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구속수감된지 353일 만에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5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형량 무거운 재산국외도피 무죄

이 부회장의 2심 판결에서는 형량이 가장 무거운 재산국외도피 혐의가 무죄 판결을 받은 게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재산국외도피는 범죄금액이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을, 50억원 미만이어도 5년 이상 징역으로 처벌된다.

특검 측은 1심과 항소심에서 삼성이 최씨 소유 독일법인 코어스포츠와 삼성전자 독일 계좌 등에 보낸 79억원 상당의 금액이 모두 재산국외도피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에서는 삼성전자 독일 계좌에 송금된 42억원은 무죄라고 판단해 37억원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보낸 돈으로 산 말이나 차량을 최씨 소유로 해줄 것인지 송금 당시에는 불분명했다고 봤다. 이 때문에 재산국외도피 혐의의 하한선인 징역 5년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2심은 나머지 37억원에 대해서도 재산국외도피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징역 5년 이상의 형량을 유지할 핵심 혐의가 사라진 셈이다. 재판부는 “코어스포츠로 송금한 돈은 피고인들이 최씨에게 뇌물로 제공한 것이고, 최씨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임의로 지배·관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뇌물을 준 것은 인정되지만 애초부터 재산을 국외로 빼돌릴 의사로 송금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 인정 안돼“

항소심에서 달라진 부분은 핵심적 쟁점이었던 ‘묵시적 청탁’ 여부를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점이다. 특검팀은 그동안 이 부회장이 승마 지원과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하는 대가로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부정청탁을 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해 명시적인 청탁을 하지는 않았지만 포괄적 현안(경영권 승계)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했다며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반면 삼성 변호인단은 최씨 측에 제공한 돈은 경영권 승계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특검 측이 물증 없이 ‘가공의 틀’을 내세우고 있다고 반박해왔다.

2심 재판부는 묵시적 청탁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삼성 주장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재판부는 “특검 주장처럼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를 위해 개별 현안들이 추진돼왔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부정청탁 대상으로 포괄적 현안인 승계 작업이 존재한다고 한 원심과 특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뇌물 액수도 대폭 깎였다. 당초 1심이 유죄로 판단했던 89억원 상당의 뇌물 가운데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제공한 16억2800만원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다만 이 부회장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승마 지원을 한 36억원 등에 대해서만 뇌물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금액의 크기, 제공의 은밀성을 고려해보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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