를 서울까지 날라다 먹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날라다 먹었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때까지 막국수는 전국적인 유명 음식이라기보다는 지역 향토 음식이었습니다.

서울 여의도광장에 걸린 국풍81 포스터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국풍81 행사장에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는 모습


막국수가 춘천의 상징으로 전국에 알려진 건 1981년 전두환정부가 열었던 관제축제 ‘국풍81’때부터입니다. 국풍81은 광주민주화운동의 핏자국을 문화로 덮으려고 했던 행사였죠. 행사장에서 도별 대표 음식을 판매한 푸드코트 ‘팔도미락정’에서 강원도 대표 음식으로 막국수를 내놨는데, 이때 막국수가 2500그릇이나 팔리는 등(당시 매일경제 기사) 서울에서 대흥행에 성공합니다. 전두환정권이 국풍81에 내놓은 음식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역별 대표 음식의 원형이 됐습니다. 춘천의 막국수뿐만 아니라 전주비빔밥·순창고추장·대구따로국밥·함흥냉면·충무김밥·서울설렁탕·천안호두과자 등이 이때 전국에 퍼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영하 한국한중앙연구원 교수는 “1981년 ‘국풍81’이 지역별 대표 음식들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도록 만들었고, 당시 한국경제의 호황도 한몫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지역별 대표음식이 재료나 조리법에서 다른 지역보다 탁월했기 때문에 국풍81에 나왔겠지만 국풍81이 지역별 대표음식을 확산시키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죠.



마케팅 효과를 본 닭갈비와 정치논리로 유명해진 막국수는 어떻게 같이 먹는 음식이 됐을까요? 두 음식을 묶은 건 바로 프랜차이즈 업체입니다. 춘천의 유명 음식으로 따로 소개되던 닭갈비와 막국수는 1995년 닭갈비 프랜차이즈 광고에서 같이 먹는 음식으로 소개됩니다.

‘방송’이 만든 맛의 고장
군산 맛집으로 중국집이 유명해진 건 KBS의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의 덕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군산은 1899년 개항 직후부터 중국인이 모여 살아 원래 중국집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1920년부터 지금까지 군산 관련 보도를 분석해보면 딱히 중국집이 두드러진 적이 없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이 중화요리의 강자로 확고부동하기 때문이죠.

2014년 1박2일 방송 이후 각종 언론 보도에 군산과 중국음식 관련단어가 함께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종합일간지·경제지·방송국 17개사(경향·국민·내일·문화·서울·세계·한겨레·한국·매경·서경·한경·파이낸셜·헤럴드·MBC·SBS·YTN·OBS) 보도를 찾아보니 90년대 내내 군산과 중국집이란 단어가 같이 보도된 건 단 1건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2014년 8월 1박2일에서 연예인들이 군산에서 짬뽕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후 ‘군산’과 ‘중국음식 관련 단어’가 폭발적으로 같이 보도되기 시작합니다.

‘맛의 고장’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경제적·정치적 욕구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하는 대목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마케팅이 다는 아닐 겁니다. 춘천의 닭갈비와 막국수, 군산 중국집 다 너무너무 맛있잖아요. 그나저나 세상엔 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은 걸까요. 누가 대신 취재 좀 해주세요.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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