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아픈지 말도 못하던 녀석이 이제는 "케익말고 체리쥬빌레 콘"이라고 할말 다 하고 산다.

입춘이었다. 아직은 추운 겨울이지만 봄은 곧 올 것이다. 인영이가 투병생활을 한 지 2년이 됐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간혹 따스한 햇볕도 들었지만 겨울은 겨울이었다. 수백번 바늘로 찔리고 수천번 약을 먹었다. 그래도 그 추운 겨울을 인영이는 잘 이겨냈다.

첫 1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면 둘째 해는 재발의 두려움이 컸다. 백혈병은 혈액 암이기 때문에 치료 기간이 길고 재발률도 높은 편이다. 가끔 혈액수치가 불안정해지거나 열이 나면 덜컥 겁이 났다. 그런 마음의 짐은 대부분 아내가 짊어졌다. 아내는 지난해 가을 병가를 1년 더 연장했다.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먹이고 놀아주는 게 아내의 지난 1년의 생활이었다.
아내는 인영이가 일찍 잠들면 밤 12시고 1시고 알람을 맞춰 일어나 인영이 약을 먹이고 다시 잠들었다(매일 자기전에 먹는 항암 약은 공복 2시간 후에 먹어야 한다). 아내와 둘이 거실에서 잠깐 잠들라치면 새벽에 인영이는 울먹이면서 나와 엄마 손만 잡고 들어간다. 아빠가 아무리 장난감을 사줘도 투명인간이다.
치료 1년 축하 케익. 이때만해도 머리가 짧았다.

3월이면 인영이는 또래 친구들처럼 유치원에 간다. 요즘 ‘기적의 유아수학’ 책을 갖고 열심히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 기적의 유아 한글 책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기적이 수학에선 일어날 것이란 희망을 품어본다. 4월에는 처음으로 가족 해외여행도 갈 거다. 최근 아픈 아이들 소원을 들어주는 메이크어위시재단 자원봉사 언니오빠들이 집에 왔을 때 인영이는 비행기타고 수영하러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근데 해외여행은 소원제외란다). 인영이가 아프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하고 싶거나 좋은 것은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 게 좋다는 거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곧 가을이 오고 인영이의 치료도 종결될 것이다.
2년동안 수백번 바늘에 찔리고, 수천번 약을 먹으며 잘 견뎌줬다. 아빠는 고맙다.

주말 저녁, 케익에 초라도 한번 켜주고 싶어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는데 인영이는 콘 하나면 된다고 했다. 가게에 앉아 지 언니와 웃으며 사진 찍기 놀이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많이 컸다. 처음 무균실에 입원했을 땐 “아빠, 빠방(타고), 집(에가자)” 이라며 말도 못하던 녀석이 이제는 지 할 말 다 하고 산다.
간밤에 자러 누운 인영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할아버지 되도 놀아줄 거냐고.
“음~ 생각해볼게.”
아빠는 그러면 맨날 울 거라고 매달렸지만 같이 안 놀아 줘도 되니 건강히 자라만주면 된다. 세차장에서 까르르 웃는 너희들을 위해 손이 시려도 아빠는 열심히 물줄기를 뿌려줄 테니.
최근 방문한 메이크어위시재단 자원봉사단 언니오빠들. 인영이와 신나게 놀아주고 소원도 듣고갔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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