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을 모시고 영화관엘 갔습니다. 97세이신 최고령 할머니를 비롯해서 80대 할머니들, 그리고 60대와 70대 청년 몇이 동행했습니다. 우리도 처음이고 영화관도 처음이었습니다. 80·90대 노인들이 영화관에 무리 지어 간 것은.


영화관으로 가는 승합차 안에 소싯적 영화에 얽힌 얘기들이 함박눈처럼 내렸습니다. 처녀 적 동네에 들어온 가설극장에 5원 주고 영화를 보고 왔다가 어머니에게 머리채 잡혀 ‘혼꾸녕’이 난 뒤로 영화 같은 건 생각지도 못하고 평생을 살아왔다는 할머니, 장터 유랑극단에 보리쌀 한 되 훔쳐 장화홍련을 보러 갔다가 들켜 부지깽이로 매타작을 당했다는 할머니, 유랑극단 딴따라 총각하고 눈이 맞아 야반도주한 조 서방네 큰애기 얘기, 영화관 가는 길에 할머니들은 옛날 얘기를 눈송이처럼 쏟아놓습니다. 함박눈이 되어 내리는 이야기는 대설주의보를 예보하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 무지막지한 폭설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숨 막힐 듯 쏟아지는 거대한 눈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턱 막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험난해지고 있는지 우리 모두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이 엄청난 눈이 해가 지면서 노면에 얼어붙게 되면 산골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게 됩니다. 영화 보고, 목욕한 다음 저녁까지 먹고 갈 계획도 갑자기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서로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숨을 죽이며 기어서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골목길마다 들어가 대문 앞에서 내려줄 터인데 폭설로 뒤덮인 좁은 골목길을 들어가기 어렵게 됐습니다. 할머니 한 사람씩 손을 붙잡아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비탈지고 내리막이 있는, 긴 농로를 통해 집에 가야 하는 김부돌 할머니를 마지막에 데려다주었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눈길을 천천히 걸어갑니다.

그의 뼈들은 부러지기 쉬운 삭정이 같습니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엉치뼈가 부러지거나 팔꿈치 뼈가 과자처럼 부서지기 쉬운 몸입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젖먹이 어린아이를 안고 가듯 눈길을 걷습니다. 눈보라가 머리를 사정없이 때립니다. 볼이 따갑고 머리칼이 헝클어집니다.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줄 요량으로 자리를 바꾸어 그의 오른손을 잡습니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오른발 때문에 힘을 쓰지 못합니다. 몇 발자국 걷고는 숨이 가빠 걸음을 멈춥니다. 길은 먼데 눈보라는 살을 에고 발걸음은 더딥니다.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생감자를 씹는 것처럼 아립니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낡고 오래된 비료포대 하나가 눈밭에서 귀퉁이만 삐죽이 내밀고 있습니다. 그것을 파내어 흙을 닦고 눈길 위에 깝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할머니를 앉힙니다.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밀고 갑니다. 말 없는 할머니의 등 뒤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그 온기에는 미안하고 고맙고 춥고 재미지고, 여러 층위의 감정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있습니다.


그의 마음에서 함박눈이 쏟아져 내 발등을 덮고 어깨와 머리털을 다 덮어버립니다. 뜨거운 군고구마가 울대를 넘어갈 때 목이 콱 막히는, 그런 숨 막히는 사랑이 나를 향해 수억의 눈송이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눈을 밟을 때마다 뽀드득뽀드득 쌀 씻는 소리가 납니다. 막 지어낸 더운 쌀밥처럼 우리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리입니다. 지금 당신과 나 사이에는 세상을 다 덮고도 남을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설주의보입니다.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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